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반도 기류 변화가 대선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반한나라당 전선’이 되살아날 발판으로 작용할 가능성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을 위한 정당 연석회의를 제안하고, 한나라당이 대북정책 기조를 급히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반한나라당 전선 형성을 둘러싼 ‘공세와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북미관계 진전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정세변화는 이미 대선정국의 큰 변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비한나라 진영 역량 부족이 약점 = 한반도 냉전체제의 마지막 빗장을 해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국제정치 환경은 일단 비한나라당 진영에 유리한 호재다.
전문가들은 민심의 이념지형이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진보층이 두터워지고 보수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3월 정례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조짐이 드러났다. 북미관계의 진전에 맞춰 ‘우리 정부가 남북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72.1%에 달했고, 연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찬성 61.3%, 반대 33.5%로 지지 여론이 높았다. 더 나아가 북미관계 진전, 남북정상회담 등의 변화가 이뤄지면 현재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반응이 과반(52.1%)을 넘어섰다.
한반도 정세급변을 매개로 바닥민심의 진보지향성이 강해지면 흩어졌던 비한나라 진영 지지층이 다시 모일 조건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반한나라당 전선’을 날카롭게 세워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유권자의 이념지형이 상당히 달라지고, 이념대립이 심화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비한나라 진영에 이런 구도를 만들어낼 의제를 틀어쥔 유력후보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요한 정국현안을 찬반이 갈리는 최대 이슈로 부각시켜 지지층과 반대층을 가르는 대립선을 그을 주체가 뚜렷해야 하는 데 이 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기존의 대북 강경노선에서 급선회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태도변화도 대치선을 흐리는 또다른 요소다.
◆전·현직 대통령이 ‘전선 가르기’ 나설 가능성 = 하지만, 한반도 이슈가 한나라당과 나머지 진영간 ‘차별화’를 드러낼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나라당은 불과 5개월 사이에 대북정책을 놓고 냉온탕을 옮겨 다녔다. ‘북한이 먼저 변하기 전에는 남북관계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집하다가 정세의 근본이 뒤바뀌자 입장을 바꿨다. 한반도 평화협력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해도 ‘과연 진심이냐, 새 흐름을 주도할 능력이 있겠냐’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약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가능한 행보다. 국민들이 볼 때 남북관계 진전은 DJ의 공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DJ는 지난 해 북한 핵실험으로 여론의 역풍이 불어 닥친 속에서도 ‘햇볕정책’ 고수를 외쳤고,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한때 흔들렸던 노 대통령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은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다.
최근 강연정치를 재개한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매개로 ‘미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세력의 조건’을 제시하며 묵시적으로 한나라당을 몰아붙일 수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중립 요구를 정면 거부하고 “할말은 하겠다”고 공언한 노 대통령은 보다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정치권 차기주자들에게 향후 한반도정책 구상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압박하거나 관련 공약에 대해 ‘매니페스토’식 평가를 던지는 식으로 큰 전선을 그어내려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한반도의 미래와 대미, 대북 관계를 짚으며 차기지도자의 조건과 덕목을 쟁점화 할 경우 파장은 상당할 수 있다.
◆상황따라 현재 구도 붕괴될 수도 = 한나라당과 가까운 전문가나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한반도 정세급변이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 진영의 수준을 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판 흔들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은 최근 북미관계 변화가 양측 최고위층의 전략적 결단에 기초한 것이라 북미뿐 아니라 북일관계마저도 획기적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전략가는 “이렇게 되면 곧바로 닥치는 게 남북정상회담 국면”이라면서 “2000년 정상회담 땐 ‘연방제’ 표현으로 논란이 일었지만, 이번엔 누구도 거스르기 힘든 ‘민족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식의 파괴력을 가진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뒤이어 비한나라 진영이 ‘새 시대를 이끌 평화세력, 통일세력을 형성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이것이 정치권 밖 외부세력의 조직화 움직임과 맞물려 지지층 결집과 새 세력을 대표할 ‘대항마’ 부각으로 이어지면 “현재의 정당구도, 후보구도가 완전히 무너지고 전혀 새로운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게 이들의 시각이다.
앞의 전략가는 “시대의 화두가 바뀌고,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이끌 새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기면 대선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국민들이 결국엔 그동안 믿을만했던 세력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권과 관련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뿌리부터 달라질 것이란 예측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대선국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한나라당 전선의 강화든, 새로운 구도의 형성이든 한나라당과 비한나라 진영 모두에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위기와 기회의 요소를 모두 품고 있는 셈이다.
