세종로 은행나무를 건들지 말라
김 영 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용산 미8군 영내에 더러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여기가 한국 땅인가 싶은 느낌이 들곤 했다. 미군이 주둔해서가 아니다. 이 나라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드리 거목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사람과 함께 호흡하니 하는 말이다. 얼핏 보아도 나이가 100살은 됨직하다. 그들이 조경을 했을 리 없고 원래 있던 나무를 그냥 제자리에 두었을 뿐이다. 청군→일군→미군으로 주인이 바뀐 외국군 주둔지인 그곳에서 거목이 되기까지 지난 한 세기 이 나라의 수난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담벼락을 벗어나면 도시 모습은 딴판으로 달라진다. 가로수라고 해봤자 수령 30년 이 채 될까 말까한다. 1970년대 들어서부터 시가지를 정비하고 가로수를 많이 심어 그런 모습이라도 하고 있다. 그나마 플라타너스 같은 속성수를 많이 심어 이제는 볼 만하다. 그런데 그것을 못 보겠다는 듯이 걸핏하면 수종교체니 뭐니 해서 아름드리 가로수를 마구 뽑아낸다. 그 자리에는 팔뚝 굴기의 볼품없는 어린 나무로 바꿔 심는다. 아니면 가지란 가지는 몽땅 쳐내 몰골 사납게 만든다.
1970년대 중반에만 해도 서울에는 버드나무와 포플러 계통인 현사시나무가 많았다. 봄에 꽃가루가 날린다고 뽑아내서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조에는 삼우(三友)라고 해서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많이 그렸지만 풍속화나 산수화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 민족이 사랑했던 나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외국수종에 밀려 재래종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평양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하늘을 보고자라는 딴 나무와 달리 땅과 가까워지려는 친근한 자태가 대동강과 어울려 정취를 한껏 더해 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는 세종로 중앙분리대에 도열해 있는 30여 그루의 은행나무일 듯싶다. 그런데 서울시가 16차선인 세종로를 10차선으로 줄이고 그 땅을 광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 중의 하나가 은행나무를 딴 곳으로 옮기고 그곳을 넓혀 잔디밭을 만들겠단다. 사람이 걷고 즐기는 공간을 말이다. 은행나무를 뽑아내려는 이유는 일제가 이 땅을 영구히 지배하려고 오래 사는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일자라도 나무가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
세종로 은행나무는 벌써 몇 번째 죽었다 살았다 한다. 2년 전에도 서울시는 중앙분리대와 8차선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잔디가 깔린 중앙가로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잣은 집회로 잔디가 망가져 누더기처럼 계속 땜질한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 테니 평소에는 통제선을 치고 출입을 막는다. 잔디밭이란 원래 서양식 조경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고유-전통문화가 없는 도시다. 차라리 그곳에다 연못도 있는 한국식 정원을 가꾼다면 관광가치도 높아지고 찾는 이를 더욱 즐겁게 하련만….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은행나무는 이식이 어렵다고 한다. 수령이 100년 가까운 노거수(老巨樹)라면 30% 가량은 말라죽고 착근하려면 15년은 걸린단다. 그 우람한 나무를 옮기려면 뿌리가 깊을 테니 잘라내고 수분발산을 막으려면 가지도 많이 쳐내야 할 것이다. 생존율이 얼마나 될지 모르나 제 모습을 갖추려면 많은 세월이 흘려야 할 터이다. 지난 1971년 세종로 너비를 100m을 넓히면서 은행나무를 길옆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세종로 하면 상징처럼 은행나무를 떠올리는 시민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 받는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풀밭을 만든다고….
