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 도법 스님
“다 함께 살기 위해 우리 목숨을 겁시다”
물질은 넘치는 데 만족하는 사람 없어 …
(이 대목을 발문으로) 인간을 도움을 받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 3년 하고도 3개월 동안 전국을 ‘생명평화탁발순례’하고 있는 도법(道法·전 실상사 주지·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 스님.
스님은 산에 계셨다. 스님은 생명평화순례단과 함께 충북 제천군 백운면 박달재 아래 평동리 마을 뒷산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원래 마을 주민들 공동소유였다는 구학산(983m) 소리개 계곡에는 수령 4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떡갈나무(가슴높이둘레 3.2m) 당목이 서 있다. 이날 산제는 이 떡갈나무에 10번 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서원문의 첫 구절은 성경을 인용한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100번을 절해야 하지만, 10번을 절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생명평화의 다짐을 담은 명상문(온숨)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명상문은 ‘100배 사죄한다’는 말처럼 인간의 삶을 반성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진리의 길을 어기고 뭇 생명의 뿌리인 자연의 위대함을 함부로 취급해온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내 생명의 어버이신 그대의 존귀함을 가볍게 취급해온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인간 중심의 이기심, 내 나라 중심의 이기심, 내 가족 중심의 이기심, 자기 중심의 이기심으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 스님은 전국 각지를 3년3개월동안 탁발순례를 하며 5만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고 다니셨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 사이에 소통이 안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고, 소통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탁발순례를 시작했다. 자유의 이름으로 패를 갈라 싸우고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게 세상이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엔 이라크가 없다. 미국의 ‘평화’에 이라크는 없다. 기독교인들의 평화엔 불교가 빠져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온통 ‘국가, 종교, 이념’의 이름으로 편을 갈라서 상대의 생명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패거리논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생명평화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접근 방식은 성서를 얘기하면 불교가 싫어하고, 보수를 얘기하면 진보진영이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얘기를 해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 벽을 넘어서려면 양쪽이 동의하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 부의 양극화와 이념대립은 날이 갈수록 격화된다. 대립하는 양쪽이 동의하는 그런 새로운 길이 있는가?
유일한 길은 사실에 기초해서 접근하는 거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익혔던 신념에 구애받지 말고, 사실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지금 여기 있는 내 생명’이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다. 이념과 종교를 떠나서 이런 식으로 내 생명의 문제를 가지고 삶을 얘기하면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논리적으로는 안 된다. 길은 있다.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인정하는 길은 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사람들이 관성화된 길을 가려고 하지 이 길을 가려고 않는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다음 단추부터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안 된다. 풀릴 수가 없는 문제다. 첫단추를 바로잡지 않으면 풀 수가 없다. 문제가 여기저기 옮겨다닐 뿐, 풀릴 수가 없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풀릴 것으로 착각한다.
- 지금까지 순례한 지역에서 좌우이념대립이 있었던 곳에서는 합동위령제을 지내고, 우리가 꼭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마을 숲 들판에서는 생명평화기원제를 지냈다. 스님이 펼치는 생명평화운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사람들의 문제를 생명평화를 화두로 풀려고 한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의 문제를 갖고 문제를 다루면 벽을 넘어서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대인들의 큰 문제는 사실확인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적 태도’, 동양학의 ‘실사구시’, 서양의 ‘과학적 태도’는 다 현실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첫 번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은 바로 자연법칙이다. 지구에는 자연질서가 있는데, 현대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살아간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대로 따져보자. 공기와 물, 식량과 같은 필수품은 모두 자연에서 나온다. 이런 지구 생태계를 떠나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나?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이걸 모르고 그냥 산다.
- 탁발순례를 하며 농민들을 많이 만났을텐데 한미FTA 체결 이후 우리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지.
도시에는 희망이 있나?(웃음) 희망은 만드는 것이다. 삶의 주체들이 만드는 게 희망이다. 농촌이나 도시나 주체들이 희망을 만들면 희망이 있고 안 만들면 없다.
현재 양상은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나? 지금 사람들이 꿈꾸는 희망이 있나? 경제가 절대적 조건인데,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 사회가 희망적일 수 있나?
50년 전만 해도 우리 소득이 100불, 200불이었다. 지금은 1만불, 2만불 시대인데 왜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위험해지나. 희망이 있으려면 문제가 줄어들고 단순해지고, 안전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아닌가.
물질은 넘치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편리해질수록 여유가 없어진다. 이런 문제가 고도화된 문명, 고도 경제성장으로 해결되는가. 모두 다 도저히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장관, 일반 소시민들까지.
