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국민에게 길을 물어라
유승삼 칼럼 언론인·KAIST초빙교수
이용훈 대법원장의 초도 순시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사협회가 일주일이나 앙앙불락 하는 것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22일 한 판사가 동료 판사들에게 보낸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조서를 ‘꾸민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아니라 ‘산다’고 한다. ~조서를 진술한 그대로 작성해 준다면 어찌 꾸민다고 할 것이며 전심전력으로 나를 도와준 변호사를 왜 ‘산다’고 하는 것인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국민은 공판중심주의 원한다
검찰과 변호사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이렇다. 그런데도 자성은커녕 대법원장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제껴 두고 자신들의 체면과 직역 이기주의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가소롭다.
대법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공판중심주의는 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외국 영화에서와 같은 긴박감 있는 법정 공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법정은, 좀 과장하면 ‘꾸민’ 조서를 가진 검사와, 소송 당사자가 ‘산’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하는 판사의 입회 아래 서류 심사를 하는 곳이다. 이른바 문서조서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니 표현은 다소 직설적이고 거칠었는지는 모르나 “검사의 수사 기록을 던져 버리고 법정에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대법원장의 강조는 국민의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것이었다.
‘밀실’에서 ‘꾸민’ 조서를 중심으로 한 ‘서류심사’재판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맞서면서 진실을 가리게 하자는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는 이미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도 실시 결론이 난 것이다. 또 부분적으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장의 말은 그것의 촉진을 강조한 것뿐인데 검찰과 변협은 그 취지는 아랑곳 않고 그 표현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말 그대로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래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표방해 왔다. 취임사에서 “사법부는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한 것부터 시작해 “화이트 칼러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히 판결해야 한다”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압수 수색 영장은 국민의 신체·재산을 제약하는 마지막 수단인데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등등 일련의 발언들이 그것이다. 모두 국민을 중심에 두자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번 발언이 검찰과 변호사를 폄하하고 모욕하려 했던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로가 부담스러운지 시끄러웠던 사태는 대법원장이 적당한 선에서 유감 표명을 하면, 현재의 선에서 갈등을 봉합하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식의 미봉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법원이 제기한 ‘국민을 섬기는 법원’만들기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가령 법원 내부나 검찰, 재야 법조계가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덮어둘 일은 아닐 것이다. 기왕에 갈등이 불거진 마당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이성적인 토론으로 사법개혁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래야 각 직역간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대법원장의 신중한 영장발부에 대한 지적이 있은 뒤, 각 법원의 영장 기각률이 거의 두 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비례해서 법원에 대한 검찰의 불만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런 식의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변화나 그에 따른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적인 안목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합의하에 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유전무죄’여전히 법조계 숙제
어느 판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고백했다. 국민 역시 그 두 말이 사라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유전무죄’란 말은 한 탈주범이 인질극 과정에서 외쳐 더욱 더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건과 그 말은 지난 봄 영화로 다시 부활했다. 왜 그 사건이 18년이 지난 오늘, 다시 영화로 부활하며 그 인질범이 외친 ‘유전무죄’가 왜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는가. 감정 대립할 때가 아니다. 법조계는 함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해결 방법은 국민의 응어리 진 가슴 속에 있다. 국민에게 물으면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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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 칼럼 언론인·KAIST초빙교수
이용훈 대법원장의 초도 순시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사협회가 일주일이나 앙앙불락 하는 것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22일 한 판사가 동료 판사들에게 보낸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조서를 ‘꾸민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아니라 ‘산다’고 한다. ~조서를 진술한 그대로 작성해 준다면 어찌 꾸민다고 할 것이며 전심전력으로 나를 도와준 변호사를 왜 ‘산다’고 하는 것인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국민은 공판중심주의 원한다
검찰과 변호사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이렇다. 그런데도 자성은커녕 대법원장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제껴 두고 자신들의 체면과 직역 이기주의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가소롭다.
대법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공판중심주의는 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외국 영화에서와 같은 긴박감 있는 법정 공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법정은, 좀 과장하면 ‘꾸민’ 조서를 가진 검사와, 소송 당사자가 ‘산’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하는 판사의 입회 아래 서류 심사를 하는 곳이다. 이른바 문서조서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니 표현은 다소 직설적이고 거칠었는지는 모르나 “검사의 수사 기록을 던져 버리고 법정에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대법원장의 강조는 국민의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것이었다.
‘밀실’에서 ‘꾸민’ 조서를 중심으로 한 ‘서류심사’재판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맞서면서 진실을 가리게 하자는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는 이미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도 실시 결론이 난 것이다. 또 부분적으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장의 말은 그것의 촉진을 강조한 것뿐인데 검찰과 변협은 그 취지는 아랑곳 않고 그 표현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말 그대로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래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표방해 왔다. 취임사에서 “사법부는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한 것부터 시작해 “화이트 칼러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히 판결해야 한다”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압수 수색 영장은 국민의 신체·재산을 제약하는 마지막 수단인데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등등 일련의 발언들이 그것이다. 모두 국민을 중심에 두자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번 발언이 검찰과 변호사를 폄하하고 모욕하려 했던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로가 부담스러운지 시끄러웠던 사태는 대법원장이 적당한 선에서 유감 표명을 하면, 현재의 선에서 갈등을 봉합하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식의 미봉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법원이 제기한 ‘국민을 섬기는 법원’만들기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가령 법원 내부나 검찰, 재야 법조계가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덮어둘 일은 아닐 것이다. 기왕에 갈등이 불거진 마당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이성적인 토론으로 사법개혁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래야 각 직역간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대법원장의 신중한 영장발부에 대한 지적이 있은 뒤, 각 법원의 영장 기각률이 거의 두 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비례해서 법원에 대한 검찰의 불만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런 식의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변화나 그에 따른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적인 안목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합의하에 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유전무죄’여전히 법조계 숙제
어느 판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고백했다. 국민 역시 그 두 말이 사라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유전무죄’란 말은 한 탈주범이 인질극 과정에서 외쳐 더욱 더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건과 그 말은 지난 봄 영화로 다시 부활했다. 왜 그 사건이 18년이 지난 오늘, 다시 영화로 부활하며 그 인질범이 외친 ‘유전무죄’가 왜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는가. 감정 대립할 때가 아니다. 법조계는 함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해결 방법은 국민의 응어리 진 가슴 속에 있다. 국민에게 물으면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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