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더 쓸쓸한 사람들>

지역내일 2006-10-04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모두가 가족 친지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한편에서는 긴 연휴를 맞아 국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추석이 돌아오면 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다 영영 고향을 잃어버린 할머니, 돈을 벌겠다며 고향 떠나 남한 땅을 찾아온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와 권력의 무고한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등이 그들이다. 내일신문이 추석을 앞두고 외롭고 쓸쓸한 이들을 만났다.

“북에 계신 어머니 생각 많이 나요”
새터민 김효원씨, 서울서 맞는 첫 추석

보안국에서 일하고 싶었던 김효원(여·31·가명)씨는 지난해 8월 함경남도 함흥의 고향집을 나섰다. 김씨는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지난해 추석은 낯선 몽골에서 보냈어요. 엄마와 고향 생각이 많이 났죠.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울었어요.”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었지만 남한 땅으로 갈 수 있을지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날카롭게 긴장해 있는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김씨는 난생 처음 가족과 떨어져 홀로 추석을 보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행이 결정된 후 입국심사와 사회적응 훈련을 거쳐 올 2월 서울 강서구에 새터전을 마련했다. 한국 정부가 새터민에게 준 국민임대주택이다.
전기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도 가야하고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도 마주해야 한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한 김씨는 치료를 받으며 경찰로부터 사고조사도 받는 어려운 사정에 처해있다. 그래서인가, 추석을 앞두고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추석이기 때문일 거예요. 북에선 추석날 크게 떠들지 않아요. 설은 3일 쉬지만 추석은 하루만 쉬어요. 아버지 어머니 모두 고아였기 때문에 추석에도 우린 갈 곳이 없었어요. 고향 집 근처 가장 높은 산에 올라 바람 쐬고 맛있는 것 먹고 그렇게 놀았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산소에 갔어요. 13살 이후죠. 아버지 산소엔 큰 밤나무가 있었는데 밤 따고 놀았어요. 그게 전부예요.”
효원씨는 추석날 아버지가 그립다. 홀로 힘들게 살아 온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나는가 보다. 밝게 웃으며 얘기하던 효원씨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추석이 다가오니 북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효원씨에게도 빛나는 날들이 있었다. 젊은 날 기업소에 다닐 때의 추석은 활기가 넘쳤다.
“스물 세 살 때였어요. 기업소의 사로청에 소속돼 있었는데 오전에 산소에 갔다 오후에는 사업소에서 운동회를 조직해요.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놀이터 버드나무에 공을 달아두고 그네를 타며 공을 차는 경기를 했죠. 나도 공을 맞춰 기업소에서 만든 상품을 받았어요.”
그의 어린날 꿈은 사회보안국 요원이었다. 전쟁 고아인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든든한 보안국원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전사한 줄 알았던 친척 중 한 사람이 남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꿈을 접었다. 분단의 비극은 그의 삶을 옥죄었다.
21살 때부터 장사를 배운 그는 틈틈이 국경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중국에서 옷이나 전기제품 등 물건을 떼다 고향의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았다. 김씨를 살피는 경찰 관계자는 “활달한 성격이어서 장사를 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고향을 떠난 후 두번째 추석을 앞두고 있다. 아니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첫 번째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6개월 먼저 한국 땅에 온 언니와 서로 위로하고 옛날 생각도 하면서 추석을 보낼 생각이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여기저기 아파 약을 끼고 살지”
삼청교육대 피해자 김기태씨

“1981년 1월 5일 그날은 아직도 잊지를 못해, 집에서 갑자기 끌려간 곳은 대구에 있는 24사단 내무반인데 꼬박 1주일 동안 매만 맞았어”
“거기가 삼청교육대인줄은 나중에야 알았어. 대구통합병원에서 1주일 치료받고 귀가했는데 이미 반병신이 돼 있었지”
올해 70세의 김기태씨는 5공화국 당시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반죽음이 돼 돌아왔다. 하지만 김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김씨는 젊어서 목수 일을 하다가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다툰 이후 아무런 이유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내가 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는지 정말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어. 당시 경찰 말로는 목사가 보내라고 했다는 말만 들었어.” 김씨는 지금도 자신이 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그는 삼청교육대에서 나온 이후 집에서 잠시 쉬다가 83년 청송감호소에 다시 끌려갔다. 86년 출감한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20년을 광명의 한 단칸 셋방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결혼도 하지 못했다. 젊어서 목수 일을 한다며 떠돌아다니다 전과도 몇 번 생기면서 결혼할 기회를 놓쳤다.
몸이 상한 이후 처음에는 동생이 잠시 돌봐주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35만원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그의 집에는 조그만 냉장고와 밥솥, 오래된 텔레비전이 살림살이의 전부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밥을 해 먹어야 할뿐 아니라 각종 집안 일을 하다보니 그 만큼 힘들어 한다.
현재 김씨는 의료보호 1종으로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 등을 받고 있지만 요추 추간판 탈출증과 퇴행성 요추염, 경추염, 우측대퇴골부 무혈성 괴사 등 온갖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특히 다리를 절어 제대로 걷기도 힘든 형편이다.
그는 “요즘 들어 우울증 증세도 있고 약이 없으면 생활이 안된다”며 “추석이라고 누가 와보는 사람이 있겠나”라고 한숨을 쉰다.
김씨는 요새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법이 개정돼 명예회복과 함께 제대로 보상을 받고자 아픈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몇년 전에 보상이라고 380만원이 나왔어”라며 “당시 물가와 임금을 기준으로 보상을 해주니 지금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라고 정부의 보상대책을 비난했다.
김씨는 이미 몸도 성치 않고 추석명절이라고 누구하나 돌봐주는 가족도 없지만 남은 생을 조금이나마 보람을 찾기 위해서 하루빨리 자신과 같이 죄 없이 끌려가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한편 김씨와 같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은 노회찬 의원 등이 추진중인 관련 법률의 개정 움직임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으며 얼마전에는 사망자들에 대한 추모식도 열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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