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경 칼럼>음담과 유머의 차이

지역내일 2007-01-10
음담과 유머의 차이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파티에 나간 지긋한 나이의 정치인이 바지의 자크를 올리지 않은 것을 누군가가 일깨워줬다고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일까. 보통 사람 같으면 ‘미안 합니다’라든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슬그머니 돌아서서 자크를 올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정치인으로 선발되는 사람에게는 대중 앞에 자크를 올리지 않은 상태 자체가 지지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적에 뜻하지 않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러한 까닭에 정치인은 유머로 위기를 모면해야하는데 유머는 적정선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기와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이므로 예습을 한다고 되라는 법도 없다. 이런 때의 유머는 타고난 순발력뿐만이 아니라 살아온 경륜, 인생관, 세계관, 자신에 몸에 밴 인문적 식견을 총괄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려진 자크를 수습하는데 정답은 있을 수 없고, 단지 편의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옵션을 가정해보았다.

순발력과 경륜 있어야 유머 가능
a ‘내가 벌서 치매에 걸렸나?’, b ‘늦을까 봐 서둘다보니….’ c ‘침침한 곳에 갇혀있는 물건이라 잠시 바람을 조금 쏘이다 그만….’, 이 세 가지 다 정치인의 유머로는 낙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하여 영국 보수당의 한 노 정객은 “집에 길들여진 새가 창문을 잠시 열어놓았다고 해서 설마 날아가기야 했겠소”했다는 이야기가 표준적 유머에 가깝다.
새해 벽두의 칼럼에 때 아닌 바지 자크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4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요즈음 조철봉(<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이 왜 그렇게 섹스를 안 하나.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더니만…”이란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칼럼이 더러워질까 옮기기조차 역겨운 표현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여기자가 참석한 자리였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하나로 여성을 내세우는 정당의 대표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행한 발언치고는 한마디로 유머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저수준의 ‘와이당’(猥談을 일본어 식으로 발음한것)이라 할 것이다. 명문대학을 졸업하였고 검찰 공무원을 거쳤으며 다선을 자랑하는 국회의원이 꼭 섹스를 주제로 좌중의 흥을 돋울 필요가 있었다면 그 방면의 동양고전인 <금병매>의 남자주인공 서문경을 들먹였더라도 조금은 나을 뻔했다.
중진 국회의원, 그 가운데서 당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은 고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하므로 때때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여흥을 곁들여야함을 모르는바 아니다. 알콜 섭취, 골프치기, 무관한 친구들과 잡답하기 등이 그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사로운 모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 전제다.
긴장을 풀기 위한 기회를 갖는다하더라도 거기에 기자, 특히 복수의 기자가 끼는 자리는 사사로운 모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새겨두어야 원숙한 정치인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복수의 기자 앞에서 연출하는 언행은 국민 앞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회법사위원장을 지낸 국회의원 최 모란 사람이 술자리에 동석한 여기자를 성희롱한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떤 면에서는 그 보다 더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태가 빚어진 것이다.
기자가 국회의원에게 밥과 술을 공으로 얻어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꽤 오랜 관행이라 하루 이틀에 고쳐 질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 나가는데 줄잡아 수십만원 씩 비용이 드는 골프 접대를 받는 것이 현실이라면 ‘조철봉 운운’ 류의 사이비 유머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찾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국민의 수준이 기자의 수준을 가리킨다는 말은 사회의 병리 현상 원인을 모두 국민에게 돌리는 이른바 ‘국민환원론’(國民還元論)이 되므로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도덕적 수준과 지적 수준은 거의 전적으로 기자의 도덕수준과 지적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어도 보통선거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유머는 희망과 겸손 담아야
영어의 유머(humour)를 단지 ‘익살’, ‘우스개’로 번역하는데서 연유한 면이 없지 않으리라 보지만 음담패설을 정치인의 유머라 생각하는 것은 오해치고는 위험한 오해다. 유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자랑스러운 일에서 겸손을 담는 것이 기본 요소다. 금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누리는 정당이라면 최소한 유머와 음담패설의 차이쯤은 익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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