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칼럼>민물에서 굴을 양식해?

지역내일 2007-02-23
민물에서 굴을 양식해?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민물에서도 굴 양식이 되는 모양이지요?”
등산길에 앞서가던 동료가 능선 아래 양수발전소 저수지를 가리키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있을까 싶어 다가가 보니, ‘야생식물 굴·채취 금지’라는 안내판이 서있었다. ‘야생식물’은 작게, ‘굴·채취 금지’만 붉은 색으로 크게 씌어 있었다. 굴을 따가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산림청은 아마도 야생식물을 파가거나 꺾지 말라는 뜻으로 써 놓았을 것이다. 굴취와 채취를 금지한다는 말을 무리하게 줄여 그렇게 쓴 것이리라.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굴취’라는 말은 큰 사전에도 없었다. 없는 말을 만들어 가면서 뜻이 안 통하는 준말을 쓰면, 야생식물을 꺾어가도 탓할 수 없다. 따거나 캔다는 뜻의 채취(採取)란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을, 꼭 그렇게 어려운 말을 만들어야할 이유가 궁금했다.
산림행정에는 하예(下刈:풀베기) 신탄(薪炭:땔나무) 삽목(揷木:꺾꽂이) 수근(鬚根:실뿌리) 같은 일제시대 용어들이 아직 쓰이고 있다.

정체불명의 외래어 홍수
한강시민공원에 가면 ‘유어(游魚)행위 금지’라는 경고판을 자주 만난다. 한자 뜻으로 보아 낚시금지 쯤으로 짐작되지만, 이 말도 웬만한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큰 사전을 펴보니 ‘물속에서 노는 고기’라는 뜻이다. 완전히 틀린 말로 낚시금지를 알리고 있다. 그곳에서 낚시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이 항의하면 무슨 근거로 처벌할 것인가.
‘좁은 자전거 도로 이용편의를 위하여 모두 우측통행 합시다.’ 자전거도로 이정표에 붙어있는 우측통행 안내문이 이렇다. 앞에 있는 긴 설명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둔치에 불을 놓지 마시오.’ 이 안내문도 그렇다. 둔치에 불을 놓지 말라는 말을 앞에 놓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경사 진 도로변에 있는 모래보관소 표기는 고장마다 다르다. 어떤 곳은 ‘적사함’(積沙函), 어떤 곳은 ‘방활사’(防滑沙)라 써 놓았다. ‘방빙사’(防氷沙) ‘빙방사’(氷防沙)도 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 온 날 운전사들이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모래를 쌓아놓은 상자, 미끄럼을 방지하는 모래란 뜻을 굳이 사전에 없는 한자 투로 만들어 써 붙여야만 행정인가. 딱 한 곳에서 간단히 ‘모래’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는, 그 지방 행정수장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전문용어 세계는 더욱 캄캄하다. 특히 법률이나 의학용어는 그 세계 종사자들조차 수시로 사전을 찾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건강보험공단이나 심사평가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쓰는 ‘기왕력(旣往歷)’ ‘액와(腋窩)’ ‘슬관절(膝關節)’ 같은 말은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자를 같이 써놓지 않는 한 누가 기왕력이 과거병력이라고 알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액와를 겨드랑이, 슬관절을 무릎관절이라고 짐작이나 하겠는가.
요즘은 정체불명의 외래어 홍수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들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행정용어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모르고도 아는 척 넘어가려니 답답하기는 하고, 아랫사람에게 물으려니 낯이 뜨겁다.
인프라, 브랜드, 아젠다, 로드맵, 벤치마킹, 태스크포스 같은 말은 이제 우리말처럼 굳어버렸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인지, 요즘은 외래어 합성어와 신조어들이 판을 친다. 빈민 돌보기라고 하면 좋을 것을 네이버 워치(neighbor watch)라 하고, 노숙자 자활은 리스타트(re-start)라고 한다. 심지어 전통음식을 슬로 푸드(slow food)라고 쓰는 곳도 있다.
멘토링 제도라는 것이 있다. 선배공무원(mentor)이 신규임용 후배(mentee)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제도라고 한다. 영어에 그런 말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있다고 해도 꼭 갖다 쓸 이유가 무언지 모르겠다.

공무원은 국민의 국어교사
나는 공중화장실 갈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화장실 청결운동을 하는 민간에서는 명령어 지시어 한 마디 없이 이렇게 멋진 말을 만들어내는데, 머리 좋다는 공무원들은 왜 그러는가. 멋지지 않아도 좋으니 뜻이 통하는 안내판과 공문서를 보고 싶다.
공무원은 국민의 국어교사다. 다수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정용어가 올바르지 않고는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켜낼 수 없다. 길거리에 내거는 안내문 한 글자, 한 마디가 국어교과서라는 것을 모든 공무원은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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