-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떠난지 3년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얻은 것과 버린 것은 무엇인가?
실상사 주지 자리 버렸고, 부처되겠다는 꿈 버렸고, 훌륭한 수행자 되겠다는 꿈도 버렸다. 포기했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에 내가 갖고 있었던 신념이나 꿈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거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었던 삶이나 불교에 대한 신념들은 허구였다. 그 동안의 지식과 신념에 머무르지 말자는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은 섰다.
- 스님이 아닌 속인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라는 얘기인가.
종교계든 세속이든 길은 하나다. 다른 길은 다 허구다. ‘목 마르면 물 마신다’는 법칙은 절이나 시장이나 부처나 주정뱅이나 다 통하는 진실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보도 기독교 불교 자본 노동자도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을 근거로 세상을 보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얘기해보자. 지금 여기 내 생명의 문제를 갖고.
- 부처님 오신 날 맞아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부처님은 ‘중도(中道)의 길’을 걸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사물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첫 번째 나는 ‘자연에 의존해서’ 존재한다. 두 번째는 ‘사회가 있어서’ 존재한다. 세 번째는 ‘부모가 있어서’ 존재한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내가 내것이라고 기득권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온통 자연, 사회, 부모라고 하는 대상에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 의지와 노력 만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자기것 주장하고,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고 … 그러나 아무리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다. 이를 넘어서는 게 중도의 길이다.
- 이 지구상에서 사람은 문제적 존재인가, 희망인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도 사람이고 푸는 것도 사람이다. 동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연관되어 있고, 선택의 길은 함깨 사는 길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고 노력하면 된다.
나만 부자되겠다? 인간만 잘 살겠다? 사실을 갖고 삶을 얘기하면 결론은 하나다.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은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까지는 나만 살자고 목숨을 걸었으니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을 토대로 이야기하면 진보든 보수든 기독교든 불교든 벽이 없어진다. 나는 네 생명의 모체이기도 하고 먹이이기도 하다.
사람과 세상은 연못과 연꽃의 관계다. 식물이 없는 연못은 생명이 없다. 연못 없는 연꽃도 없다.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것이지, 무조건 잡아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육식동물이 이기적인 존재인가? 생존욕구와 이기심은 다르다. 동물은 생존욕구만 충족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기심이 문제지, 생존욕구가 문제는 아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인터뷰>
“다 함께 살기 위해 우리 목숨을 겁시다”
물질은 넘치는 데 만족하는 사람 없어 …
(이 대목을 발문으로) 인간을 도움을 받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 3년 하고도 3개월 동안 전국을 ‘생명평화탁발순례’하고 있는 도법(道法·전 실상사 주지·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 스님.
스님은 산에 계셨다. 스님은 생명평화순례단과 함께 충북 제천군 백운면 박달재 아래 평동리 마을 뒷산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원래 마을 주민들 공동소유였다는 구학산(983m) 소리개 계곡에는 수령 4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떡갈나무(가슴높이둘레 3.2m) 당목이 서 있다. 이날 산제는 이 떡갈나무에 10번 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서원문의 첫 구절은 성경을 인용한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100번을 절해야 하지만, 10번을 절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생명평화의 다짐을 담은 명상문(온숨)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명상문은 ‘100배 사죄한다’는 말처럼 인간의 삶을 반성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진리의 길을 어기고 뭇 생명의 뿌리인 자연의 위대함을 함부로 취급해온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내 생명의 어버이신 그대의 존귀함을 가볍게 취급해온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인간 중심의 이기심, 내 나라 중심의 이기심, 내 가족 중심의 이기심, 자기 중심의 이기심으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 스님은 전국 각지를 3년3개월동안 탁발순례를 하며 5만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고 다니셨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 사이에 소통이 안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고, 소통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탁발순례를 시작했다. 자유의 이름으로 패를 갈라 싸우고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게 세상이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엔 이라크가 없다. 미국의 ‘평화’에 이라크는 없다. 기독교인들의 평화엔 불교가 빠져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온통 ‘국가, 종교, 이념’의 이름으로 편을 갈라서 상대의 생명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패거리논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생명평화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접근 방식은 성서를 얘기하면 불교가 싫어하고, 보수를 얘기하면 진보진영이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얘기를 해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 벽을 넘어서려면 양쪽이 동의하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 부의 양극화와 이념대립은 날이 갈수록 격화된다. 대립하는 양쪽이 동의하는 그런 새로운 길이 있는가?
