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신규 시설투자가 실종돼 산업기반 붕괴의 우려를 낳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부의 금융지원의 확대와 저금리기조 유지를 비롯해 환율 안
정 등에 힘입어 경영여건의 대폭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 마인드는 오히려 싸늘하
게 식어 가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기업들은 내수침체 가속화와 미국경제 경착륙 우려에 따른 수출불안, 미완성 구조조정, 올해
분 70여조원에 달하는 채무상환 등으로 신규시설투자가 극히 미흡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올해 기업들이 구상하는 투자계획이래야 고작 유지 보수에 급급하고 있고 투자지역도 국
내보다 해외에 비중을 크게 두고 양상을 띠고 있다. 게다가 재벌그룹 계열사와 중견기업들
의 시설투자계획이 굴뚝산업에 대해 비중이 몹시 낮고 금융 유통 서비스 등 비제조업 분야
에 집중되고 있어 산업 공동화(空洞化)를 재촉하고 있다.
S그룹 한 고위급 관계자는 “소비가 줄어들고 재고가 눈덩이로 불어나면서 대부분의 계열
시설이 설비과잉으로 오히려 시설도 구조조정을 해야할 판국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시설
투자를 전면 보류하거나 축소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여유 자금을 시설투자보다 채무상환에만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 될 경우 기업들의 경쟁력 악화로 생활필수품에서 첨단 산업에 이르기
까지 절대수입에 의존함으로써 안방을 외국기업에 내줘야 하는 경제속국 사태를 빚을 가능
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고실업률 시대의 경제난제를 풀기 보다 문제를 더욱 꼬여가게 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심
각하다. 설비투자 위축은 생산기반 붕괴→수출경쟁력 약화→무역수지 악화 →소비위축 →실
업불안 → 경제침체의 가속화 등 악순환을 거듭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최근 조사해 발표한 올해 기업들의 설비투자계획은 전년비 0.3% 증가한 34조
4,722억원으로 지난해 수준인 것으로 분석, 2000년의 투자실적 증가세(22.1%)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그러나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신규투자가 아닌 유지 보수 분야와 서비스 금융 유
통 등에 고용과 생산증대에 관련이 없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같은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투자계획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데
있다. 기업들은 지난해 말 세웠던 올해 투자계획 자체를 전면 수정 또는 아예 보류하는 분
위기로 돌아섰다.
지난해 시설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삼성은 당초 올해 투자규모를 작년보다 약
20% 줄어든 8조원정도로 잡았으나 반도체 가격하락 행진이 멈추지 않아 투자시기를 결정하
기 못하고 있다. 또 삼성은 생산기반 증설투자보다 일부 시설교체나 연구분야에 선택을 했
다.
LG그룹도 지난해 시설분야에 무려 5조원과 기술개발분야에 1조7000억원 등 총 6조7000억원
을 투입했으나 올해는 국내투자보다 보다 해외투자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LG는 전자분
야의 국내 투자는 승산이 없다고 자체분석하고 중남미나 중국 아시아권 지역을 대상으로 투
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3조9000억원의 자금을 쏟았던 SK그룹도 올해 이보다 15%정도 늘려 잡았으나 투자
분야가 IMT-2000(차세대이동통신)에 집중되고 있어 고용창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SK그룹은 투자시기나 방법 등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업프로젝트를 확정
하지 못하는 등 투자에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도 생산분야보다 금융 등 비제조업 분야로의 투자에 관심이 높다. 지난해 4500억원
의 자금을 투자했던 한화는 올해 역시 시설의 유지보수에 투자계획이 짜여졌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선진국의 수입규제조치 등 무역마찰을 우려해 국내보다 해외투자를 선호
하고 있다. 어차피 국내시장이 과포화 상태인데다 공급과잉으로 내수시장도 축소되는 경향
이 뚜렷해 생산기지를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기업들의 신규 설비투자 위축은 중소기업들에게 당장 파급되기 때문에 산업전반에 걸쳐
치명상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설비제조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실업자 100만명시대 도래
도 이것에서 연유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의 투자도 제조업분야는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 외국인 투자중 제조
업 비중은 5%안팎에 불과해 외국자본유치는 유통이나 서비스 금융 부동산 등 분야에만 집
중되고 있다. 외국인의 투자유형이 제조업 분야의 고용창출이 아닌 단타를 노린 한탕주의
투기쪽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를 반영, 외국인들의 지난해 부동산투자금액만도 4조원을 넘어섰고 통신서비스 분야는 지
난 1월 한달동안 3조원을 돌파했다.
4그룹의 모 전문경영인은 “기업들의 설비투자에 회의적인 태도로 바뀐 것은 유화 석유화학
정유 면방 화섬 철강 등 모든 업종에 걸쳐 공급과잉사태를 빚고 있는 데다 정부의 경제정책
이 일관성이나 신뢰성이 없어 경제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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