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열리기는 하지만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토닥거리기 잘 하는 남녀관계에 비유될 수 있을까. 싸우기도 잘 하고 다시 만나기도 잘 하니 말이다. 애인 사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싸우고 헤어지기가 몇 차례였던가.
중국의 중재로 북?미가 중국에서 만나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모처럼 반가운 뉴스였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같은 선로를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위태로운 대결국면을 피하게 된 것만도 큰 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 생각이 없는 것은 너무 여러번 속고 실망한 때문이다.
6자회담 재개를 알리는 신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부터 딴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 관계자는 “핵 보유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앞으로 6자회담은 핵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핵무기 보유국 대우를 해 달라는 말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금융제재 문제 해결의 전제 아래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뭐라든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나라는 없다”고 했다. 동아태 담당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이 아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상이몽도 이 정도면 결말은 볼 장 다 본 것이나 다를 것 없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6자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라이스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듯이, 미국은 북한에게 핵 개발 계획의 완전 포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핵 포기 일정과 검증방식까지 제시하도록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까지 요구할 것이라는 소식에서는 시계바늘이 1990년대로 되돌아간 착각을 느끼게 된다.
핵 보유국 대우를 요구하고 나선 북한이 순순히 이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볼 사람이 있을까. 상대가 들어주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행위가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아무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시간과 명분을 벌게 될 것이고, 그 사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굳혀가게 되리라는 것도 상식적인 전망이다.
대북 초강경정책이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켰다는 미국 조야의 비판에 생각이 미치면, 부시 행정부의 유연성이 아쉬워 진다. 꼭 6년 전 이맘 때 북한의 조명록이 인민군 장성복장으로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대좌한 사진이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 채택은 북미 수교를 시간문제로 인식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약속으로 한반도에 봄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취임해 북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서 붕괴정책을 표면화하자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북한은 NPT 탈퇴와 핵 동결 해제로 저항하였고, 미국은 대북 중유공급 중단, 경수로 사업 중단으로 맞서 대립을 첨예화 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9?19 공동성명이 성사되어 또 한 차례 기대를 키웠다.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와 동시에 NPT에 복귀하고, 북·미 북·일관계를 정상화 하며, 6자회담 당사국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하고, 한반도 항구 평화체제 협상을 갖는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성명이 나온 바로 다음 날 미국은 북한의 위조달러를 문제삼아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을 거래 위험은행으로 지정했다. 그 은행의 북한 계좌들을 동결시켜 돈줄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 뒤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응답했고, 그래도 미국이 반응하지 않자 핵실험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보였다.
설마설마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형국이다. 이제는 서로간에 무엇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탐색할 때가 되었다. 두 나라는 서로 먼저 액션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면 나도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고 끝까지 겨루면 둘 다 손해다. 황량한 들판에서 마주 선 총잡이들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한국도 싸움 말리기에 더 지혜를 짜야 한다. 북한이 오판을 하지 못하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적지 않은 경제지원을 해온 우리로서도 북한을 움직일 유효한 수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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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토닥거리기 잘 하는 남녀관계에 비유될 수 있을까. 싸우기도 잘 하고 다시 만나기도 잘 하니 말이다. 애인 사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싸우고 헤어지기가 몇 차례였던가.
중국의 중재로 북?미가 중국에서 만나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모처럼 반가운 뉴스였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같은 선로를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위태로운 대결국면을 피하게 된 것만도 큰 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 생각이 없는 것은 너무 여러번 속고 실망한 때문이다.
6자회담 재개를 알리는 신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부터 딴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 관계자는 “핵 보유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앞으로 6자회담은 핵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핵무기 보유국 대우를 해 달라는 말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금융제재 문제 해결의 전제 아래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뭐라든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나라는 없다”고 했다. 동아태 담당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이 아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상이몽도 이 정도면 결말은 볼 장 다 본 것이나 다를 것 없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6자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라이스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듯이, 미국은 북한에게 핵 개발 계획의 완전 포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핵 포기 일정과 검증방식까지 제시하도록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까지 요구할 것이라는 소식에서는 시계바늘이 1990년대로 되돌아간 착각을 느끼게 된다.
핵 보유국 대우를 요구하고 나선 북한이 순순히 이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볼 사람이 있을까. 상대가 들어주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행위가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아무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시간과 명분을 벌게 될 것이고, 그 사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굳혀가게 되리라는 것도 상식적인 전망이다.
대북 초강경정책이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켰다는 미국 조야의 비판에 생각이 미치면, 부시 행정부의 유연성이 아쉬워 진다. 꼭 6년 전 이맘 때 북한의 조명록이 인민군 장성복장으로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대좌한 사진이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 채택은 북미 수교를 시간문제로 인식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약속으로 한반도에 봄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취임해 북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서 붕괴정책을 표면화하자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북한은 NPT 탈퇴와 핵 동결 해제로 저항하였고, 미국은 대북 중유공급 중단, 경수로 사업 중단으로 맞서 대립을 첨예화 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9?19 공동성명이 성사되어 또 한 차례 기대를 키웠다.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와 동시에 NPT에 복귀하고, 북·미 북·일관계를 정상화 하며, 6자회담 당사국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하고, 한반도 항구 평화체제 협상을 갖는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성명이 나온 바로 다음 날 미국은 북한의 위조달러를 문제삼아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을 거래 위험은행으로 지정했다. 그 은행의 북한 계좌들을 동결시켜 돈줄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 뒤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응답했고, 그래도 미국이 반응하지 않자 핵실험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보였다.
설마설마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형국이다. 이제는 서로간에 무엇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탐색할 때가 되었다. 두 나라는 서로 먼저 액션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면 나도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고 끝까지 겨루면 둘 다 손해다. 황량한 들판에서 마주 선 총잡이들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한국도 싸움 말리기에 더 지혜를 짜야 한다. 북한이 오판을 하지 못하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적지 않은 경제지원을 해온 우리로서도 북한을 움직일 유효한 수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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