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글자는 지워도 기억은 못 지운다(문창재 2007.03.09)

지역내일 2007-03-09
글자는 지워도 기억은 못 지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가 끝내 고노 담화를 부정할 모양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정부 여당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태평양 전쟁 당시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하고 사죄한 고노담화의 사실관계를 재조사하도록 의회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종군위안부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 없다느니, 미국의회가 일본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더라도 사과하지 않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쏟아낸 속내가 결국 이거였구나 싶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조사한지 14년이 지났으며, 그동안 새로운 증언과 자료가 나온 것이 재조사의 배경이라 한다. 일본은 세월이 지나면 역사적인 진실도 변하는 나라인가. 10년이 넘도록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보상과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는 왜 증언으로 채택하지 않는가.
고노 담화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문서다. ‘징용귀신’이라 불렸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고백과 속죄운동을 계기로, 1년 8개월간의 조사 끝에 강제성을 인정한 고백록이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명의로 된 이 문서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수용할 만 하였다.
“위안소 설치는 군 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했지만, 감언과 강압에 의한 사례가 많았고, 관헌이 직접 가담한 일도 있었다”는 정도로는 너무 미흡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의 교훈으로서 직시하겠다”는 다짐을 믿고 싶었다.
이 공식담화는 2년 뒤 무라야마 사죄담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1995년 패전 50주년을 맞은 무라야마(村山富市) 총리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신의를 정부시책의 근간으로 삼겠다”고 천명하였다. 이 담화는 일본을 국제사회에 재인식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그 모든 반성과 사과의 말들을 거두어들이려 하고 있다. 재조사라는 절차를 통해 자기네 정부가 1년 8개월 동안 공식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을 뒤집으려고 한다. “광의(廣義)의 강제성은 있었지만 협의(俠義)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아베총리는 지난 5일 의회답변을 통해 “본인이 자발적으로 그 길(종군위안부)을 가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중간에 낀 업자가 사실상 강제했다는 사례가 있고, 이런 광의의 해석에서 강제성은 있었다. 그러나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서 유괴하는 것처럼 데리고 갔다는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강제는 강제가 아니라니 강제성에도 종류와 국적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고노담화를 기본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계승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조건이 붙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전적으로 계승할 수는 없다는 속내가 아닌가. 고노 담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요시다 세이지의 고백을 꾸며낸 말이라고 규정한 의원시절의 발언록을 보면 그런 의심을 살 소지가 있다.
총리가 되기 전인 2005년 4월 한 강연회에서“위안부는 요시다가 꾸며낸 이야기이며, 아사히신문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외국으로 번져갔다”고 말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속죄운동에 여생을 바친 사람의 고백을 거짓말로 몰아붙이는 사람의 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을 한번 열어보고 싶다.
“분명히 해둘 것은 첫째 종군위안부를 모집한 것이 아니라 노예사냥처럼 강제로 체포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조선총독부와 경찰과 군 병력의 지원 아래 골라서 체포해 간 것이니 모집이라는 말도 부당합니다.”
1992년 1월 일본 지바(千葉)현 아비코(我孫子)시로 찾아간 필자에게 그가 처음 한 말이다. “지금부터 말하는 나의 고백이 역사의 자료가 되어야한다”면서 녹음을 해 두라던 그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식담화문의 글자를 지울 수는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피해자들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와 보상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청산의 방법이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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