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FTA가 우리 집을 망쳐요”
며칠 전 제주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감귤 농사를 짓는 사촌 동생이 분통을 터뜨렸다.
“형님, FTA라는 놈 때문에 우리 집이 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협상 팀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기에 제주감귤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언제 수확되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계절관세 적용 기간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미국에 양보해버립니까?”
사촌은 일생 감귤나무를 키우며 살아왔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로 과일수입이 자유화하면서 그의 감귤농사는 일차 타격을 받았고, 아는 게 농사밖에 없어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장에 따라 몇 년 전 한라봉 농사를 시작해서 올해 첫 수확을 맛보게 된 터였다.
그는 1천 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만들면서 시설비 등을 합쳐 1억원은 족히 투자했다고 한다. 경상적인 농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겨울 내내 보일러를 가동하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맛을 좋게 한다며 막걸리를 빚어 나무뿌리에 뿌려주는가 하면 생선을 비료로 주기까지 한다. 사촌 부부는 공휴일도 없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귤나무 밭에서 일한다.
그들은 무역협상이 국력과 이해집단이 첨예하게 얽히고설켜있는 흥정인지를 잘 모른다. 농림부 장관이나 도지사, 심지어 협상대표가 농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골라하는 수사적인 말도 곧이곧대로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감귤은 제주도의 생명산업”이라고 읍소하는 제주도지사에게 웬디 커틀러 미국 협상 대표가 “제주도를 잘 안다”고 대답한 것을 갖고 협상에서 좀 봐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은 막연히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현실화하니 청천벽력같이 들리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타결 내용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논란의 핵심이 계절관세 부과 기간이다.
타결안에 의하면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개월을 감귤수확기로 보고 미국수입 감귤류에 50%의 관세를 종전대로 유지하고,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은 비계절관세 30%를 매기되 매년 관세율을 낮춰 7년 후에는 관세를 없앤다는 것이다.
제주 감귤농가, 특히 시설농가들은 이것이 잘못됐다고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 9월은 물론이고 10월도 감귤수확 계절이 아니다. 반면 3월~5월은 한라봉을 비롯해서 최근 농가에서 시설재배에 의해 생산되는 과일이 좋은 가격에 출하되는 시기이다. 문제는 이때가 미국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의 출하계절이라는 점이다. 한라봉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한국시장에서 경쟁하면 한라봉은 퇴출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사촌 같은 농민들 생각이다.
그는 한미FTA 협상팀과 농림부와 제주도가 손발이 맞지 않아 이런 최악의 협상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청 사람들이 감귤생산과 관련한 정보를 정확히 협상팀에게 전달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촌에게 어떤 설명과 위로를 해줘야 좋은 것인지 몰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이건 파워게임이라네. 협상팀은 제주감귤을 지킬 마음보다는 카드로 써먹을 찬스를 생각했을 지도 모르네. 생각해보게. 제주도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의 100분의 1이고 국회의석도 같은 비율이지. 경제력은 그보다 더 초라하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10분의 1이라네. 경제력은 그보다 훨씬 강하지. 미국의회의 의석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거기다 하원의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캘리포니아 여자가 앉아 있다네.
우리나라 협상 팀에게는 감귤을 지키는 것보다는 자동차 협상을 유리하게 하여 미국에 팔아먹는 일이 더 절박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네. 그게 총량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서가 나온 것일세. 협상팀이 제주감귤에 대한 정보를 몰랐던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리스트에서 감귤은 끝자리에 있었던 것일세.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싼값에 수입되면 계절관세란 장치에 상관없이 제주감귤은 타격을 받을 거야. 3, 4월에 값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들어온다는 데 1, 2월엔들 제주감귤이 좋은 값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
내가 미국 뉴욕에 살 때 들었던 얘기를 전해주지. 동부의 뉴욕주는 남한보다도 넓고 비옥한 농토가 많아 양파재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네. 그런데 2차대전 후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잇는 대륙횡단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5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의 양파농업이 순식간에 망해버렸다네. 질 좋고 값싼 캘리포니아 양파가 사나흘 만에 뉴욕청과시장에 공급되었기 때문일세.”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어서 사촌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농사에 생계를 걸지 않은 사람은 농사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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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주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감귤 농사를 짓는 사촌 동생이 분통을 터뜨렸다.
