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칼럼>최규하 전 대통령이 남긴 교훈

지역내일 2006-10-23
최규하 전 대통령이 남긴 교훈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우리나라 헌정사상 재임 중에 군사 쿠데타를 당한 대통령은 윤보선, 최규하 두 사람이다.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이었던 윤 전 대통령은 1961년 5월 16일 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반면에 대통령제 하의 대통령이었던 최 전 대통령에게는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이 ‘비운의 대통령’이 22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에 선출된 1979년 12월 6일 이후 대통령 직을 사임한 1980년 8월 16일까지의 8개월은 최규하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역사에서도 비운의 세월이었다. 12·12와 5·18이라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두 큰 사건이 그의 짧은 재임기간동안 일어났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요구받은 결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달라질 수 있던 사건들이었다.

성공한 외교관, 실패한 대통령
그는 피살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10대 대통령에 선출된 지 엿새만인 12월 12일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한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체포(이 사건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쿠데타적 사건’으로 공식 정리되었다)를 승인해줘야 하는 궁지에 몰렸고, 실질적인 통치권이 신 군부의 손에 들어간 상태에서 12월 2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이듬 해 5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 중이던 광주시민들을 군이 무차별 살상하는 사태에 대해서도 헌법상의 군 통수권자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5·18당시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정황을 드러내는 기록들도 있다. 신 군부가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후 5월 말까지 그가 공식행사에 참석하거나 군관계자나 민간인을 면담한 기록이 대통령 의전일지에 나타나지 않으며, 심지어 이 기간동안 각료를 만난 기록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모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분류될 만 하다. 그러나 그는 직업 외교관으로서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수재로서 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52년부터 주일대표부 총영사, 공사 등을 지내다가 59년 9월 일본 일선 외교관 생활을 청산하고 외무부 차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4·19혁명 이후 외무부 차관 직을 사임했다가 63년 3월 외무부 본부 대사가 되어 아시아 태평양 각료회의(APEC) 이사회 설립을 추진하여 66년 제1차 대회를 성사시켰다. 그는 말레이시아 대사를 거쳐 67년 외무부 장관에 발탁되는 고속승진의 가도를 달렸다. 그는 75년 말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이듬해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79년까지 장수 총리를 지내다가 박 대통령의 피살로 역사적 격랑에 휘말렸다.
관료로서의 그에 대해서는 양심적이다, 또는 깨끗하다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고인이 된 그의 빈소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생동안 외교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한 분이며, 성실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격랑을 헤쳐 나가야 했을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해서는 가혹한 평가도 나온다.
빈소를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로서 당시 대통령 권한 대행이던 최 전 대통령을 만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 말은 그가 지난 99년 낸 회고록에서 최 전 대통령에 대해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켰다”고 평가한 것을 생각나게 만든다.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 일어난 여러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그 비밀을 무덤 속에까지 가져가 버린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법정에서 법에 의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그가 집필하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회고록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공직자의 정체성과 사명감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죽음 앞에서 먼저 생각할 일은 그가 가슴 속에 품고 간 비밀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없이, 인생항로에서 만나는 결단의 순간을 회피했을 때 우리 자신과 주변에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람이다. 외교관으로서의 그는 뛰어난 영어실력과 신사적인 매너, 그리고 양심적인 태도만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자리가 요구하는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헌신을 갖추지 않고는 아무리 욕심나는 자리라도 오르기를 주저할 것을 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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