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민청학련 사건, 32년만의 무죄판결을 바라보며(배여진 2007.01.25)

지역내일 2007-01-25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32년만의 무죄판결을 바라보며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한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그 아이의 목에는 새끼줄이 매여져 있고 몸은 나무기둥에 묶여져 있다. 동네꼬마들은 “빨갱이 자식을 총살시켜라!”라고 외치며 이 잔인한 ‘놀이’를 하고 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저 쳐다보고만 있다. 동네 꼬마들의 장난 아닌 장난에 어린 나이에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었을 그 아이는 32년의 세월이 지나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엄청난 혐의로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무죄’ 판결을 받는 그 자리에 서 있다.
1975년 4월 9일, 이수병, 송상진, 김용원, 서도원, 하재완, 여정남, 우홍선, 도예종 등 8명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그 다음 날 새벽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이들과 함께 투옥되어 온갖 고문을 받던 이들은 옥사를 하거나 출소 뒤 고문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갑작스레 발병한 암으로, 어떤 이는 자신이 먹는 밥에 누군가가 독을 탄다며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지난 32년간 유족들은 중앙정보부의 끊임없는 감시와 협박 속에서도 전 국민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목 놓아 울었다. 석방운동을 하던 가족들은 중앙정보부로 강제 연행당해 육체적·정신적 폭행을 당하면서도 자식들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바라보면서 ‘간첩의 가족’이라는 낙인에 늘 외로운 싸움을 해 왔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처음으로 추모제를 열었고 사건 발생 32년 만에 ‘간첩’이었던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고 다시금 명예회복을 했다.
32년의 세월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해왔던 나는 기쁘고도 슬펐다. 32년만의 무죄선고로 그 동안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음에, 32년 만에 편히 눈을 감았을 여덟 분들의 생각에,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셨을 관련자 선생님들의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지금 이 순간 가장 기뻐해야 할 여덟 분의 당사자들이 없다는 것에 슬펐다. 한 번 끊어진 생명은 다시 되살릴 수 없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사법부가 그들의 목에 묶었던 그 동아줄은 끊어버릴 수 있지만, 그 동아줄에 의해 죽음을 당한 이들의 목숨은 다시 살릴 수 없는 것이다. 하기에 이번 무죄판결은 사형이 얼마나 잔혹한 사법‘살인’인지, 왜 사형제도가 없어져야 하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 참혹한 범죄에 가담했던 이들은 물론이고 지난 32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의 철저한 외면으로 유족들을 차가운 거리에서 외롭게 싸우게 한 우리 사회 모두가 유족들과 먼저 떠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지난 군사독재시절 오로지 정권 유지를 위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억울하게 죽어가고 고문 받은 수많은 이들이 진실과 사법적 명예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의 무죄판결이 단초가 되어 그 분들의 진실도 밝혀지고 가슴에 맺힌 한이 하루빨리 풀어지길 바란다.
그나저나, 32년 전 그 아이의 목에 줄을 매고, 나무기둥에 묶은 그 꼬마아이들은 32년이 지난 지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무에 묶여 아등바등 거리고 있는 아이와 ‘총살놀이’를 하고 있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32년이 지난 지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일이라지만, 그래도 용서를 구했어야 할 텐데. 그래야 되는데…
참으로 더디지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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