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데이비드 베레비
정준형 옮김
에코리브르
2만원
당신과 나를 가르는 기준은…
1994년 5월 6일 르완다 소부. 투치족 난민들이 후투족을 피해 한 수녀원으로 도망쳐왔다.
수녀원장이던 게르트루드 수녀는 후투족 민병대에게 그들을 고발했고 투치족 수백명은 즉각 총칼에 난도질당하고 불태워졌다.
그 가운데 투치족 수녀들만은 살아남았다. 게르트루드 수녀가 그들에게 ‘베일’을 씌움으로써 살린 것이다. 그러나 한 수녀가 낳은 사생아였던 19세 소녀 알린은 ‘처지’가 달랐다. 게르트루드는 베일을 달라는 간청을 거절했고 결국 소녀는 죽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수녀원을 찾은 투치족이었지만 삶과 죽음은 그들을 갈라놓았다. 그들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상징의 동물이라고 한다. 다른 어떤 동물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 가진 특성이 있다. 특정한 인간 부류를 나타내는 지표에 의거해 주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십자가나 제복 서약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특징을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인간 ‘부류’이다. 소부의 수녀원에서 학살자 무리를 피해 살아남느냐 총칼에 희생되고 마느냐를 결정한 것은 ‘베일’이었다. 그 천조각에 담긴 상징은 호모사피엔스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서울과 지방…. 우리는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 앞에서는 ‘한민족’임을 외치다가 어느 순간에는 ‘지역색’으로 스스로를 가른다. TK와 PK가 자연스럽게 들린다.
데이비드 베레비는 인류학부터 신경과학까지 총동원해 이 집단정체성을 과학으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누가 어느 편에 속하고 그 속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인식, 즉 부족적(tribal) 감각에 좌우된다. 저녁식사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하는 일상적인 결정에서부터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하는 일생일대의 선택, 그리고 누구를 상대로 전쟁을 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 대전환점에 이르기까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인식과 인간 부류 역시 앞뒤가 쉬 뒤바뀐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서로 비슷해진다. 남편과 아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닮아간다고 하듯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이다보니 뜻도 같아진다는 얘기다.
베레미는 “두 그룹의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띄는 객관적 차이가 존재하며 동시에 아무리 서로 다른 두 그룹이라도 잣대를 달리하면 얼마든지 같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대다수 다른 종들에 비해 인간은 유독 서로 비슷하지만 인간 개개인은 제각기 독특하기 때문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데이비드 베레비
정준형 옮김
에코리브르
2만원
당신과 나를 가르는 기준은…
1994년 5월 6일 르완다 소부. 투치족 난민들이 후투족을 피해 한 수녀원으로 도망쳐왔다.
수녀원장이던 게르트루드 수녀는 후투족 민병대에게 그들을 고발했고 투치족 수백명은 즉각 총칼에 난도질당하고 불태워졌다.
그 가운데 투치족 수녀들만은 살아남았다. 게르트루드 수녀가 그들에게 ‘베일’을 씌움으로써 살린 것이다. 그러나 한 수녀가 낳은 사생아였던 19세 소녀 알린은 ‘처지’가 달랐다. 게르트루드는 베일을 달라는 간청을 거절했고 결국 소녀는 죽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수녀원을 찾은 투치족이었지만 삶과 죽음은 그들을 갈라놓았다. 그들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상징의 동물이라고 한다. 다른 어떤 동물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 가진 특성이 있다. 특정한 인간 부류를 나타내는 지표에 의거해 주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십자가나 제복 서약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특징을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인간 ‘부류’이다. 소부의 수녀원에서 학살자 무리를 피해 살아남느냐 총칼에 희생되고 마느냐를 결정한 것은 ‘베일’이었다. 그 천조각에 담긴 상징은 호모사피엔스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서울과 지방…. 우리는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 앞에서는 ‘한민족’임을 외치다가 어느 순간에는 ‘지역색’으로 스스로를 가른다. TK와 PK가 자연스럽게 들린다.
데이비드 베레비는 인류학부터 신경과학까지 총동원해 이 집단정체성을 과학으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누가 어느 편에 속하고 그 속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인식, 즉 부족적(tribal) 감각에 좌우된다. 저녁식사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하는 일상적인 결정에서부터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하는 일생일대의 선택, 그리고 누구를 상대로 전쟁을 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 대전환점에 이르기까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인식과 인간 부류 역시 앞뒤가 쉬 뒤바뀐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서로 비슷해진다. 남편과 아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닮아간다고 하듯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이다보니 뜻도 같아진다는 얘기다.
베레미는 “두 그룹의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띄는 객관적 차이가 존재하며 동시에 아무리 서로 다른 두 그룹이라도 잣대를 달리하면 얼마든지 같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대다수 다른 종들에 비해 인간은 유독 서로 비슷하지만 인간 개개인은 제각기 독특하기 때문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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