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추석
박영규
예로부터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했다. 들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힘든 농사일도 끝나 거두는 기쁨을 누릴 때가 추석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곳에서 대를 이어 살던 시절. 추석은 마을에서 친지들끼리 모여 즐기는 명절이었다. 그것이 산업화가 급진전 되고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무리를 지어 나간 뒤 변했다. 70년대 이후 고향을 떠난 도시민이 명절 때 귀향하면서 `민족 대이동''이란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그 풍속이 세월의 흐름 속에 다시 변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는 승용차 귀성 행렬은 없었다. 일반인이 자가용 승용차를 보유할만한 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다. 고향에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탔다. 기차는 늘 콩나물시루처럼 북적거렸고 버스는 한나절이나 걸렸다. 그것도 며칠 전부터 밤을 새며 표를 구해야 했다. 게다가 선물보따리를 들고 아이들까지 동반하니 힘들고 짜증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설렘이 컸기에 피곤함은 덜했다.
먼지를 날리던 시골길. 미루나무가 소실점을 이루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던 길. 황금빛 들판을 지나 마을 어귀에 닿으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감과 윤기가 흐르는 밤톨이 매달린 감나무와 밤나무가 시야에 닿고 앞마당 멍석 위엔 검붉은 고추가 햇살을 받던 정경들이 귀성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민족 대이동이 30여 년 지난 지금. 추석 이동 인구는 3천900만 명이나 된다. 그 중 80%이상이 승용차로 움직인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등이 여기 저기 격자형으로 건설돼 전국은 도로망으로 거미줄처럼 엮였다. 길을 너무 많이 닦아 생태계 훼손을 걱정할 정도다. 그런데도 많은 차량이 움직이니 도로 정체는 여전하다.
이번 추석에 승용차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서울에서 부산이 9시간, 광주가 7시간 정도라고 한다. 평상시의 2배 정도 걸린다. 그래도 10여 전에 비해 3~4시간 빨라졌으니 나아진 셈이다.
일년 간 가꾼 곡식 등을 거두어 나누고 조상에게 바치는 것이 추석이다. 그런데 시장 개방 이후 값싼 수입 농산물이 이 땅에 밀려들어 일상 음식은 물론 명절 제상까지 외국산이 점령하게 됐다. 수확의 의미가 무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명절을 명절답게 쇠지 못하는 계층도 늘어났다.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며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이 늘었다. 실직 등으로 거리나 쉼터에서 보내는 노숙자도 증가 추세다. 북한에서 이탈한 새터민도 1만 명을 넘는다. 불법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도 50만 명에 달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연휴를 해외나 국내 여행지에서 보내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이번 연휴 해외 여행객만 35만 명으로 추산된다. 추석의 풍속도가 이렇게 바뀌었다.
그럼 30년 후의 추석은 어떨까? 최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 비율이 50%를 넘어 매장을 앞질렀다. 불과 수년 전 까지도 30%정도 이었다. 이미 매장한 조상마저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는 추세다. 최근 수목장 등 새로운 장례 방식도 관심을 끌어 매장 문화가 급속히 퇴색할 전망이다. 공설이든 사설이든 납골 묘는 추모하기 편리한 곳에 세워진다. 따라서 자손의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향하던 귀성 행렬이 줄어들 것이 뻔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장되는 추세니 외국 농수축산물 수입이 확대될 것이다. 그만큼 수확의 의미를 내포한 추석의 의미도 반감한다. 장례 문화 변화로 귀성 인구가 줄면 세시 풍속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 친지가 오순도순 모여 정을 나누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휴가 여행만 즐기는 풍조가 보편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래의 변화는 불확실한 예측일 뿐이다. 중요한 건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주변에는 명절을 잊고 지내는 어려운 이들과 고향을 잃은 새터민이 적지 않다. 물심양면으로 이들을 생각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다민족 사회의 현실도 감안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따듯한 배려도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나누는 추석이라야 한다. 사회적 소외자인 이들이 그야말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고 여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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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예로부터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했다. 들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힘든 농사일도 끝나 거두는 기쁨을 누릴 때가 추석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곳에서 대를 이어 살던 시절. 추석은 마을에서 친지들끼리 모여 즐기는 명절이었다. 그것이 산업화가 급진전 되고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무리를 지어 나간 뒤 변했다. 70년대 이후 고향을 떠난 도시민이 명절 때 귀향하면서 `민족 대이동''이란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그 풍속이 세월의 흐름 속에 다시 변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는 승용차 귀성 행렬은 없었다. 일반인이 자가용 승용차를 보유할만한 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다. 고향에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탔다. 기차는 늘 콩나물시루처럼 북적거렸고 버스는 한나절이나 걸렸다. 그것도 며칠 전부터 밤을 새며 표를 구해야 했다. 게다가 선물보따리를 들고 아이들까지 동반하니 힘들고 짜증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설렘이 컸기에 피곤함은 덜했다.
