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칼럼>중산층의 시스템 불신(2007.03.26)

지역내일 2007-03-26
중산층의 시스템 불신
성 한 표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잊혀져 간다. 최근 인천 송도의 한 오피스텔 분양현장에서 벌어진 아수라장도 마찬가지다.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수천만 원을 벌수 있다면서 투기를 부추긴 ‘떴다방’과 인터넷 신청을 받지 않아 혼란을 불러온 건설회사가 당연히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그날 인천 송도에서 우리가 목격한 광경은 우리사회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아프게 깨우쳐 주는 사건이었다. 분양 현장에서 사흘 동안 텐트를 치고 새우잠을 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들이 분양사무소 앞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난장판 된 오피스텔 분양 현장
오피스텔을 실수요자로 분양받으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투기꾼’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우리들과는 다른, ‘별종’으로 다룰 일은 아니다. 이들은 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들에게서 바로 한국사회의 허리부분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일반적인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난데없이 벌판에 나가 난장판을 만들어 냈는가?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우리는 연극인 유인촌의 ‘동경에서 문화읽기’라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도쿄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사회 시스템을 신뢰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주 작고 허름하고 값이 싼 식당의 음식이라도 도쿄사람들은 그 식당에서 불량식품은 안 팔 것이라고 믿는다. 싸니까 맛이 좀 없는 음식을 팔지는 몰라도 불량식품은 안 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인촌의 글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에 얼마나 큰 차이를 낼 수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투기로 벌어들인 이익은 세금으로 모두 회수하겠다고 정부가 아무리 외쳐대도 많은 사람들이 투기이익을 회수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사회 통념을 만들어 내는 주역이 바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45%를 차지하는(1999년 노동부 조사) 중산층은 대체로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인 선택은 양극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은 독일에서 히틀러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1987년 6월 항쟁에 이른바 ‘넥타이부대’, 곧 중산층이 참여함으로써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들의 끊임없는 상승 욕구와 안정과 인정받는 것에 대한 추구는 경제 개발과 사회 문화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이들은 문화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대량 소비자이며, 문화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반면에 상승 욕구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겹치면, 이상 과열된 교육열을 낳고, 이웃간에 벽을 쌓아 공동체의 건강성을 파괴하게 된다. 강남 목동을 비롯한 이른바 부동산 ‘버블 세븐’은 이들의 교육열과 부동산 불패 신화, 다른 말로 하면 정부의 교육정책과 부동산 규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배타적 태도를 낳기도 한다. 임대 아파트 주변에는 으레 주민들이 이웃 아파트 단지로 넘어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임대 분양 혼합단지’는 임대와 분양아파트를 같은 단지 안에 표가 나지 않게 섞어서 주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입주일이 다가오자 집값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싸운다는 이유를 들어 분양 입주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시스템 파괴에 앞장 선 정치권
최근 두드러진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일부 해당 주민들의 반발은 중산층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넘어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의 경우 지난 해 집값이 3억 원 이상씩 올랐는데, 올해 300만원 남짓한 종부세를 물게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이들이 값비싼 재산을 보유하려면 높은 세금을 물어야 하는, 조세 시스템이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세금을 자신의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할 비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어김없이 작동해야 한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 근절과 조세 정의, 공평한 교육기회 등을 지향하는 시스템이 나왔지만, 정치권이라는 터널을 지나는 동안 이것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사람들은 많이 보았다. 중산층이 정치권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시스템을 ‘신뢰’하는 사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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