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정 욱 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조지워싱턴대 객원 연구원)
요즘처럼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도 없다.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60년을 훌쩍 넘긴 북미 적대관계의 종식을 향해 얼굴을 마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5년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불과 2년전만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몰아붙였고, 김정일 정권은 부시 대통령을 가리켜 ‘불망나니’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과 미국이 2·13 합의에 따라 3월 5일부터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마치 외국의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방불케 하듯,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찾은 김계관 일행의 경호와 의전에 만전을 기했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예방하겠다는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겠지만,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국내외의 대북강경파들이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부시가 적으로 규정했던 김정일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자, 부시의 대북강경책의 강력한 우군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존 볼튼 전 미국 유엔대사를 비롯한 네오콘은 연일 부시의 대북정책이 원칙을 잃었다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국내의 한 신문 칼럼니스트는 미국도 믿을 나라가 못된다며 이제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도모해야 한다며 ‘반미’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대북강경파의 부시행정부 비난
부시와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대북강경책을 통해 톡톡한 재미를 봤던 일본의 아베 정권은 부시의 변신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앞세워 부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 호주의 동북아 전문가인 거번 메코맥 교수가 일갈한 한 것처럼, ‘부시 쇼크’가 동북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북미관계가 정상화된다면 이는 1945년 외세에 의한 한반도 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체제에 버금가는 엄청난 질서 변화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의 핵심에는 바로 북미간의 적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53년 정전체제의 종식을 수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반세기 넘게 한반도를 짓눌러온 전쟁의 공포는 거의 사라지게 되고, 남북한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실험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동북아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70년대 초반 키신저와 닉슨의 중국 방문 직후, 일본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 중국과 수교를 맺었던 사례도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냉전 해제의 필수조건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냉전세력 스스로 변했으면
그러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력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북한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유지·강화되어온 한미·미일 동맹체제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로 있든 과장된 것이든, 지난 수년간 한미, 미일동맹이 재편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이 가속도가 붙은 이유는 ‘북한위협론’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한미일의 냉전세력들이 ‘북한위협론’이라는 꽃놀이패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북미관계 정상화는 양국 사이의 협상 못지 않게, 이러한 냉전세력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이들 냉전세력이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냉전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가 탈냉전 시대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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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욱 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조지워싱턴대 객원 연구원)
요즘처럼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도 없다.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60년을 훌쩍 넘긴 북미 적대관계의 종식을 향해 얼굴을 마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5년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불과 2년전만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몰아붙였고, 김정일 정권은 부시 대통령을 가리켜 ‘불망나니’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과 미국이 2·13 합의에 따라 3월 5일부터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마치 외국의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방불케 하듯,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찾은 김계관 일행의 경호와 의전에 만전을 기했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예방하겠다는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겠지만,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국내외의 대북강경파들이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부시가 적으로 규정했던 김정일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자, 부시의 대북강경책의 강력한 우군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존 볼튼 전 미국 유엔대사를 비롯한 네오콘은 연일 부시의 대북정책이 원칙을 잃었다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국내의 한 신문 칼럼니스트는 미국도 믿을 나라가 못된다며 이제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도모해야 한다며 ‘반미’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대북강경파의 부시행정부 비난
부시와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대북강경책을 통해 톡톡한 재미를 봤던 일본의 아베 정권은 부시의 변신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앞세워 부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 호주의 동북아 전문가인 거번 메코맥 교수가 일갈한 한 것처럼, ‘부시 쇼크’가 동북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북미관계가 정상화된다면 이는 1945년 외세에 의한 한반도 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체제에 버금가는 엄청난 질서 변화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의 핵심에는 바로 북미간의 적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53년 정전체제의 종식을 수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반세기 넘게 한반도를 짓눌러온 전쟁의 공포는 거의 사라지게 되고, 남북한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실험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동북아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70년대 초반 키신저와 닉슨의 중국 방문 직후, 일본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 중국과 수교를 맺었던 사례도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냉전 해제의 필수조건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냉전세력 스스로 변했으면
그러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력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북한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유지·강화되어온 한미·미일 동맹체제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로 있든 과장된 것이든, 지난 수년간 한미, 미일동맹이 재편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이 가속도가 붙은 이유는 ‘북한위협론’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한미일의 냉전세력들이 ‘북한위협론’이라는 꽃놀이패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북미관계 정상화는 양국 사이의 협상 못지 않게, 이러한 냉전세력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이들 냉전세력이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냉전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가 탈냉전 시대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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