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이한수 지음
김영사 / 9900원
1274년 음력 5월 병술일 원나라 수도 연경. 황제의 궁정에서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신부는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 그러나 신랑은 그녀보다 스물세 살이나 많은 기혼남이었다.
황궁에서 결혼식이 치러진 것은 신부의 신분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의 이름은 홀도로게리미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딸이다.
황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남자는 고려의 세자 왕심이었다. 고려 원종의 장남인 그는 혼례를 치르고 두 달 후 고려 제25대 임금(충렬왕)으로 즉위한다.
이 결혼이 바로 몽골황실과 고려왕실이 맺은 첫 혼인이었다. 이때부터 100년간 5명의 고려왕이 모두 8명의 몽골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몽골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왕자가 국왕에 즉위하고, 몽골공주가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고려왕비가 된 몽골여인들은 황제의 권력을 배경으로 남편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왕이 된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정략결혼으로 만리타향에 시집온 서글픈 여인들이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삶을 마감했다. 유일하게 금슬이 좋았던 보탑실련공주(공민왕비·노국공주)는 자신의 죽음으로 왕을 실의에 빠트려 국가의 운명을 흔들어 놓았다.
고려는 원 황제가 황실의 공주를 하가(아랫사람에게 시집보냄)한 유일한 나라였다. 칭기즈칸에 이어 세계제국을 완성한 원 세조 쿠빌라이는 왜 자신의 어린 딸을 고려의 세자에게 시집을 보냈을까.
고려는 세계제국을 건설한 원나라 군대에 맞서 42년간 모두 11차례의 전쟁을 치르는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고려만큼 오랜 기간에 몽골과 전쟁을 치른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다.
당당하게 세계제국을 선포한 원으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특히 남송을 멸망시키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고려와의 전면적인 전쟁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남송은 원과 고려의 첫 혼인이 치러지고 5년 후 멸망한다.
직접통치보다는 고려왕을 통해 전쟁수행능력이 뛰어난 고려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묶어두려는 원의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이 처럼 100년의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몽골여인들은 이후 우리역사에서 까맣게 잊혀졌다. 그러나 그녀들을 통해 세계제국 원과 고려의 관계를 읽으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얼굴을 한 역사가 드러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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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지음
김영사 / 9900원
1274년 음력 5월 병술일 원나라 수도 연경. 황제의 궁정에서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신부는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 그러나 신랑은 그녀보다 스물세 살이나 많은 기혼남이었다.
황궁에서 결혼식이 치러진 것은 신부의 신분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의 이름은 홀도로게리미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딸이다.
황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남자는 고려의 세자 왕심이었다. 고려 원종의 장남인 그는 혼례를 치르고 두 달 후 고려 제25대 임금(충렬왕)으로 즉위한다.
이 결혼이 바로 몽골황실과 고려왕실이 맺은 첫 혼인이었다. 이때부터 100년간 5명의 고려왕이 모두 8명의 몽골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몽골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왕자가 국왕에 즉위하고, 몽골공주가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고려왕비가 된 몽골여인들은 황제의 권력을 배경으로 남편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왕이 된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정략결혼으로 만리타향에 시집온 서글픈 여인들이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삶을 마감했다. 유일하게 금슬이 좋았던 보탑실련공주(공민왕비·노국공주)는 자신의 죽음으로 왕을 실의에 빠트려 국가의 운명을 흔들어 놓았다.
고려는 원 황제가 황실의 공주를 하가(아랫사람에게 시집보냄)한 유일한 나라였다. 칭기즈칸에 이어 세계제국을 완성한 원 세조 쿠빌라이는 왜 자신의 어린 딸을 고려의 세자에게 시집을 보냈을까.
고려는 세계제국을 건설한 원나라 군대에 맞서 42년간 모두 11차례의 전쟁을 치르는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고려만큼 오랜 기간에 몽골과 전쟁을 치른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다.
당당하게 세계제국을 선포한 원으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특히 남송을 멸망시키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고려와의 전면적인 전쟁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남송은 원과 고려의 첫 혼인이 치러지고 5년 후 멸망한다.
직접통치보다는 고려왕을 통해 전쟁수행능력이 뛰어난 고려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묶어두려는 원의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이 처럼 100년의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몽골여인들은 이후 우리역사에서 까맣게 잊혀졌다. 그러나 그녀들을 통해 세계제국 원과 고려의 관계를 읽으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얼굴을 한 역사가 드러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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