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졸업이 성공인생’이라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미 몇몇 대기업에서는 과외에만 익숙한 명문대생들이 창의력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며 채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 인터넷 학습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등학교는 자신의 취미를 개발할 수 있는 특성화고로 나타났다. 자신의 특기도 살리고 취업과 대학 진학,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해 알아본다.
일찌감치 꿈을 찾아 특성화고등학교를 택한 아이들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오로지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에만 ‘올인’한다면 거기에서 탈락해야 하는 90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모두가 공부로 1등이 될 수는 없다. 대신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 꾸준히 노력한다면 남과 다른 최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특성화고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오히려 무척 행복해 보인다. 올해 디자인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예하 양(17)은 “건축디자이너가 꿈인데 내 관심 분야의 이론 학습과 실습을 병행할 수 있는 학교생활이 너무 즐겁다”며 밝은 표정이다. 어머니 박미정 씨(45)는 “일류대학에 합격한 후에도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는데 아이의 재능과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선린인터넷고에 입학한 최종현 군(16)도 이런 학생이다. 중학교 때 반에서 1~2등을 놓친 적이 없어 인문계 가서 공부해도 상위권 대학 진학은 별 걱정 없었지만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실업계 학교라며 마뜩찮아 하셨지만, 컴퓨터를 좋아해 빌 게이츠 같은 IT관련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인 종현이는 인터넷고 진학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수연 양도 ‘소신 지원’은 마찬가지. 경기 성남중학교에서 전교 3등에서 6등 사이를 오가던 실력이었지만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만화가의 꿈에 한걸음 다가선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겁다.
대학입시를 능가하는 치열한 입학 경쟁
사회가 꽤 많이 다양해지고 다원화하면서 특성화고등학교가 뜨고 있다. 예전엔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 이류·삼류학교 취급받았던 실업계 학교들이 직업 분야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된 후 주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 초 현재 73곳인 직업형 특성화고를 2010년까지 200개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경기도는 기존에 있던 한국관광고, 한국조리과학고, 한국디지털미디어고, 한국애니메이션고, 한국도예고, 청담정보통신고 등 5개 학교에 63억7천여 만 원을 지원해 교육 인프라를 확충했고, 학과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고 4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한국애니메이션고는 6건, 한국도예고는 5건, 한국조리과학고는 4건씩 지역 내 기업과 산학협력을 체결하기도 했다.
특히 경기도 하남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2002년 직업교육개발원에서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가고 싶은 학교 1위’로 꼽힌 애니메이션고교 입학은 대입보다 더 치열하다. 올해 서울대 미대 전체 수석도 이 학교 졸업생이 차지했다.
실습 기자재도 웬만한 대학보다 풍부하고, 학생마다 2평 남짓한 개인 작화실이 주어질 정도. 덕분에 매년 열리는 각종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창작 대회의 상은 대부분 이 학교 학생들이 휩쓸고 있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만화 창작, 영상 연출, 컴퓨터게임 제작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들은 “대학에 진학해도 배울 게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애니고에서 다 배웠다”고 말할 정도.
선린인터넷고는 3학년 해외 유학반 학생 14명 전원이 미국 미주리·오리건·피츠버그주립대 등 미국 50~100위권의 주립대에 진학해 지난해 말 언론과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린인터넷고의 고승우 교사의 얘기다.
“창의성과 인성을 길러주기 위해 연극과 컴퓨터 음악을 필수로 가르치며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지원합니다. 창의성이야 말로 미래의 IT CEO가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노력으로 재학생이 CEO가 되어 이누스, 퍼스트맥스 등의 일반 벤처사업을 하며 이익금은 장학금으로 쓰입니다.”
경기도 시흥시 한국조리과학고는 유명 조리사의 꿈을 안고 제주, 해남에서 파주까지 전국에서 몰려오는 학생들로 경쟁률이 높다. 올 신입생 경쟁률은 5.5대 1. 중학교 내신 성적도 상위 20퍼센트 이상일 정도다. 대학 조리과보다 시설과 강사진이 낫다는 평가도 받는다. 힐튼·조선·프라자·롯데 호텔 등 특급호텔의 주방장, 조리장 29명이 현장 지도교사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로 출강하고 학생들을 호텔로 불러 현장 실습을 지도하기도 한다. 양식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덕분에 부산 아시안게임과 대구 유니버시아드 등 굵직굵직한 국가적인 행사마다 몇 달씩 전교생의 손길이 동원되기도 했다.
취업, 대학진학, 유학 등 폭넓은 진로
최근엔 더 다양한 직업인과 전문인을 양성하는 고등학교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고 미래의 보석전문가를 양성하는 인천한진고등학교(032-562-7955), 미래의 PGA와 LPGA 골퍼를 키우는 함평골프고등학교(061-322-3191), 한국마사고등학교(063-363-3580), 한국도예고등학교(031-638-6841) 등은 전문적인 프로그램과 실습으로 졸업 즉시 현장 투입이 가능한 인재들을 키워낸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은 목표가 뚜렷하다. 그러니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성취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방학 중에도 각 대회 공모전이나 자격증 준비로 밤늦도록 학교의 교실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최근엔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진로도 진학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게 현실. 대학 진학률도 높다. 선린인터넷고의 경우 올해는 283명 졸업생중 230명이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애니메이션고는 3학년 100명 중 82명이 디자인이나 만화애니메이션과, 영화 제작 등 관련학과로 진학했고, 10명 정도가 외국의 유명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디지털 미디어고등학교 역시 94명 졸업생 전원이 서울과 수도권 주요 대학에 진학했다.
학생 선발은 어떻게?
특성화고는 각종 대회 입상자 및 학교장 추천자 등의 특별전형과 중학교 내신 성적(주로 2학년성적 50퍼센트, 3학년 성적 50퍼센트)과 대회 수상 실적, 면접 등을 통한 일반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의 경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매년 2회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미리 가본 학교’ 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해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10월 14일 입시설명회를 갖는다.
입학 사정은 학교마다 일정이 다르지만 대부분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경까지 원서 교부와 접수가 이루어지며, 일반 실업계나 인문계보다 먼저 전형을 실시하기 때문에 불합격해도 인문계나 다른 실업계 고등학교로 지원할 수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을 인터뷰한 책 <그래, 엄마="" 나="" 미쳤어="">라는 책 추천사에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는 서울대 신입생과 특성화고 학생들을 이렇게 비교했다.
“거의 탈진 상태로 들어오는 서울대 신입생들은 하나 같이 규격화되고 잘 다듬어진 공산품 같다. 반면에 낡은 시스템을 거부하고 목적 없는 노 젓기를 거부하는 아이들, 이 책의 주인공들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일궈나갈 꿈나무들”이라고.
박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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