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여 대로를 활보하라
홍 부 용 (시나리오 작가)
전통 문화 콘텐츠 개발을 명목으로 개최된 공모전을 준비할 때였다. 평소 쿨함을 무기로 민족주의를 한 방에 날려 버리던 나로선 당혹스런 주제였다.
‘전통 문화’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굿과 무당 그리고 귀신 정도였다. 이런 것은 현실감이 없어 미신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전통 문화라는 개념에 잡혀 있는 동안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마감 이주일 전. 원고는 시작도 못 했고 해가 바뀌었다. 난 애꿎게 나이만 먹었다. 계산하기 좋아하는 좌뇌에선 ‘꽝! 다음 기회에’를 속삭였고, 유일하게 내 재능을 믿어주는 우뇌는 침묵하고 있었다.
난 도망갈 기회를 엿보며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래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야…’ 그 순간, 깨달았다.
‘서양 = 문명, 동양 = 야만’이라는 도식화 된 오리엔탈리즘이 내 머리 속 깊이 박혀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미신과 비합리, 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우리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면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닐 것이다. 힘의 논리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서구적인 근대화에 따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내면화 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서구에 의해 재구성된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신, 비합리, 비과학적이라는 서구적인 잣대를 잠시 잊고 무당, 굿, 귀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일찍이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옛날 성인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과 의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때문에 괴상한 일이나 힘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을 얻고 도록을 받게 된다. 이는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그렇게 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우리 것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었기 때문이다. 고심 하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한 작가가 평생동안 우리나라 귀신들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난 다양한 귀신들을 만났다.
계모와 오빠를 죽인 죄로 화장실을 지키며 머리카락을 세는 측간귀신, CCTV 때문에 사설탐정이 된 대문귀신(처용),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실업자가 된 저승사자 등등.
예나 지금이나 우리 귀신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욕망을 부둥켜안고 우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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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 용 (시나리오 작가)
전통 문화 콘텐츠 개발을 명목으로 개최된 공모전을 준비할 때였다. 평소 쿨함을 무기로 민족주의를 한 방에 날려 버리던 나로선 당혹스런 주제였다.
‘전통 문화’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굿과 무당 그리고 귀신 정도였다. 이런 것은 현실감이 없어 미신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전통 문화라는 개념에 잡혀 있는 동안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마감 이주일 전. 원고는 시작도 못 했고 해가 바뀌었다. 난 애꿎게 나이만 먹었다. 계산하기 좋아하는 좌뇌에선 ‘꽝! 다음 기회에’를 속삭였고, 유일하게 내 재능을 믿어주는 우뇌는 침묵하고 있었다.
난 도망갈 기회를 엿보며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래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야…’ 그 순간, 깨달았다.
‘서양 = 문명, 동양 = 야만’이라는 도식화 된 오리엔탈리즘이 내 머리 속 깊이 박혀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미신과 비합리, 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우리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면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닐 것이다. 힘의 논리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서구적인 근대화에 따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내면화 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서구에 의해 재구성된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신, 비합리, 비과학적이라는 서구적인 잣대를 잠시 잊고 무당, 굿, 귀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일찍이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옛날 성인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과 의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때문에 괴상한 일이나 힘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을 얻고 도록을 받게 된다. 이는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그렇게 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우리 것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었기 때문이다. 고심 하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한 작가가 평생동안 우리나라 귀신들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난 다양한 귀신들을 만났다.
계모와 오빠를 죽인 죄로 화장실을 지키며 머리카락을 세는 측간귀신, CCTV 때문에 사설탐정이 된 대문귀신(처용),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실업자가 된 저승사자 등등.
예나 지금이나 우리 귀신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욕망을 부둥켜안고 우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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