김상범 김형선 기자 clay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을 위한 정당 연석회의를 제안하고, 한나라당이 대북정책 기조를 급히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반한나라당 전선 형성을 둘러싼 ‘공세와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북미관계 진전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정세변화는 이미 대선정국의 큰 변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비한나라 진영 역량 부족이 약점 = 한반도 냉전체제의 마지막 빗장을 해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국제정치 환경은 일단 비한나라당 진영에 유리한 호재다.
전문가들은 민심의 이념지형이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진보층이 두터워지고 보수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3월 정례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조짐이 드러났다. 북미관계의 진전에 맞춰 ‘우리 정부가 남북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72.1%에 달했고, 연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찬성 61.3%, 반대 33.5%로 지지 여론이 높았다. 더 나아가 북미관계 진전, 남북정상회담 등의 변화가 이뤄지면 현재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반응이 과반(52.1%)을 넘어섰다.
한반도 정세급변을 매개로 바닥민심의 진보지향성이 강해지면 흩어졌던 비한나라 진영 지지층이 다시 모일 조건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반한나라당 전선’을 날카롭게 세워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유권자의 이념지형이 상당히 달라지고, 이념대립이 심화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비한나라 진영에 이런 구도를 만들어낼 의제를 틀어쥔 유력후보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요한 정국현안을 찬반이 갈리는 최대 이슈로 부각시켜 지지층과 반대층을 가르는 대립선을 그을 주체가 뚜렷해야 하는 데 이 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기존의 대북 강경노선에서 급선회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태도변화도 대치선을 흐리는 또다른 요소다.
◆전·현직 대통령이 ‘전선 가르기’ 나설 가능성 = 하지만, 한반도 이슈가 한나라당과 나머지 진영간 ‘차별화’를 드러낼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나라당은 불과 5개월 사이에 대북정책을 놓고 냉온탕을 옮겨 다녔다. ‘북한이 먼저 변하기 전에는 남북관계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집하다가 정세의 근본이 뒤바뀌자 입장을 바꿨다. 한반도 평화협력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해도 ‘과연 진심이냐, 새 흐름을 주도할 능력이 있겠냐’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약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가능한 행보다. 국민들이 볼 때 남북관계 진전은 DJ의 공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DJ는 지난 해 북한 핵실험으로 여론의 역풍이 불어 닥친 속에서도 ‘햇볕정책’ 고수를 외쳤고,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한때 흔들렸던 노 대통령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은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다.
최근 강연정치를 재개한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매개로 ‘미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세력의 조건’을 제시하며 묵시적으로 한나라당을 몰아붙일 수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중립 요구를 정면 거부하고 “할말은 하겠다”고 공언한 노 대통령은 보다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정치권 차기주자들에게 향후 한반도정책 구상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압박하거나 관련 공약에 대해 ‘매니페스토’식 평가를 던지는 식으로 큰 전선을 그어내려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한반도의 미래와 대미, 대북 관계를 짚으며 차기지도자의 조건과 덕목을 쟁점화 할 경우 파장은 상당할 수 있다.
◆상황따라 현재 구도 붕괴될 수도 = 한나라당과 가까운 전문가나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한반도 정세급변이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 진영의 수준을 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판 흔들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은 최근 북미관계 변화가 양측 최고위층의 전략적 결단에 기초한 것이라 북미뿐 아니라 북일관계마저도 획기적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전략가는 “이렇게 되면 곧바로 닥치는 게 남북정상회담 국면”이라면서 “2000년 정상회담 땐 ‘연방제’ 표현으로 논란이 일었지만, 이번엔 누구도 거스르기 힘든 ‘민족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식의 파괴력을 가진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뒤이어 비한나라 진영이 ‘새 시대를 이끌 평화세력, 통일세력을 형성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이것이 정치권 밖 외부세력의 조직화 움직임과 맞물려 지지층 결집과 새 세력을 대표할 ‘대항마’ 부각으로 이어지면 “현재의 정당구도, 후보구도가 완전히 무너지고 전혀 새로운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게 이들의 시각이다.
앞의 전략가는 “시대의 화두가 바뀌고,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이끌 새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기면 대선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국민들이 결국엔 그동안 믿을만했던 세력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권과 관련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뿌리부터 달라질 것이란 예측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대선국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한나라당 전선의 강화든, 새로운 구도의 형성이든 한나라당과 비한나라 진영 모두에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위기와 기회의 요소를 모두 품고 있는 셈이다.
김상범 김형선 기자 clay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