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시인의 마음
지난 주말 동호인 몇 명과 함께 문경 인근의 산에 갔었다. 우리는 일요일 새벽 등산을 위해 토요일 밤 산행 들머리 인근 마을에서 묵었다. 문경과 인접한 충북 괴산의 산촌 마을인데 일행 중 한 명의 친구네 집이었다. 원래 다른 곳에서 묵기로 했으나 잠자리가 신통치 않아 갑작스레 바꾼 집이다. 집 주인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밤중에 40리가 넘는 길을 차를 몰아 돼지고기 등 술 안주를 마련해 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시골 인심인가. 요즘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회다. 10시께부터 벌어진 술자리는 자정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 구수한 입담의 집 주인은 평범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승려가 된 인물이다. 10여년 사찰에서 수행하던 중학교 선생님인 부인과 만난 게 환속의 이유였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고향도 아닌 괴산에 와서 살게 됐다는 것이다. 부인은 충주에 있는 학교로 출퇴근 한다. 고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 한 명이 있다. 50중반에 들어선 그가 농부가 된 것은 불과 10여년.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런 농부다. 괴산에 발을 첫 디뎠을 때, 토박이 외의 농사꾼은 혼자였다고 한다. 70여호의 자연부락으로 인근 자연부락 중에서는 호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땅은 밭 2천여 평과 논 2천여 평. 밭에는 사과와 복숭아 등 과수와 고추를 가꾼다. 여기서 올리는 조소득은 연 4천만원 정도지만 비용을 뺀 실소득은 연 1천600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이 그렇지 초기에는 연 300만원도 건질 수 없었다. 농사일도 서툴고 힘에 부쳐서다. 점차 동네 분들에게 배우고 체계적인 영농지도 교육도 받았다. 저녁에는 농업 관련 책을 보며 영농기술을 익혀나갔다. 의욕이 생겨 무리하다 보니 무릎 인대가 망가졌다. 수술로 회복은 됐지만 조심해야 하는 상태다. 그래도 그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동네 어른들의 권유로 이장도 해봤다. 행정 처리에 시간을 뺏겨 농사일에 지장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토박이들과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한 양이나 투자에 비한 소득을 따지면 농촌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농촌에 머무는 이유는 욕심이 없어서다.
어떤 도시인이 시골 밭둑에서 냉이를 캐다가 촌로에게 혼났다며 시골 인심을 탓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도시인들이 냉이를 캐고 싶어 하면 삽을 들고 나가 아예 떠준다고 한다. 그가 마을에서 가장 좋아 하는 분은 초등학교 3년 중퇴의 60대중반 어른인데 아량이 넓은 분이라고 했다. 누가 뭐라 해도 허허 그랬어! 하며 넘기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날 산행을 마친 우리 일행은 그 집에 다시 들러 겨우내 갈무리한 배추 한 포기씩을 얻어 배낭에 넣고 서울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들판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친다. 논과 과수원에는 농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의사이며 시인인 마종기씨의 시 ‘과수원에서’ 중 일부 가 떠오른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 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구나.
그날 괴산 농가에서 느낀 농심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의 섭리를 노래한 시인의 마음도 놓칠 수 없다. 이악스럽게 살아가는 도시인이 부끄럽다. 더 좋은 동네, 더 좋은 아파트에서 더 좋은 차를 바라며 살아가는 숱한 도시인들. 만물이 움트는 봄.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어제 발표된 통계를 보면 서울 강남구와 수도권 주변 도시로 점점 인구가 몰려들고 있다. 지방 도시와 농어촌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FTA타결 이후 농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푸근한 농심(農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성 싶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지난 주말 동호인 몇 명과 함께 문경 인근의 산에 갔었다. 우리는 일요일 새벽 등산을 위해 토요일 밤 산행 들머리 인근 마을에서 묵었다. 문경과 인접한 충북 괴산의 산촌 마을인데 일행 중 한 명의 친구네 집이었다. 원래 다른 곳에서 묵기로 했으나 잠자리가 신통치 않아 갑작스레 바꾼 집이다. 집 주인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밤중에 40리가 넘는 길을 차를 몰아 돼지고기 등 술 안주를 마련해 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시골 인심인가. 요즘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회다. 10시께부터 벌어진 술자리는 자정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 구수한 입담의 집 주인은 평범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승려가 된 인물이다. 10여년 사찰에서 수행하던 중학교 선생님인 부인과 만난 게 환속의 이유였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고향도 아닌 괴산에 와서 살게 됐다는 것이다. 부인은 충주에 있는 학교로 출퇴근 한다. 고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 한 명이 있다. 50중반에 들어선 그가 농부가 된 것은 불과 10여년.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런 농부다. 괴산에 발을 첫 디뎠을 때, 토박이 외의 농사꾼은 혼자였다고 한다. 70여호의 자연부락으로 인근 자연부락 중에서는 호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땅은 밭 2천여 평과 논 2천여 평. 밭에는 사과와 복숭아 등 과수와 고추를 가꾼다. 여기서 올리는 조소득은 연 4천만원 정도지만 비용을 뺀 실소득은 연 1천600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이 그렇지 초기에는 연 300만원도 건질 수 없었다. 농사일도 서툴고 힘에 부쳐서다. 점차 동네 분들에게 배우고 체계적인 영농지도 교육도 받았다. 저녁에는 농업 관련 책을 보며 영농기술을 익혀나갔다. 의욕이 생겨 무리하다 보니 무릎 인대가 망가졌다. 수술로 회복은 됐지만 조심해야 하는 상태다. 그래도 그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동네 어른들의 권유로 이장도 해봤다. 행정 처리에 시간을 뺏겨 농사일에 지장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토박이들과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한 양이나 투자에 비한 소득을 따지면 농촌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농촌에 머무는 이유는 욕심이 없어서다.
어떤 도시인이 시골 밭둑에서 냉이를 캐다가 촌로에게 혼났다며 시골 인심을 탓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도시인들이 냉이를 캐고 싶어 하면 삽을 들고 나가 아예 떠준다고 한다. 그가 마을에서 가장 좋아 하는 분은 초등학교 3년 중퇴의 60대중반 어른인데 아량이 넓은 분이라고 했다. 누가 뭐라 해도 허허 그랬어! 하며 넘기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날 산행을 마친 우리 일행은 그 집에 다시 들러 겨우내 갈무리한 배추 한 포기씩을 얻어 배낭에 넣고 서울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들판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친다. 논과 과수원에는 농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의사이며 시인인 마종기씨의 시 ‘과수원에서’ 중 일부 가 떠오른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 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구나.
그날 괴산 농가에서 느낀 농심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의 섭리를 노래한 시인의 마음도 놓칠 수 없다. 이악스럽게 살아가는 도시인이 부끄럽다. 더 좋은 동네, 더 좋은 아파트에서 더 좋은 차를 바라며 살아가는 숱한 도시인들. 만물이 움트는 봄.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어제 발표된 통계를 보면 서울 강남구와 수도권 주변 도시로 점점 인구가 몰려들고 있다. 지방 도시와 농어촌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FTA타결 이후 농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푸근한 농심(農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성 싶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