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논쟁의 허실
연초부터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난데없는 진보 논쟁이 일어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 최장집 교수에게 사회운동과 개혁을 지향하는 소장파 교수들이 "재수 없는 소리한다"고 들이대면서 논전이 시작되었다. 이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 청와대 비서진과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토론은 마구 달아올랐다. 갑자기 미국이 북한에게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는 낙관론이 퍼지면서 진보논쟁도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에 대한 평가라는 폭발성 쟁점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대선 과정에서 불씨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 논쟁은 "민주 정치를 한다면서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 정권에 실망했다"는 측과 "먹고 살기 힘들어도 인권, 평화, 민주,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측의 대결이었다. 물론 청와대측 인사들은 후자를 응원했을 뿐만 아니라 한미FTA를 반대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파 진보세력이 된다는 캠페인도 슬쩍 끼어 넣었다. 이렇게 되자 노대통령을 옹호하던 학계 인사들은 졸지에 어용 교수로 분류될 위험을 감지했다. 시민운동권의 명망가들은 "우리도 실망했지만 군사독재의 후계자들에게 정권을 넘길 수는 없다. 오염되지 않은 참신한 후보를 내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1987년의 백기완 후보와 같은 인물을 내세워 끝까지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유권자를 모아놓고 있으면 엉망진창인 열린우리당에게 압력을 넣어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충정만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논쟁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복잡한 안건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고 누가 어느 편인지 소속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 논쟁은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두통을 유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논객들이 별안간 서로 "네 탓"을 하며 공개적으로 인격 모독에 근접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이들은 벌써 옛날이 된 탄핵파동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구출하기 위해 굳게 뭉쳤던 동지들이었다. 수구적 진보, 사이비 진보, 유연한 진보, 반신자유주의와 같이 웬만한 사회과학 전공자들도 알아듣기 힘든 용어가 난무하는 논쟁을 이해할 수 있는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를 가지고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한 인사들에게 정권을 맞긴 시민들에게는 진짜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편의상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진보 진영 내부에는 다양한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가진 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권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부터 시작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자립적 농촌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삼는 소박한 농본주의, 외세 배격을 외치는 저항적 민족주의, 자본주의 시장의 횡포를 규탄하며 소박한 민중주의를 지향하는 세력 등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들을 뭉치게 한 접착제는 군사독재에 대한 증오였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복원되고 의회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 민주화 운동권은 사회경제 질서와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 때문에 자체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진보 논쟁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정치적 민주화는 사실상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법과 제도를 대폭 개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는 한미 FTA는 모든 정치 집단이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긴장 완화도 유사한 압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즉, 아무리 과거에 찬란한 민주화 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 집단이라도 탈권위주의와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고만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중지를 모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정권 교체를 걱정하는 진보 논객들은 각종 사회경제 현안과 국제관계에 대한 정책판단을 시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권 정치인들도 아파트 값이나 대학 등록금 인하 논의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민주화 운동권이나 열린우리당이 개헌이나 남북정상회담으로 바람을 잡아 재집권할 수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으면 진짜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될 수 있다. 이 것은 지리멸렬한 집권세력 덕분에 반사 이익을 즐기고 있는 보수세력이나 뉴라이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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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난데없는 진보 논쟁이 일어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 최장집 교수에게 사회운동과 개혁을 지향하는 소장파 교수들이 "재수 없는 소리한다"고 들이대면서 논전이 시작되었다. 이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 청와대 비서진과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토론은 마구 달아올랐다. 갑자기 미국이 북한에게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는 낙관론이 퍼지면서 진보논쟁도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에 대한 평가라는 폭발성 쟁점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대선 과정에서 불씨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 논쟁은 "민주 정치를 한다면서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 정권에 실망했다"는 측과 "먹고 살기 힘들어도 인권, 평화, 민주,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측의 대결이었다. 물론 청와대측 인사들은 후자를 응원했을 뿐만 아니라 한미FTA를 반대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파 진보세력이 된다는 캠페인도 슬쩍 끼어 넣었다. 이렇게 되자 노대통령을 옹호하던 학계 인사들은 졸지에 어용 교수로 분류될 위험을 감지했다. 시민운동권의 명망가들은 "우리도 실망했지만 군사독재의 후계자들에게 정권을 넘길 수는 없다. 오염되지 않은 참신한 후보를 내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1987년의 백기완 후보와 같은 인물을 내세워 끝까지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유권자를 모아놓고 있으면 엉망진창인 열린우리당에게 압력을 넣어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충정만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논쟁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복잡한 안건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고 누가 어느 편인지 소속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 논쟁은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두통을 유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논객들이 별안간 서로 "네 탓"을 하며 공개적으로 인격 모독에 근접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이들은 벌써 옛날이 된 탄핵파동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구출하기 위해 굳게 뭉쳤던 동지들이었다. 수구적 진보, 사이비 진보, 유연한 진보, 반신자유주의와 같이 웬만한 사회과학 전공자들도 알아듣기 힘든 용어가 난무하는 논쟁을 이해할 수 있는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를 가지고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한 인사들에게 정권을 맞긴 시민들에게는 진짜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편의상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진보 진영 내부에는 다양한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가진 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권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부터 시작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자립적 농촌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삼는 소박한 농본주의, 외세 배격을 외치는 저항적 민족주의, 자본주의 시장의 횡포를 규탄하며 소박한 민중주의를 지향하는 세력 등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들을 뭉치게 한 접착제는 군사독재에 대한 증오였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복원되고 의회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 민주화 운동권은 사회경제 질서와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 때문에 자체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진보 논쟁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정치적 민주화는 사실상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법과 제도를 대폭 개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는 한미 FTA는 모든 정치 집단이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긴장 완화도 유사한 압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즉, 아무리 과거에 찬란한 민주화 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 집단이라도 탈권위주의와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고만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중지를 모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정권 교체를 걱정하는 진보 논객들은 각종 사회경제 현안과 국제관계에 대한 정책판단을 시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권 정치인들도 아파트 값이나 대학 등록금 인하 논의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민주화 운동권이나 열린우리당이 개헌이나 남북정상회담으로 바람을 잡아 재집권할 수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으면 진짜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될 수 있다. 이 것은 지리멸렬한 집권세력 덕분에 반사 이익을 즐기고 있는 보수세력이나 뉴라이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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