유일한 길은 사실에 기초해서 접근하는 거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익혔던 신념에 구애받지 말고, 사실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지금 여기 있는 내 생명’이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다. 이념과 종교를 떠나서 이런 식으로 내 생명의 문제를 가지고 삶을 얘기하면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논리적으로는 안 된다. 길은 있다.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인정하는 길은 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사람들이 관성화된 길을 가려고 하지 이 길을 가려고 않는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다음 단추부터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안 된다. 풀릴 수가 없는 문제다. 첫단추를 바로잡지 않으면 풀 수가 없다. 문제가 여기저기 옮겨다닐 뿐, 풀릴 수가 없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풀릴 것으로 착각한다.
- 지금까지 순례한 지역에서 좌우이념대립이 있었던 곳에서는 합동위령제을 지내고, 우리가 꼭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마을 숲 들판에서는 생명평화기원제를 지냈다. 스님이 펼치는 생명평화운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사람들의 문제를 생명평화를 화두로 풀려고 한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의 문제를 갖고 문제를 다루면 벽을 넘어서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대인들의 큰 문제는 사실확인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적 태도’, 동양학의 ‘실사구시’, 서양의 ‘과학적 태도’는 다 현실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첫 번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은 바로 자연법칙이다. 지구에는 자연질서가 있는데, 현대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살아간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대로 따져보자. 공기와 물, 식량과 같은 필수품은 모두 자연에서 나온다. 이런 지구 생태계를 떠나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나?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이걸 모르고 그냥 산다.
- 탁발순례를 하며 농민들을 많이 만났을텐데 한미FTA 체결 이후 우리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지.
도시에는 희망이 있나?(웃음) 희망은 만드는 것이다. 삶의 주체들이 만드는 게 희망이다. 농촌이나 도시나 주체들이 희망을 만들면 희망이 있고 안 만들면 없다.
현재 양상은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나? 지금 사람들이 꿈꾸는 희망이 있나? 경제가 절대적 조건인데,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 사회가 희망적일 수 있나?
50년 전만 해도 우리 소득이 100불, 200불이었다. 지금은 1만불, 2만불 시대인데 왜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위험해지나. 희망이 있으려면 문제가 줄어들고 단순해지고, 안전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아닌가.
물질은 넘치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편리해질수록 여유가 없어진다. 이런 문제가 고도화된 문명, 고도 경제성장으로 해결되는가. 모두 다 도저히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장관, 일반 소시민들까지.
-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떠난지 3년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얻은 것과 버린 것은 무엇인가?
실상사 주지 자리 버렸고, 부처되겠다는 꿈 버렸고, 훌륭한 수행자 되겠다는 꿈도 버렸다. 포기했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에 내가 갖고 있었던 신념이나 꿈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거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었던 삶이나 불교에 대한 신념들은 허구였다. 그 동안의 지식과 신념에 머무르지 말자는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은 섰다.
- 스님이 아닌 속인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라는 얘기인가.
종교계든 세속이든 길은 하나다. 다른 길은 다 허구다. ‘목 마르면 물 마신다’는 법칙은 절이나 시장이나 부처나 주정뱅이나 다 통하는 진실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보도 기독교 불교 자본 노동자도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을 근거로 세상을 보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얘기해보자. 지금 여기 내 생명의 문제를 갖고.
- 부처님 오신 날 맞아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부처님은 ‘중도(中道)의 길’을 걸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사물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첫 번째 나는 ‘자연에 의존해서’ 존재한다. 두 번째는 ‘사회가 있어서’ 존재한다. 세 번째는 ‘부모가 있어서’ 존재한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내가 내것이라고 기득권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온통 자연, 사회, 부모라고 하는 대상에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 의지와 노력 만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자기것 주장하고,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고 … 그러나 아무리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다. 이를 넘어서는 게 중도의 길이다.
- 이 지구상에서 사람은 문제적 존재인가, 희망인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도 사람이고 푸는 것도 사람이다. 동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연관되어 있고, 선택의 길은 함깨 사는 길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고 노력하면 된다.
나만 부자되겠다? 인간만 잘 살겠다? 사실을 갖고 삶을 얘기하면 결론은 하나다.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은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까지는 나만 살자고 목숨을 걸었으니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을 토대로 이야기하면 진보든 보수든 기독교든 불교든 벽이 없어진다. 나는 네 생명의 모체이기도 하고 먹이이기도 하다.
사람과 세상은 연못과 연꽃의 관계다. 식물이 없는 연못은 생명이 없다. 연못 없는 연꽃도 없다.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것이지, 무조건 잡아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육식동물이 이기적인 존재인가? 생존욕구와 이기심은 다르다. 동물은 생존욕구만 충족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기심이 문제지, 생존욕구가 문제는 아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인터뷰>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