늦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서울의 정취를 돋운다. 덕수궁, 창경궁 담벼락 은행나무는 샛노란 옷을 벗는다. 어떤 이는 수천, 수만 마리의 나비가 내려앉은 듯하다고 말한다. 차마 밟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살며시 디뎌보나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혼자 걷기 아쉬워 연인과 함께 하고픈 거리다. 거울이면 눈보라에도 움츠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나목(裸木)의 모습을 흑백사진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은행나무를 화석나무라고 말한다. 빙하기도 지각변동도 견디고 살아남은 식물이라고 해서 말이다. 그 숱한 식물이 멸종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다. 1,000년을 산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서울시가 시목(市木)으로 지정했을 텐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시장이 바뀔 때마다 말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가로수라면 오히려 보호수로 지정해 돌봐야 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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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용산 미8군 영내에 더러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여기가 한국 땅인가 싶은 느낌이 들곤 했다. 미군이 주둔해서가 아니다. 이 나라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드리 거목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사람과 함께 호흡하니 하는 말이다. 얼핏 보아도 나이가 100살은 됨직하다. 그들이 조경을 했을 리 없고 원래 있던 나무를 그냥 제자리에 두었을 뿐이다. 청군→일군→미군으로 주인이 바뀐 외국군 주둔지인 그곳에서 거목이 되기까지 지난 한 세기 이 나라의 수난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담벼락을 벗어나면 도시 모습은 딴판으로 달라진다. 가로수라고 해봤자 수령 30년 이 채 될까 말까한다. 1970년대 들어서부터 시가지를 정비하고 가로수를 많이 심어 그런 모습이라도 하고 있다. 그나마 플라타너스 같은 속성수를 많이 심어 이제는 볼 만하다. 그런데 그것을 못 보겠다는 듯이 걸핏하면 수종교체니 뭐니 해서 아름드리 가로수를 마구 뽑아낸다. 그 자리에는 팔뚝 굴기의 볼품없는 어린 나무로 바꿔 심는다. 아니면 가지란 가지는 몽땅 쳐내 몰골 사납게 만든다.
1970년대 중반에만 해도 서울에는 버드나무와 포플러 계통인 현사시나무가 많았다. 봄에 꽃가루가 날린다고 뽑아내서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조에는 삼우(三友)라고 해서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많이 그렸지만 풍속화나 산수화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 민족이 사랑했던 나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외국수종에 밀려 재래종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평양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하늘을 보고자라는 딴 나무와 달리 땅과 가까워지려는 친근한 자태가 대동강과 어울려 정취를 한껏 더해 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는 세종로 중앙분리대에 도열해 있는 30여 그루의 은행나무일 듯싶다. 그런데 서울시가 16차선인 세종로를 10차선으로 줄이고 그 땅을 광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 중의 하나가 은행나무를 딴 곳으로 옮기고 그곳을 넓혀 잔디밭을 만들겠단다. 사람이 걷고 즐기는 공간을 말이다. 은행나무를 뽑아내려는 이유는 일제가 이 땅을 영구히 지배하려고 오래 사는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일자라도 나무가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
세종로 은행나무는 벌써 몇 번째 죽었다 살았다 한다. 2년 전에도 서울시는 중앙분리대와 8차선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잔디가 깔린 중앙가로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잣은 집회로 잔디가 망가져 누더기처럼 계속 땜질한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 테니 평소에는 통제선을 치고 출입을 막는다. 잔디밭이란 원래 서양식 조경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고유-전통문화가 없는 도시다. 차라리 그곳에다 연못도 있는 한국식 정원을 가꾼다면 관광가치도 높아지고 찾는 이를 더욱 즐겁게 하련만….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은행나무는 이식이 어렵다고 한다. 수령이 100년 가까운 노거수(老巨樹)라면 30% 가량은 말라죽고 착근하려면 15년은 걸린단다. 그 우람한 나무를 옮기려면 뿌리가 깊을 테니 잘라내고 수분발산을 막으려면 가지도 많이 쳐내야 할 것이다. 생존율이 얼마나 될지 모르나 제 모습을 갖추려면 많은 세월이 흘려야 할 터이다. 지난 1971년 세종로 너비를 100m을 넓히면서 은행나무를 길옆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세종로 하면 상징처럼 은행나무를 떠올리는 시민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 받는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풀밭을 만든다고….
늦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서울의 정취를 돋운다. 덕수궁, 창경궁 담벼락 은행나무는 샛노란 옷을 벗는다. 어떤 이는 수천, 수만 마리의 나비가 내려앉은 듯하다고 말한다. 차마 밟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살며시 디뎌보나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혼자 걷기 아쉬워 연인과 함께 하고픈 거리다. 거울이면 눈보라에도 움츠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나목(裸木)의 모습을 흑백사진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은행나무를 화석나무라고 말한다. 빙하기도 지각변동도 견디고 살아남은 식물이라고 해서 말이다. 그 숱한 식물이 멸종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다. 1,000년을 산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서울시가 시목(市木)으로 지정했을 텐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시장이 바뀔 때마다 말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가로수라면 오히려 보호수로 지정해 돌봐야 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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