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뒷모습이 아름다운 지도자(함인희 2006.11.08)

지역내일 2006-11-07
뒷모습이 아름다운 지도자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언젠가 서점에서 표지에 이끌려 우연히 집어든 ‘뒷모습’이란 제목의 책이 있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글에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이 어우러진 ‘뒷모습’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네 뒷모습에도 그토록 풍부한 표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구나,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던 매혹적인 책이었다. 이후 주위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러고 보니 뒷모습 속엔 그 풍부한 표정 못지않게 본인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솔직함이 묻어 나옴을 깨닫게 되었다.
“사회는 거대한 연극 무대와 같다”고 주장한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사회가 부여해준 각본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는 배우 같은 존재라 한다. 그러하기에 상황에 따라 상대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자신의 “인상관리”란 작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개인의 연기력을 평가받게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맞선을 보는 자리나 취직을 위한 면접자리 같은 경우는 특별히 인상관리가 성패를 좌우하기에 “내숭 70%+솔직 30%”(?)의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는 충고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데 우리의 뒷모습만큼은 뜻대로 마음대로 인상관리가 잘 안되는 듯 하다. 나의 절친한 친구는 누가 보아도 훌륭한 선생이요 자상한 아내이자 따뜻한 엄마이지만, 뒷모습엔 언제라도 일상을 벗어나고픈 방랑기와 아무도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선생 앞에서는 영락없는 모범생이지만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에선 호시탐탐 일탈을 꿈꾸는 반항아 기질이 농후한 제자 녀석들도 여럿 보았고, 앞모습은 그 누구보다 겸손하고 예의발라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지만 뒷모습에선 어쩔 수없이 거만함과 오만함이 묻어나오는 사람과도 종종 마주치곤 한다.
뒷모습을 떠올리자니, 지금도 여전히 가슴 가득 따뜻함이 밀려오는 한 어른과의 만남이 생각난다. 그 어른은 지금쯤은 칠순에 접어드셨을 텐데, 마산에서 ‘합포문화동인’이란 모임을 햇수로 사반세기 이상 이끌어오고 계신 조 회장님이시다. 25년여 세월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한결같이 한 달에 한번씩 조찬모임을 이끌어 오시는 동안, 유신시대 불법집회 금지의 시퍼런 칼날에도 당당히 맞서셨고, 꼭 모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심심산골도 마다않고 삼고초려 하셨다는 후문이다.
처음 문화동인을 시작하던 당시는 행여 정치에 마음이 있으신 건 아닌지 색안경 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은 마산 같은 지방도시에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관조하면서 각박한 세태지만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문화동인이 있어야함을, 일찍이 인식했던 회장님의 혜안과 사심 없음에 모두들 감사하고 있다 했다. 그 인생길을 오롯이 닮아 있던, 참으로 정갈하면서도 당당함과 꼿꼿함 속에 여유를 간직하고 계셨던 회장님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서언하다.
그러고 보니 “전직 대통령이란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야말로 뒷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야 비로소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을 당당히 인정받은 사람,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집 없는 이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해비타트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 현직 대통령 낙선이란 좌절을 딛고 지금은 “나이 듦의 미덕”을 풍성히 보여주고 있는 사람, 그를 위해 세상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따스한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최근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만남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그 만남에 다양한의미가 채색되고 있는 모양이다. 바라건대는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 뒷모습에 투영된 발자취가 아름다운 지도자들을 많이 가졌으면 한다. 재임 기간 중 설혹 실정(失政)을 폈다 해도 그 충정만큼은 의심받지 않는 지도자, 혹 실수를 했을지언정 그 진솔함으로 인해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는 지도자, 돌아서는 뒷모습에 당당한 소신과 더불어 국민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지도자를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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