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삼성차 부채 논란 7년째 제자리걸음
제목: 이건희 회장 ‘대승적 결정’은 어디로 갔나
1999년 6월 30일.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이 ‘경영실패’를 인정한 순간이다. 채권금융기관과 협의조차 없었던 일이다. 한 가지 발표가 더 이어졌다. 채권단과 계열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사상최고액인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발표를 책임졌던 이대원 삼성그룹 부회장은 “최고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의 대승적 결정이며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7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삼성차 부채문제는 해결이 안 된 상태다. 그것도 모자라 채권단과 삼성그룹 간에 5조원 가까운 사상최대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삼성의 태도변화가 논란 불러 = 왜 이렇게 됐을까. 전 국민에게 공개한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결단은 채권단과 협의과정에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1999년 7월 12일 삼성측은 “삼성차 부채는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확정되는 정리계획상의 부채상환계획에 따라 의거 상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승적 결정’과 ‘희생을 감수한 결단’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초조해진 채권단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측의 책임 있는 약속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그러나 7월 23일 삼성측은 “이 회장이 약속한 것은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 일 뿐이지 이건희 회장이 2조 8000억원 상당을 책임지기로 한 적이 없다”고 번복했다.
또 “만약 (이 회장이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이 2조 8000억원에 미달하더라도 이는 채권단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자 채권단도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삼성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위반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재무구조개선약정 6조에는 ‘삼성계열은 신규사업진출, 해외투자 등 중요한 영업활동에 관한 사항이나 회사정리·화의신청 등 계열 전체적인 재무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주채권은행과 사전에 협의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삼성측이 위반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이를 근거로 1999년 8월 11일 삼성측에 금융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삼성 측에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궁지에 몰린 삼성은 다시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99년 8월 24일 채권단과 삼성이 맺은 삼성차 부채에 관한 손실보전 합의서다. 합의서에는 이건희 회장의 친필 사인과 도장 그리고 삼성계열사 대표이사 31명과 16개 채권금융기관 대표이사의 인감도장이 찍혀 있다.
◆삼성은 무슨 약속을 했나 = 합의서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삼성차 부채 문제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갑(이건희)은 도의적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병(채권단)에게 2000년 12월 31일까지 무상 증여한다.
- 갑의 증여액이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갑은 50만주를 추가 증여한다.
- 을(삼성계열사)은 갑의 50만 추가출연으로도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자본출자 또는 후순위채권 매입을 통해 손실을 보전한다.
- 갑과 을은 2000년 12월 31일까지 위 조항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을은 부족분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한다.
삼성차 부실로 인해 채권단이 떠안게 된 손실액 2조 4500억원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반드시 보전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처음 약속한 350만주로 부족하면 50만주를 추가로 증여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계열사들까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합의서 체결 훨씬 전인 1999년 7월 2일 삼성그룹이 몇몇 주요 일간지 1면에 낸 광고를 봐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삼성의 태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으로 보건대 삼성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제는 자동차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출연하는 희생을 감수키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삼성은 기업의 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는 행위는 60여년간 국민의 사랑으로 커온 기업으로서 할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보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답게 기업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서 이행의지 과연 있나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측은 이마저도 부인하고 있다. 합의서 체결 당시 상황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해 작성됐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합의서는 무효이며, 도의적 책임은 있어도 법률적 책임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윤종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5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합의서 자체에 법적인 문제가 많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상법상으로나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회장의 사재출연 공개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이 사재 2조 8000억원이 아니라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1999년 7월 2일 대국민 광고를 낸 것에 대해서는 “광고를 낸 적이 있는 지 없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나중에 의원들이 광고문안(사진)을 실제로 보여주자 광고를 낸 사실은 인정했다.
또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삼성자동차 부실채무기업 조사결과에 따르면 “(삼성 측이) 기본합의서 이행은 최악의 경우로 판단해 실제 소송시 전액 패소하지는 않을 것임을 법률자문결과 확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삼성측은 애초부터 합의서 이행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삼성그룹 홍보실 김석준 상무는 “삼성 측은 단지 합의서가 강박에 의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단순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무효주장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합의서 해석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쟁점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항이므로 소송 외에서 언급하기가 부적절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비슷한 고통과 상반된 결과 = IMF를 전후한 과정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삼성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계열사와 그룹 간에 상호보증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그룹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그룹 총수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우 한보 기아 동아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 한 축에 있었던 삼성만은 예외다. 삼성차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문제로 그룹총수가 바뀐 것도 아니고, 삼성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다. 되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을 주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사상최대치를 거듭 경신하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업들이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삼성자동차 부채는 경영판단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채무가 있느냐 없느냐 즉 계약서가 원인무효인가에 대해 사법부가 판단만 내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채처리 문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소송 금액은 크지만 사안 자체는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 “법원의 의지에 달린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공적자금은 어떻게 됐나 = 삼성차 부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기업과 채권단의 이해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삼성차 부채로 채무를 떠안게 된 채권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채권단인 서울보증보험과 우리은행 두 금융기관에만 무려 18조 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들이 갖고 있는 삼성차 채권 잔액이 1조 4000억원 가량이다. 이들 기관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 세금으로 채워야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어찌됐든 채권단에 공적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국민들 혈세로 삼성차 빚을 대신 갚아주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런데 삼성이 망하고 있느냐하면 그게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합의서에는 이건희 회장이 못하면 계열사가 책임지게 돼 있다”면서 “그런데도 이것을 갚지 않고 삼성은 또 다시 8000억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하는 등 굉장히 이상한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공헌을 거론하기 전에 세계와 경쟁하는 초일류기업답게 부채 문제부터 말끔히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삼성생명 주식은 도대체 얼마?