“형님, FTA라는 놈 때문에 우리 집이 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협상 팀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기에 제주감귤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언제 수확되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계절관세 적용 기간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미국에 양보해버립니까?”
사촌은 일생 감귤나무를 키우며 살아왔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로 과일수입이 자유화하면서 그의 감귤농사는 일차 타격을 받았고, 아는 게 농사밖에 없어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장에 따라 몇 년 전 한라봉 농사를 시작해서 올해 첫 수확을 맛보게 된 터였다.
그는 1천 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만들면서 시설비 등을 합쳐 1억원은 족히 투자했다고 한다. 경상적인 농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겨울 내내 보일러를 가동하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맛을 좋게 한다며 막걸리를 빚어 나무뿌리에 뿌려주는가 하면 생선을 비료로 주기까지 한다. 사촌 부부는 공휴일도 없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귤나무 밭에서 일한다.
그들은 무역협상이 국력과 이해집단이 첨예하게 얽히고설켜있는 흥정인지를 잘 모른다. 농림부 장관이나 도지사, 심지어 협상대표가 농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골라하는 수사적인 말도 곧이곧대로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감귤은 제주도의 생명산업”이라고 읍소하는 제주도지사에게 웬디 커틀러 미국 협상 대표가 “제주도를 잘 안다”고 대답한 것을 갖고 협상에서 좀 봐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은 막연히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현실화하니 청천벽력같이 들리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타결 내용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논란의 핵심이 계절관세 부과 기간이다.
타결안에 의하면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개월을 감귤수확기로 보고 미국수입 감귤류에 50%의 관세를 종전대로 유지하고,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은 비계절관세 30%를 매기되 매년 관세율을 낮춰 7년 후에는 관세를 없앤다는 것이다.
제주 감귤농가, 특히 시설농가들은 이것이 잘못됐다고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 9월은 물론이고 10월도 감귤수확 계절이 아니다. 반면 3월~5월은 한라봉을 비롯해서 최근 농가에서 시설재배에 의해 생산되는 과일이 좋은 가격에 출하되는 시기이다. 문제는 이때가 미국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의 출하계절이라는 점이다. 한라봉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한국시장에서 경쟁하면 한라봉은 퇴출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사촌 같은 농민들 생각이다.
그는 한미FTA 협상팀과 농림부와 제주도가 손발이 맞지 않아 이런 최악의 협상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청 사람들이 감귤생산과 관련한 정보를 정확히 협상팀에게 전달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촌에게 어떤 설명과 위로를 해줘야 좋은 것인지 몰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이건 파워게임이라네. 협상팀은 제주감귤을 지킬 마음보다는 카드로 써먹을 찬스를 생각했을 지도 모르네. 생각해보게. 제주도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의 100분의 1이고 국회의석도 같은 비율이지. 경제력은 그보다 더 초라하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10분의 1이라네. 경제력은 그보다 훨씬 강하지. 미국의회의 의석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거기다 하원의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캘리포니아 여자가 앉아 있다네.
우리나라 협상 팀에게는 감귤을 지키는 것보다는 자동차 협상을 유리하게 하여 미국에 팔아먹는 일이 더 절박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네. 그게 총량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서가 나온 것일세. 협상팀이 제주감귤에 대한 정보를 몰랐던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리스트에서 감귤은 끝자리에 있었던 것일세.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싼값에 수입되면 계절관세란 장치에 상관없이 제주감귤은 타격을 받을 거야. 3, 4월에 값싼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들어온다는 데 1, 2월엔들 제주감귤이 좋은 값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
내가 미국 뉴욕에 살 때 들었던 얘기를 전해주지. 동부의 뉴욕주는 남한보다도 넓고 비옥한 농토가 많아 양파재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네. 그런데 2차대전 후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잇는 대륙횡단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5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의 양파농업이 순식간에 망해버렸다네. 질 좋고 값싼 캘리포니아 양파가 사나흘 만에 뉴욕청과시장에 공급되었기 때문일세.”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어서 사촌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농사에 생계를 걸지 않은 사람은 농사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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