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낯선 말이다. 1999년에 근로기준법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현실을 극복해 보고자 전국여성노동조합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함께 ‘비정규직 여성 권리찾기운동본부’를 만들었을 때 그 명칭 중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였다. 그렇게 어렵고 생소한 단어를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계약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촉탁 일용직 파견직 뭐 이렇게 풀어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모인 우리는 한참동안 고민하였다. 비슷한 경험을 최저임금문제를 처음 제기한 2000년에도 하였다. 당시 최저임금은 42만 1490원이었는데 정부 쪽 사람이든 양대 노총 쪽의 사람이든 그렇게 적은 돈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참고로 당시 공공근로는 65만원정도를 받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최저임금 위반 실태’라는 내용을 가지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실태조사를 하고 입수한 월급봉투를 제시하고 나서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정규직이 낯익은 말이 되었다. 최저임금도 낯익은 말이 되었다.
노인복지관에 계신 노인들도, 가사도우미를 나가려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최저임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들어는 봤다고 한다. 우리가 홍보활동을 잘해서 비정규직이 보이고 최저임금이 알려진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닌 현실이 아프다.
비정규직은 IMF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서 전체 일하는 사람의 56%가 비정규직이고 여성의 경우는 70%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조사를 해보면 자발적 비정규직은 거의 없고 정규직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했고 몇 년을 같은 곳에서 계속 있어도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개는 1년마다, 심한 곳은 3개월마다 계속 새로 계약을 하면서 일을 하고 언제든 ‘계약 해지’, ‘계약 만료’라는 이름의 해고장을 받게 된다. 이것이 무서워 임금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도 못하고 그로 인해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을 어겨도 성희롱을 당해도 재계약이 안 될 까봐 두려워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힘이 너무 약하니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가입하려 해도 또 그 이유로 해고될까 두려워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3%이고 여성노동자는 1.2%에 불과하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해도 기업의 복지혜택은 정규직에게만 있고 비정규직에게는 없다. 대출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명절 때 상여금은 커녕 식용유 상자, 비누 상자 하나도 없이 집에 가야 하는 현실이다.
단순히 정규직이 아닌 고용형태를 의미하던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빈곤, 차별, 인격 무시와 동일한 말이 되었다. 정규직 남성 기본급의 40%를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에게는 더 심한 차별, 극심한 빈곤, 짓밟히는 인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전체 노동자에서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42%이지만 비정규직중에서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남성을 뛰어 넘어 52%이다. 새로 학교를 졸업하고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학습지교사, 학원강사, 계약직 사원 등의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40・50대의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받는 용역직이나 현장직이거나 식당이나 건설 쪽의 일용직이다. 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여성빈곤의 가장 큰 원인 또한 비정규직이다. 고용도 불안한데 임금도 낮은 모순을 극복하고 차별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은 아주 작지만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의 조합원들도 그 중 하나다. 학교에서 비정규직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과학실험보조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과 힘든 청소 일을 하면서 내 힘 닿을 때 까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일해서 살겠다는 청소아주머니 들, 호텔에서 룸을 청소하면서 관광 한국의 일선에 서있었던 룸메이드 여성들로 부터.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나설 때이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게 해주어야 하고 해고의 불안없이 맡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주어야 하고 비정규직 여성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저임금・차별 등과 같은 단어들을 대물림하여 희망 없는 후진사회를 만드는 일을 이제라도 멈추어야 한다. 언제나 잘못된 것을 온 힘을 다해 바로 잡고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냈던 우리 나라의 역동성이 이제는 비정규직 여성문제 해결에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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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낯선 말이다. 1999년에 근로기준법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현실을 극복해 보고자 전국여성노동조합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함께 ‘비정규직 여성 권리찾기운동본부’를 만들었을 때 그 명칭 중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였다. 그렇게 어렵고 생소한 단어를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계약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촉탁 일용직 파견직 뭐 이렇게 풀어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모인 우리는 한참동안 고민하였다. 비슷한 경험을 최저임금문제를 처음 제기한 2000년에도 하였다. 당시 최저임금은 42만 1490원이었는데 정부 쪽 사람이든 양대 노총 쪽의 사람이든 그렇게 적은 돈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참고로 당시 공공근로는 65만원정도를 받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최저임금 위반 실태’라는 내용을 가지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실태조사를 하고 입수한 월급봉투를 제시하고 나서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정규직이 낯익은 말이 되었다. 최저임금도 낯익은 말이 되었다.
노인복지관에 계신 노인들도, 가사도우미를 나가려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최저임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들어는 봤다고 한다. 우리가 홍보활동을 잘해서 비정규직이 보이고 최저임금이 알려진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닌 현실이 아프다.
비정규직은 IMF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서 전체 일하는 사람의 56%가 비정규직이고 여성의 경우는 70%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조사를 해보면 자발적 비정규직은 거의 없고 정규직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했고 몇 년을 같은 곳에서 계속 있어도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개는 1년마다, 심한 곳은 3개월마다 계속 새로 계약을 하면서 일을 하고 언제든 ‘계약 해지’, ‘계약 만료’라는 이름의 해고장을 받게 된다. 이것이 무서워 임금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도 못하고 그로 인해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을 어겨도 성희롱을 당해도 재계약이 안 될 까봐 두려워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힘이 너무 약하니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가입하려 해도 또 그 이유로 해고될까 두려워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3%이고 여성노동자는 1.2%에 불과하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해도 기업의 복지혜택은 정규직에게만 있고 비정규직에게는 없다. 대출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명절 때 상여금은 커녕 식용유 상자, 비누 상자 하나도 없이 집에 가야 하는 현실이다.
단순히 정규직이 아닌 고용형태를 의미하던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빈곤, 차별, 인격 무시와 동일한 말이 되었다. 정규직 남성 기본급의 40%를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에게는 더 심한 차별, 극심한 빈곤, 짓밟히는 인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전체 노동자에서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42%이지만 비정규직중에서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남성을 뛰어 넘어 52%이다. 새로 학교를 졸업하고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학습지교사, 학원강사, 계약직 사원 등의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40・50대의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받는 용역직이나 현장직이거나 식당이나 건설 쪽의 일용직이다. 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여성빈곤의 가장 큰 원인 또한 비정규직이다. 고용도 불안한데 임금도 낮은 모순을 극복하고 차별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은 아주 작지만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의 조합원들도 그 중 하나다. 학교에서 비정규직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과학실험보조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과 힘든 청소 일을 하면서 내 힘 닿을 때 까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일해서 살겠다는 청소아주머니 들, 호텔에서 룸을 청소하면서 관광 한국의 일선에 서있었던 룸메이드 여성들로 부터.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나설 때이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게 해주어야 하고 해고의 불안없이 맡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주어야 하고 비정규직 여성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저임금・차별 등과 같은 단어들을 대물림하여 희망 없는 후진사회를 만드는 일을 이제라도 멈추어야 한다. 언제나 잘못된 것을 온 힘을 다해 바로 잡고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냈던 우리 나라의 역동성이 이제는 비정규직 여성문제 해결에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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