9000원부터 70만원까지 도대체 무엇이 진짜 가치일까. 채권단이 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삼성생명 주식 가치도 논란의 한 축이다. 너무나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1999년 합의서 작성 당시에는 한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지만 실제로는 70만원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 차액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 회장이 사재출연을 약속하면서 내놓은 계산법은 삼성생명 350만주를 한 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2조4500원으로 평가했다. 삼성차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채권단이 떠안게 된 부채금액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주식 평가액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관마다 달라지고 시기마다 바뀌게 된다.
2000년 6월 국민은행이 법인세를 신고할 당시 삼성생명의 주당 가치는 33만 2000원이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은 같은 해 9월 공적자금보고서에서 삼성생명 주식을 29만 1000원으로 평가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배정충 당시 삼성생명 사장은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략 30만원 정도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올 4월1일 삼성에버랜드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5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게재한 주당 가격은 43만 5000원이다. 비상장 주식인 삼성생명 주식은 2006년 12월 현재 장외에서 5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가치다. 아무튼 당초 약속한 70만원에 크게 못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자 또 다른 법적 다툼이 일어났다. 아직 이행되지 않은 손실보전약정 등을 근거로 삼성생명 주식 가치를 1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세금을 매긴 것에 대해 국민은행이 중부세무서장을 상대로 법인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10월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신동승 부장판사)는 “피고는 삼성생명 주식 관련 법인세 41억여원의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6개 채권금융기관 중 7개 금융기관만이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고 대다수인 9개 채권기관은 70만원 이하로 평가했다”면서 “(70만원이) 정상적 거래에 의해 형성된 주식교환가치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사재출연을 약속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1998년 12월 삼성생명 임직원 35명으로부터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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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건희 회장 ‘대승적 결정’은 어디로 갔나
1999년 6월 30일.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이 ‘경영실패’를 인정한 순간이다. 채권금융기관과 협의조차 없었던 일이다. 한 가지 발표가 더 이어졌다. 채권단과 계열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사상최고액인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발표를 책임졌던 이대원 삼성그룹 부회장은 “최고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의 대승적 결정이며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7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삼성차 부채문제는 해결이 안 된 상태다. 그것도 모자라 채권단과 삼성그룹 간에 5조원 가까운 사상최대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삼성의 태도변화가 논란 불러 = 왜 이렇게 됐을까. 전 국민에게 공개한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결단은 채권단과 협의과정에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1999년 7월 12일 삼성측은 “삼성차 부채는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확정되는 정리계획상의 부채상환계획에 따라 의거 상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승적 결정’과 ‘희생을 감수한 결단’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초조해진 채권단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측의 책임 있는 약속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그러나 7월 23일 삼성측은 “이 회장이 약속한 것은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 일 뿐이지 이건희 회장이 2조 8000억원 상당을 책임지기로 한 적이 없다”고 번복했다.
또 “만약 (이 회장이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이 2조 8000억원에 미달하더라도 이는 채권단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자 채권단도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삼성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위반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재무구조개선약정 6조에는 ‘삼성계열은 신규사업진출, 해외투자 등 중요한 영업활동에 관한 사항이나 회사정리·화의신청 등 계열 전체적인 재무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주채권은행과 사전에 협의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삼성측이 위반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이를 근거로 1999년 8월 11일 삼성측에 금융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삼성 측에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궁지에 몰린 삼성은 다시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99년 8월 24일 채권단과 삼성이 맺은 삼성차 부채에 관한 손실보전 합의서다. 합의서에는 이건희 회장의 친필 사인과 도장 그리고 삼성계열사 대표이사 31명과 16개 채권금융기관 대표이사의 인감도장이 찍혀 있다.
◆삼성은 무슨 약속을 했나 = 합의서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삼성차 부채 문제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갑(이건희)은 도의적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병(채권단)에게 2000년 12월 31일까지 무상 증여한다.
- 갑의 증여액이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갑은 50만주를 추가 증여한다.
- 을(삼성계열사)은 갑의 50만 추가출연으로도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자본출자 또는 후순위채권 매입을 통해 손실을 보전한다.
