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균형감각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대통령 선거의 해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설날 명절에 단단히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차례상 물리고 세배 마치고 나면 공통의 화제를 찾아야 한다. 모두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는 정치 얘기를 한바탕 할 것이 뻔하다. 노무현 정권 비판을 한 두 마디 하는 것으로 시작해 정치인은 자질이 모자라 큰일이라는 한탄이 나올 것이다. 한 사람이 그래도 대선 주자 가운데 누가 제일 낫다고 하면 약간 논쟁이 있다가 얘기가 정리되는 수순으로 들어갈 것이다.
‘잘할 테니 한번 믿어 보시라’는 캠페인의 효과를 믿는 대선 주자들은 뒷감당할 생각도 하지 않고 유권자들과 악수할 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하거나 언론사 기자만 있으면 무조건 큰소리를 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공약이 나오고 당선이라도 되는 날이면 약속을 지키라는 각종 사회집단의 압력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체면이 있으니 미안하게 되었다고 털어놓고 사과할 수도 없다. 주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경제논리를 동원해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
대형사회분쟁에서 교훈 못얻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바로 이러한 정치 행태 때문에 지율 스님의 장기 단식투쟁 사건으로 유명한 천성산 터널 사건이나 북한산 국립공원의 사패산 터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예산과 시간을 엄청나게 낭비하고 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대형 사회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차기 정권에서도 비슷한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즉, 말과 행동이 달라 노사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집단의 지지를 상실한 참여정부의 실패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아직 1년이 남아 있지만 참여정부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집권한 다음에도 국민이 제기하는 민원을 너무 열심히 들어 주려고 애쓴 것이 화근이 된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편에서는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한다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권 부동산 대책을 세운다고 판교와 송파에 신도시를 건설한 것을 들 수 있다.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보조금을 주어가며 대학 정원을 줄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울산에 국립대를 신설한다고 약속했다. 교육 정책 책임자들도 모든 학부모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약속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정규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논술과 면접의 비중을 높이도록 행정 지도하여 결과적으로 입시 학원만 돈을 벌게 되었다.
더구나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자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 쓰레기 처리 시설을 놀리는 한이 있어도 다른 지역의 쓰레기는 처리하지 않거나, 장애인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하는 지자체 수장이나 지방의회는 다음 선거를 생각해 무조건 결론을 미루면서 시간만 보내기 마련이다.
진로 재설정해야 할 시점
군사독재 시대가 끝난 다음에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랜 권위주의 시대에 숨죽이고 살면서 한국의 정치 엘리트는 개별 이익을 반영하는 작은 정치에는 능숙하지만 전체적인 통합 능력을 발휘하는 일에는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행동 문화를 습득했다. 외교안보 정책이나 경제정책은 기본 틀이 정해져 있고 직업 정치인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교육, 환경, 노동문제가 심각해졌어도 시민단체, 노조, 기업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감각조차 정치권에는 배양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국내외 환경의 급변에 따라 싫으나 좋으나 사회 체제의 진로를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리더십을 가지고 통합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정치인이 필요하다. 대선 주자들은 스스로 균형감각과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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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대통령 선거의 해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설날 명절에 단단히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차례상 물리고 세배 마치고 나면 공통의 화제를 찾아야 한다. 모두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는 정치 얘기를 한바탕 할 것이 뻔하다. 노무현 정권 비판을 한 두 마디 하는 것으로 시작해 정치인은 자질이 모자라 큰일이라는 한탄이 나올 것이다. 한 사람이 그래도 대선 주자 가운데 누가 제일 낫다고 하면 약간 논쟁이 있다가 얘기가 정리되는 수순으로 들어갈 것이다.
‘잘할 테니 한번 믿어 보시라’는 캠페인의 효과를 믿는 대선 주자들은 뒷감당할 생각도 하지 않고 유권자들과 악수할 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하거나 언론사 기자만 있으면 무조건 큰소리를 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공약이 나오고 당선이라도 되는 날이면 약속을 지키라는 각종 사회집단의 압력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체면이 있으니 미안하게 되었다고 털어놓고 사과할 수도 없다. 주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경제논리를 동원해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
대형사회분쟁에서 교훈 못얻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바로 이러한 정치 행태 때문에 지율 스님의 장기 단식투쟁 사건으로 유명한 천성산 터널 사건이나 북한산 국립공원의 사패산 터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예산과 시간을 엄청나게 낭비하고 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대형 사회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차기 정권에서도 비슷한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즉, 말과 행동이 달라 노사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집단의 지지를 상실한 참여정부의 실패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아직 1년이 남아 있지만 참여정부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집권한 다음에도 국민이 제기하는 민원을 너무 열심히 들어 주려고 애쓴 것이 화근이 된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편에서는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한다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권 부동산 대책을 세운다고 판교와 송파에 신도시를 건설한 것을 들 수 있다.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보조금을 주어가며 대학 정원을 줄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울산에 국립대를 신설한다고 약속했다. 교육 정책 책임자들도 모든 학부모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약속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정규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논술과 면접의 비중을 높이도록 행정 지도하여 결과적으로 입시 학원만 돈을 벌게 되었다.
더구나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자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 쓰레기 처리 시설을 놀리는 한이 있어도 다른 지역의 쓰레기는 처리하지 않거나, 장애인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하는 지자체 수장이나 지방의회는 다음 선거를 생각해 무조건 결론을 미루면서 시간만 보내기 마련이다.
진로 재설정해야 할 시점
군사독재 시대가 끝난 다음에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랜 권위주의 시대에 숨죽이고 살면서 한국의 정치 엘리트는 개별 이익을 반영하는 작은 정치에는 능숙하지만 전체적인 통합 능력을 발휘하는 일에는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행동 문화를 습득했다. 외교안보 정책이나 경제정책은 기본 틀이 정해져 있고 직업 정치인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교육, 환경, 노동문제가 심각해졌어도 시민단체, 노조, 기업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감각조차 정치권에는 배양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국내외 환경의 급변에 따라 싫으나 좋으나 사회 체제의 진로를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리더십을 가지고 통합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정치인이 필요하다. 대선 주자들은 스스로 균형감각과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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