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칼럼>핵에 관한 에피소드(2006.10.13)

지역내일 2006-10-12
핵에 관한 에피소드
안병찬 언론인·한국VJ협회 회장


연 전에 일본 히로시마에 갔었다. 60년 세월이 흘렀으나 심리적으로는 이 비탄의 섬에서 자란 우거진 수림이 아직도 방사능을 뿜어대는 듯 느껴졌다.
지금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협죽도(夾竹桃)가 피어있다. 붉은 꽃이 향기를 내는 협죽도는 히로시마의 시화(市花)이다.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 이회성이 협죽도의 상념을 술회했다.
어느 날 평화공원을 걸어가던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협죽도를 봤다. 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런데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를 돕는 한 여성의 증언은 딴판이었다. 협죽도의 붉은 꽃이 피 흘리는 모습을 생각나게 해서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다.
작가 이회성은 아름다운 꽃이 실은 핵폭탄의 공포를 떠올리게 만드는 꽃임을 알았다. “여인의 상상력과 나 자신의 상상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원폭의 피 흐르는 히로시마 협죽도
그 깨달음으로 작가는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의 가슴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원폭 희생자와 나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자고 생각하면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이 자행한 역사상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핵폭탄 공격. 죄 없는 민간인이 밀집한 두 도시 한 복판에 불시에 원폭을 투하하여 대량 살상한 미국은 그 불명예와 원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미국 내 여론조차 일본을 원폭 공격한 도덕성을 놓고 찬반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것을 보라. 물론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한 명분이 있다고 말한다. 나가사키에 원폭을 던진 B-29 조종사 찰스 스위니 소령은 종전 후 ‘원폭 투하 임무’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옹호, 설파하고 다녔다. 그 후 가장 젊은 장군으로 진급했고, 2년 전에 84세로 죽었다.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에놀라 게이호 대원들은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원폭 투하 명령에 따르겠다고 다짐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의 핵개발과 핵공격은 저명한 과학자들이 펼친 ‘죽음의 안무’였다는 비판도 있다. 맨해튼 계획(미국 핵개발계획)을 주도한 로버트 오펜하이머, 엔리코 페르미 등 4명의 과학자는 “핵폭탄이 죽음의 무기지만, 역으로 전쟁을 끝내고 인류의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구실로 일본에 핵폭탄을 쓰기로 결의했다. 물론 원폭 공격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 트루먼이다.
그러나 레오 질라드 같은 과학자는 핵폭탄 투여는 ‘씻을 수 없는 죄’가 된다고 반대하다가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어 버렸다. 원폭개발을 주도했던 오펜하이머는 결국 핵폭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루먼을 만나 “내 손에 피가 묻어있다”고 말하더니, 평화주의자로 돌아섰다.
미국이 핵실험 왕국의 입지를 향유하는 사이 중국은 매우 감정적인 동기 하에 핵개발을 추진했다. 중소이념분쟁 시기에 중국은 유명한 핵무기 논쟁을 통해 자국의 핵개발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했다. 모스크바에서 미국 소련 영국 3개국 대표가 핵실험부분금지조약을 체결하자 중국은 동 조약이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 독점상태, 미제국주의의 핵무기 우월상태를 공고히 하는 사기극이라고 부르짖었다. 특히 소련을 향해 침략의 희생자에게는 자위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한다고 배신행위를 격렬히 규탄했다.

“기필코 핵무기 만든다. 두고 보라!”
“우리는 설사 백년이 걸려서 단 한 개의 핵무기도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소련의 지휘봉을 따르지도 않고 미제국주의의 핵 공갈정책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기필코 핵무기를 만들고야 만다. 두고 보라.” 이 맹서가 있고서 일 년이 경과한 1964년 10월 중국은 소련의 예언을 뒤엎고 핵실험에 성공한다.
핵실험 때마다 중국은 ‘어떤 때, 어떤 정황 하에서도 결코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방어 목적의 결의를 다짐해왔다.
그런 중국이 이제 와서는 북한의 핵실험이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에 대한 도전(런민르바오 인터넷판)이라고 주장한다. 천하무적의 미국과 거국주의 중국은 이처럼 핵의 이중성을 유감없이 들어낸다.
일면 북한의 핵실험은 오기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의 반 공화국 압살 책동이 극한점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 정서 하에서,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 대응조치로서 핵 억제력 확보에 필수적인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천명한 북한 외무성 성명은 어쩐지 42년 전의 중국 커뮤니케 말투와 흡사하다.
미국 부시정권의 강경 일변도 대북 정책이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요즘, 마침 한국에 온 미국 예일대 교수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핵실험은 북한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나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것도 미국의 오만한 대북 핵 정책을 염두에 둔 말이다.
핵 때문에 꿈자리가 사납다. 우리는 허위와 모순으로 얽힌 ‘핵의 악몽’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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