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돌베개
1만8000원
연암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라
박지원과 연암 문학에 21세기 사는 법을 묻는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통섭(Consilience)의 틀 안에서 연암 박지원을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빗댄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학문영역을 만들어내는 지식의 통섭을 꿈꾸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둘은 하나다.
정 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를 ‘조선의 셰익스피어’라 명명한다. 박지원 문학은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자랑하던 대문호의 그것과 매한가지로 위력적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8세기 조선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에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들어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가 시인 박지원을 불러내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박지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작 100선을 뽑아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호질 허생전 일야구도하기 등 소설(10편)과 서문 비문 서간문 등 산문(75편), 그리고 한시(15수)까지 고루 섞여있다.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김명호 교수가 연암 문집 전체를 완역한 ‘연암집(상·중·하)’을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출간했다고 할 수 있다. 연암집 완역본은 20여년에 걸친 학자들의 노고가 깃든 작품이기도 하다. 한학의 대가인 우전 신호열 선생이 생전 구술하던 연암집 국역 초고를 바탕으로 그의 문하생으로 연암문학을 전공한 김명호 교수가 수정·가필하고 주해를 덧붙여 완성했다.
우전은 1978년부터 매주 연암집 강독회를 열고 작고할 때까지 연암의 글을 국역 구술했다 한다. 문하생들이 선생 유업으로 연암집 국역 출간을 기획했으나 구술을 받아 적은 원고가 너무 방대해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다. 지난 2005년에야 문하생 중 연암문학을 정공한 김 교수가 지난 ‘국역 연암집’(전2권)을 엮어냈고 이번에 4000여개 주석을 덧붙이고 가다듬어 새로 완역판까지 보게 됐다.
연암 박지원은 문학가라기보다는 사상가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역사책을 통해 그를 접한 우리는 홍대용과 함께 손꼽히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북학파의 영수로 ‘암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물론 국어 교과서를 통해 허생전이나 호질 열하일기로 대표되는 문학 작품도 접하긴 했다.
연암집 완역본은 박지원이라는 작가로, 사상가로 선을 보이고 성장하고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1737년(영조 13년) 한양 서쪽 반송방 야동에서 태어난 박사유와 함평 이씨의 막내아들은 “고문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표현과 조선 고유의 속어 속담 등을 구사해 참신하고 사실적이면서 민족문학적 개성이 뚜렷한 산문들을 많이 남겼다”.
박지원의 저작활동은 ‘법고창신’으로 대변된다. 연암 스스로 “소위 법고(法古 옛 것을 본받음)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刱新 새롭게 창조함)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라며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병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 글”이라고 강조했다.
법고창신은 사실 연암의 작가정신이자 사상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그가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명호 교수는 연암을 “자기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양심적인 작가요 사상가”라고 평한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출신인데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어 입신출세할 수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또 좁은 국토에서 벗어나 천하대세를 살피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청나라를 다녀온 뒤 북학사상을 집대성한 거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뒤늦게 관직에 나가서도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정을 펴려고 했으며 당시 양반사회의 보수적 시류에 맞서 자신의 문학적 사상적 진보성을 지켜내려 했다.
“국가 민족 문명 계층 지역 성별 등 기존 체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인간다운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 시대착오적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발상을 전환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가르친 연암 작품들은 그에 응답하는 살아있는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몫은 연암이 남긴 문학과 사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연암이 살아있다면 현대의 당면과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을까 하는 관점’에서 말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돌베개
1만8000원
연암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라
박지원과 연암 문학에 21세기 사는 법을 묻는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통섭(Consilience)의 틀 안에서 연암 박지원을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빗댄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학문영역을 만들어내는 지식의 통섭을 꿈꾸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둘은 하나다.
정 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를 ‘조선의 셰익스피어’라 명명한다. 박지원 문학은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자랑하던 대문호의 그것과 매한가지로 위력적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8세기 조선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에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들어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가 시인 박지원을 불러내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박지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작 100선을 뽑아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호질 허생전 일야구도하기 등 소설(10편)과 서문 비문 서간문 등 산문(75편), 그리고 한시(15수)까지 고루 섞여있다.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김명호 교수가 연암 문집 전체를 완역한 ‘연암집(상·중·하)’을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출간했다고 할 수 있다. 연암집 완역본은 20여년에 걸친 학자들의 노고가 깃든 작품이기도 하다. 한학의 대가인 우전 신호열 선생이 생전 구술하던 연암집 국역 초고를 바탕으로 그의 문하생으로 연암문학을 전공한 김명호 교수가 수정·가필하고 주해를 덧붙여 완성했다.
우전은 1978년부터 매주 연암집 강독회를 열고 작고할 때까지 연암의 글을 국역 구술했다 한다. 문하생들이 선생 유업으로 연암집 국역 출간을 기획했으나 구술을 받아 적은 원고가 너무 방대해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다. 지난 2005년에야 문하생 중 연암문학을 정공한 김 교수가 지난 ‘국역 연암집’(전2권)을 엮어냈고 이번에 4000여개 주석을 덧붙이고 가다듬어 새로 완역판까지 보게 됐다.
연암 박지원은 문학가라기보다는 사상가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역사책을 통해 그를 접한 우리는 홍대용과 함께 손꼽히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북학파의 영수로 ‘암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물론 국어 교과서를 통해 허생전이나 호질 열하일기로 대표되는 문학 작품도 접하긴 했다.
연암집 완역본은 박지원이라는 작가로, 사상가로 선을 보이고 성장하고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1737년(영조 13년) 한양 서쪽 반송방 야동에서 태어난 박사유와 함평 이씨의 막내아들은 “고문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표현과 조선 고유의 속어 속담 등을 구사해 참신하고 사실적이면서 민족문학적 개성이 뚜렷한 산문들을 많이 남겼다”.
박지원의 저작활동은 ‘법고창신’으로 대변된다. 연암 스스로 “소위 법고(法古 옛 것을 본받음)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刱新 새롭게 창조함)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라며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병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 글”이라고 강조했다.
법고창신은 사실 연암의 작가정신이자 사상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그가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명호 교수는 연암을 “자기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양심적인 작가요 사상가”라고 평한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출신인데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어 입신출세할 수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또 좁은 국토에서 벗어나 천하대세를 살피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청나라를 다녀온 뒤 북학사상을 집대성한 거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뒤늦게 관직에 나가서도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정을 펴려고 했으며 당시 양반사회의 보수적 시류에 맞서 자신의 문학적 사상적 진보성을 지켜내려 했다.
“국가 민족 문명 계층 지역 성별 등 기존 체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인간다운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 시대착오적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발상을 전환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가르친 연암 작품들은 그에 응답하는 살아있는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몫은 연암이 남긴 문학과 사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연암이 살아있다면 현대의 당면과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을까 하는 관점’에서 말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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