- 갑과 을은 2000년 12월 31일까지 위 조항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을은 부족분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한다.
삼성차 부실로 인해 채권단이 떠안게 된 손실액 2조 4500억원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반드시 보전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처음 약속한 350만주로 부족하면 50만주를 추가로 증여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계열사들까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합의서 체결 훨씬 전인 1999년 7월 2일 삼성그룹이 몇몇 주요 일간지 1면에 낸 광고를 봐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삼성의 태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으로 보건대 삼성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제는 자동차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출연하는 희생을 감수키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삼성은 기업의 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는 행위는 60여년간 국민의 사랑으로 커온 기업으로서 할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보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답게 기업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서 이행의지 과연 있나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측은 이마저도 부인하고 있다. 합의서 체결 당시 상황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해 작성됐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합의서는 무효이며, 도의적 책임은 있어도 법률적 책임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윤종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5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합의서 자체에 법적인 문제가 많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상법상으로나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회장의 사재출연 공개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이 사재 2조 8000억원이 아니라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1999년 7월 2일 대국민 광고를 낸 것에 대해서는 “광고를 낸 적이 있는 지 없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나중에 의원들이 광고문안(사진)을 실제로 보여주자 광고를 낸 사실은 인정했다.
또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삼성자동차 부실채무기업 조사결과에 따르면 “(삼성 측이) 기본합의서 이행은 최악의 경우로 판단해 실제 소송시 전액 패소하지는 않을 것임을 법률자문결과 확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삼성측은 애초부터 합의서 이행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삼성그룹 홍보실 김석준 상무는 “삼성 측은 단지 합의서가 강박에 의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단순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무효주장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합의서 해석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쟁점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항이므로 소송 외에서 언급하기가 부적절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비슷한 고통과 상반된 결과 = IMF를 전후한 과정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삼성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계열사와 그룹 간에 상호보증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그룹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그룹 총수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우 한보 기아 동아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 한 축에 있었던 삼성만은 예외다. 삼성차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문제로 그룹총수가 바뀐 것도 아니고, 삼성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다. 되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을 주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사상최대치를 거듭 경신하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업들이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삼성자동차 부채는 경영판단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채무가 있느냐 없느냐 즉 계약서가 원인무효인가에 대해 사법부가 판단만 내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채처리 문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소송 금액은 크지만 사안 자체는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 “법원의 의지에 달린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공적자금은 어떻게 됐나 = 삼성차 부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기업과 채권단의 이해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삼성차 부채로 채무를 떠안게 된 채권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채권단인 서울보증보험과 우리은행 두 금융기관에만 무려 18조 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들이 갖고 있는 삼성차 채권 잔액이 1조 4000억원 가량이다. 이들 기관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 세금으로 채워야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어찌됐든 채권단에 공적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국민들 혈세로 삼성차 빚을 대신 갚아주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런데 삼성이 망하고 있느냐하면 그게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합의서에는 이건희 회장이 못하면 계열사가 책임지게 돼 있다”면서 “그런데도 이것을 갚지 않고 삼성은 또 다시 8000억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하는 등 굉장히 이상한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공헌을 거론하기 전에 세계와 경쟁하는 초일류기업답게 부채 문제부터 말끔히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삼성생명 주식은 도대체 얼마?
9000원부터 70만원까지 도대체 무엇이 진짜 가치일까. 채권단이 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삼성생명 주식 가치도 논란의 한 축이다. 너무나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1999년 합의서 작성 당시에는 한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지만 실제로는 70만원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 차액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 회장이 사재출연을 약속하면서 내놓은 계산법은 삼성생명 350만주를 한 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2조4500원으로 평가했다. 삼성차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채권단이 떠안게 된 부채금액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주식 평가액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관마다 달라지고 시기마다 바뀌게 된다.
2000년 6월 국민은행이 법인세를 신고할 당시 삼성생명의 주당 가치는 33만 2000원이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은 같은 해 9월 공적자금보고서에서 삼성생명 주식을 29만 1000원으로 평가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배정충 당시 삼성생명 사장은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략 30만원 정도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올 4월1일 삼성에버랜드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5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게재한 주당 가격은 43만 5000원이다. 비상장 주식인 삼성생명 주식은 2006년 12월 현재 장외에서 5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가치다. 아무튼 당초 약속한 70만원에 크게 못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자 또 다른 법적 다툼이 일어났다. 아직 이행되지 않은 손실보전약정 등을 근거로 삼성생명 주식 가치를 1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세금을 매긴 것에 대해 국민은행이 중부세무서장을 상대로 법인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10월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신동승 부장판사)는 “피고는 삼성생명 주식 관련 법인세 41억여원의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6개 채권금융기관 중 7개 금융기관만이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고 대다수인 9개 채권기관은 70만원 이하로 평가했다”면서 “(70만원이) 정상적 거래에 의해 형성된 주식교환가치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사재출연을 약속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1998년 12월 삼성생명 임직원 35명으로부터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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