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위해 임단협 무교섭 타결
비정규노조와 조직 통합 대단결 결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지부(위원장 임명배)가 지난 7월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통합하자, 노동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같은 사업장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 직원들이 하나의 노조로 묶인다는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다. 더구나 양노조는 각각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조직이어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산관리공사 지부 임명배 위원장은 이를 두고 “한순간에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5년간 복잡하고 어려운 난관을 이겨낸 결과”라고 표현했다.
지난 5년 동안 이 회사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자산관리공사가 출범하던 2000년부터 이미 비대해져 있던 비정규직은 경영상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은 전체 1600명 직원중 1200명이나 됐다.
자산관리공사의 전신인 성업공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부실채권 정리를 전담해왔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급증하면서 업무량도 폭증했다. 회사는 5개 정리은행 퇴직자들을 기간제 계약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5년으로 정한 시한이 지나자, 비정규직은 회사를 나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정원 축소와 함께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강화됐고, ‘왜 우리만 회사를 나가야 하느냐’는 비정규직의 불만이 쏟아졌다. 실제로 사내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정규직을 비난하는 글들이 하루 50~60건이나 올라왔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극심했다. 한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만 받았고, 건강검진서도 제외됐다. 직원들간 갈등과 반목은 극심했다. 이런 관계를 사용자측은 악용하기도 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비정규직 핑계를 댔고, 비정규직을 승진시켜 정규직과 갈라놓기도 했다.
당시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던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회사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정규직 차별은 회사서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총각이 있었는데, 사귀던 여자 집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는 겁니다.”
그는 2001년 노조 위원장에 출마했고, 당선 직후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서 유일하게 부실채권 정리사업 경험을 가진 직원들을 내쫓는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인력규모를 초기 수준인 4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은 완강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정규직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정규직들은 ‘우리도 불안하다’, ‘위원장으로 뽑았더니 엉뚱한 짓 한다’, ‘노조를 비정규직이 차지한다’고 반발했다. 보통 1년에 한두번 하는 집행간부토론회, 대의원수련회를 2002년 중순부터 매달 열었다.
집행부는 과거 성업공사 시절로 돌아가선 회사 존립조차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공사가 해외 부실채권시장에 진출할 경우 발생할 수익규모를 예측했다. 당시 회사는 해외 각국과 제휴를 통해 사업확대를 추진중이었다. 부실자산 처리에서 매각자 입장인 자산관리공사가 선진투자사보다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해외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노조는 이를 위한 적정 인력을 1200명이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에게 이를 설명했다. 조정이 불가피한 400명은 합리적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1년 설득 끝에 정규직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정규직에게 당분간 과도한 임금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미리 못박았다.
회사측에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첫 단추로 합리적 인사운영을 제시했다. 그동안 회사가 맘대로 운영해오던 계약직 해지율 설정을 노조와 합의해달라고 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원을 확보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정규직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인상보다 2배 올리도록 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엔 정규직들의 양보가 결정적이었다. 수익원 발굴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용자를 위해 노조는 노사평화선언과 임단협 무교섭 타결로 힘을 실어줬다. 그 결과 회사측도 2004년부터는 더 이상 인원을 줄이지 않았다.
2004년말 처음으로 50명(순수계약직은 10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05년엔 80명이, 지난 7월엔 1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고비가 없진 않았다. 2003년 대의원대회에선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면서 수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에선 5급 이하만 받아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 수를 1대1로 만들자고 했다. 4급 이상은 별도의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했다. 2004년 5월 노조가입에서 제외됐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심각한 노-노 갈등이 빚어졌다. 노조 선거를 앞두고 비정규직 노조명의로 ‘현 위원장을 찍지 마라’는 성명도 나왔다. 극단적인 감정 대립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같은 노조간 소모적 경쟁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줬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는 7월 통합했다.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측 입장에서도 동질성과 응집력을 확보하고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자산관리공사의 경우도 통합 이후 경영부담을 덜 수 있어서 회사도 환영했다”고 말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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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조와 조직 통합 대단결 결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지부(위원장 임명배)가 지난 7월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통합하자, 노동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같은 사업장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 직원들이 하나의 노조로 묶인다는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다. 더구나 양노조는 각각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조직이어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산관리공사 지부 임명배 위원장은 이를 두고 “한순간에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5년간 복잡하고 어려운 난관을 이겨낸 결과”라고 표현했다.