먼지를 날리던 시골길. 미루나무가 소실점을 이루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던 길. 황금빛 들판을 지나 마을 어귀에 닿으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감과 윤기가 흐르는 밤톨이 매달린 감나무와 밤나무가 시야에 닿고 앞마당 멍석 위엔 검붉은 고추가 햇살을 받던 정경들이 귀성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민족 대이동이 30여 년 지난 지금. 추석 이동 인구는 3천900만 명이나 된다. 그 중 80%이상이 승용차로 움직인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등이 여기 저기 격자형으로 건설돼 전국은 도로망으로 거미줄처럼 엮였다. 길을 너무 많이 닦아 생태계 훼손을 걱정할 정도다. 그런데도 많은 차량이 움직이니 도로 정체는 여전하다.
이번 추석에 승용차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서울에서 부산이 9시간, 광주가 7시간 정도라고 한다. 평상시의 2배 정도 걸린다. 그래도 10여 전에 비해 3~4시간 빨라졌으니 나아진 셈이다.
일년 간 가꾼 곡식 등을 거두어 나누고 조상에게 바치는 것이 추석이다. 그런데 시장 개방 이후 값싼 수입 농산물이 이 땅에 밀려들어 일상 음식은 물론 명절 제상까지 외국산이 점령하게 됐다. 수확의 의미가 무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명절을 명절답게 쇠지 못하는 계층도 늘어났다.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며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이 늘었다. 실직 등으로 거리나 쉼터에서 보내는 노숙자도 증가 추세다. 북한에서 이탈한 새터민도 1만 명을 넘는다. 불법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도 50만 명에 달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연휴를 해외나 국내 여행지에서 보내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이번 연휴 해외 여행객만 35만 명으로 추산된다. 추석의 풍속도가 이렇게 바뀌었다.
그럼 30년 후의 추석은 어떨까? 최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 비율이 50%를 넘어 매장을 앞질렀다. 불과 수년 전 까지도 30%정도 이었다. 이미 매장한 조상마저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는 추세다. 최근 수목장 등 새로운 장례 방식도 관심을 끌어 매장 문화가 급속히 퇴색할 전망이다. 공설이든 사설이든 납골 묘는 추모하기 편리한 곳에 세워진다. 따라서 자손의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향하던 귀성 행렬이 줄어들 것이 뻔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장되는 추세니 외국 농수축산물 수입이 확대될 것이다. 그만큼 수확의 의미를 내포한 추석의 의미도 반감한다. 장례 문화 변화로 귀성 인구가 줄면 세시 풍속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 친지가 오순도순 모여 정을 나누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휴가 여행만 즐기는 풍조가 보편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래의 변화는 불확실한 예측일 뿐이다. 중요한 건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주변에는 명절을 잊고 지내는 어려운 이들과 고향을 잃은 새터민이 적지 않다. 물심양면으로 이들을 생각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다민족 사회의 현실도 감안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따듯한 배려도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나누는 추석이라야 한다. 사회적 소외자인 이들이 그야말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고 여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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