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고대항해탐헌연구소장 채바다

지역내일 2006-11-29 (수정 2006-11-29 오후 8:55:21)
제목: 떼배타고 해양민족 우수성 세계에 알렸다
부제: 죽음을 담보로 왕인박사 뱃길 재현....정부 지원 관심 없어 아쉬워

이름: 채바다
고향: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나이: 62세
직업: 떼배타고 바다탐험, 시인
직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취미: 바다사랑, 고대서적 뒤지기

이름도 바다다. 얼마나 바다을 사랑했으면 자신의 이름도 바다로 바꿔버렸다.
남들은 그를 ‘바다에 미친사나이’라고 부른다.
어느날 고향 제주 성산포에 나타나 앞바다에서 자리돔을 잡거나 동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떼배를 만들더니 그걸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그것도 세번씩이나.....남들이 보기에 분명 정상은 아니다. 11월 23일 폭우가 쏟아지는 성산포 해녀의집에서 그는 떼배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소주 두병을 단숨에 비우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그도 처음 현해탄을 건널 때 겁이 좀 났었나 보다. 1996년 5월 1차 항해 때 해병대 사령관을 찾아가 바다에 던져도 한 열흘 살 수 있는 ‘짱장한 놈’으로 대여섯명 꿔달라고(?) 했다. 바다의 사나이 최정예 해병 6명과 함께 뗏목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일본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풍에 뗏목은 그야 말고 추풍낙엽.
바다에 버려도 한 열흘 살 것 같은 특수부대 출신들도 하나 둘 지쳐 나가떨어졌다. 오직 채바다만 파도타기를 즐겼다.
1996년 5월, 1997년 10월, 2001년 4월 세 번씩이나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일본상륙에 성공했다.
채바다. 그의 명함에는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이라고 적혀있다. 본명은 채 길웅 이었다. 고대사연구와 떼배에 미치기 전인 1990년까지는.
“우리는 해양민족의 후예 아닙니까? 그런데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떼배는 해양문화를 발전시킨 원시 통나무배로 오늘날 배의 시조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 배를 타고 바다에 도전했고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문화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게 채 소장의 설명이다. 서울대 김재근 박사는 거북선 바닥도 떼배의 원리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다사나이 채 소장은 고대에 우리선조들이 떼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대발전을 주도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1600년 전으로 돌렸다.


◆백제 왕인박사 뱃길 따라 일본항해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임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폭풍쯤이야 못 견디겠습니까” 6.5m짜리 통나무 배에 몸을 실은 채 소장 일행은 2001년 4월 9일 전남 영암 대불항을 떠났다.
1600년 전 백제 왕인(王仁 373~?)박사가 단행했던 고대 한반도와 일본과의 뱃길 탐사를 재현한 것이다. 고대 원시선박인 떼배 이름도 ‘왕인호’로 지었다. 항로는 왕인박사가 이용했던 대불항-완도 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규슈(九州)지방 가라쓰 연안으로 정했다. 시속 1.5노트로 항해하는 떼배는 ‘바람따라 물결따라’ 일본으로 흘러갔다. 죽음을 담보로 한 험난한 항해였다.
대원들은 밤에는 전원 불침번, 낮에는 6시간씩 교대로 취침했다. 탐험대장 채 소장은 떼배로 일본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정착했음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또한 “전남 영암이 당시 전남 서남해안의 국제 교류 중심지였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탐사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 비행기가 뜨고 언론사들도 헬기를 타고 취재 경쟁을 벌였다. 요미우리 아시히 마이니찌 등 일본 언론들은 떼배가 고대에 한국문화를 싣고 일본에 전해졌음을 심층 보도했다.
오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 묘역은 1938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이곳에 박사를 기리는 높이 5미터, 너비 4미터의 백제문을 세웠다.
왕인박사는 일본서기에도 왕실의 스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문화 선각자로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채 소장은 떼배를 타고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뱃길을 따라 우리민족이 얼마나 우수한 해양민족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탐라국 탄생의 재조명--벽량국 신화를 좇다
채 소장은 10년 넘게 국내외 고대사 관련 자료를 뒤졌다. 제주의 탄생과 백제의 인재들이 일본의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라는 것을 찾아냈고 하나씩 밝혀냈다. 고지도와 문헌을 통해 벽랑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벽랑 기록을 찾았고, 그 흔적을 따라 현장을 찾았다.
탐라국(제주의 옛 왕국)에 문화를 전파한 ‘벽랑국’의 유래를 찾기 위해 또다시 떼배를 타고 120㎞ 항해에 들어간 것이다.
올 6월 5일 채 소장은 한반도 고대인들이 탐라국을 왕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뱃길 탐사에 나섰다. 고려사지 등에 따르면 ‘고(高)·양(梁)·부(夫) 삼성(三姓) 시조가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각각 아내로 맞이해 탐라국을 세웠다’는 기록에서 출발했다.
채 소장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벽랑국 탐사에 쓰인 떼배는 삼나무를 통으로 엮어 만든 길이 7.5m, 폭 2.5~2.9m짜리 배.
채 소장은 돛과 노의 힘만으로 400km가 넘는 뱃길을 탐험해 제주의 기원을 찾고 역사를 재조명했다. 이 뱃길은 838년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씩이나 실패했던 험난한 바닷길이다. 일본 고승이 돌아올 때도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채소장은 “제주의 기원인 탐라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고 현실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금 0원”
채 소장이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들을 조명할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은 커졌다.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적 도움이 전혀 없었다. 기업에 강연을 다니거나 혼자 힘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2003년 해양수산부의 도움으로 ‘사단법인 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세계 강대국들은 해양과 관련한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바탕으로 오늘날 해양을 지배하고 있다”며 “한국도 해양을 연구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와 고대사 연구에 미친 바다 사나이 바다. 그는 지금도 제주-완도 -영암을 오가며 왕인박사를 일본 왕실의 스승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해양민족의 석학으로 알리는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다. (http:/www.ttebe.net 064-782-1235)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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