지난 5년 동안 이 회사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자산관리공사가 출범하던 2000년부터 이미 비대해져 있던 비정규직은 경영상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은 전체 1600명 직원중 1200명이나 됐다.
자산관리공사의 전신인 성업공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부실채권 정리를 전담해왔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급증하면서 업무량도 폭증했다. 회사는 5개 정리은행 퇴직자들을 기간제 계약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5년으로 정한 시한이 지나자, 비정규직은 회사를 나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정원 축소와 함께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강화됐고, ‘왜 우리만 회사를 나가야 하느냐’는 비정규직의 불만이 쏟아졌다. 실제로 사내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정규직을 비난하는 글들이 하루 50~60건이나 올라왔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극심했다. 한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만 받았고, 건강검진서도 제외됐다. 직원들간 갈등과 반목은 극심했다. 이런 관계를 사용자측은 악용하기도 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비정규직 핑계를 댔고, 비정규직을 승진시켜 정규직과 갈라놓기도 했다.
당시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던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회사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정규직 차별은 회사서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총각이 있었는데, 사귀던 여자 집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는 겁니다.”
그는 2001년 노조 위원장에 출마했고, 당선 직후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서 유일하게 부실채권 정리사업 경험을 가진 직원들을 내쫓는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인력규모를 초기 수준인 4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은 완강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정규직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정규직들은 ‘우리도 불안하다’, ‘위원장으로 뽑았더니 엉뚱한 짓 한다’, ‘노조를 비정규직이 차지한다’고 반발했다. 보통 1년에 한두번 하는 집행간부토론회, 대의원수련회를 2002년 중순부터 매달 열었다.
집행부는 과거 성업공사 시절로 돌아가선 회사 존립조차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공사가 해외 부실채권시장에 진출할 경우 발생할 수익규모를 예측했다. 당시 회사는 해외 각국과 제휴를 통해 사업확대를 추진중이었다. 부실자산 처리에서 매각자 입장인 자산관리공사가 선진투자사보다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해외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노조는 이를 위한 적정 인력을 1200명이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에게 이를 설명했다. 조정이 불가피한 400명은 합리적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1년 설득 끝에 정규직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정규직에게 당분간 과도한 임금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미리 못박았다.
회사측에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첫 단추로 합리적 인사운영을 제시했다. 그동안 회사가 맘대로 운영해오던 계약직 해지율 설정을 노조와 합의해달라고 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원을 확보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정규직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인상보다 2배 올리도록 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엔 정규직들의 양보가 결정적이었다. 수익원 발굴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용자를 위해 노조는 노사평화선언과 임단협 무교섭 타결로 힘을 실어줬다. 그 결과 회사측도 2004년부터는 더 이상 인원을 줄이지 않았다.
2004년말 처음으로 50명(순수계약직은 10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05년엔 80명이, 지난 7월엔 1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고비가 없진 않았다. 2003년 대의원대회에선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면서 수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에선 5급 이하만 받아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 수를 1대1로 만들자고 했다. 4급 이상은 별도의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했다. 2004년 5월 노조가입에서 제외됐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심각한 노-노 갈등이 빚어졌다. 노조 선거를 앞두고 비정규직 노조명의로 ‘현 위원장을 찍지 마라’는 성명도 나왔다. 극단적인 감정 대립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같은 노조간 소모적 경쟁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줬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는 7월 통합했다.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측 입장에서도 동질성과 응집력을 확보하고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자산관리공사의 경우도 통합 이후 경영부담을 덜 수 있어서 회사도 환영했다”고 말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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