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문화와 국가 경쟁력
황주홍 강진군수, 정치학 박사
몇 주 전 일본에서 나가사키시(市) 공무원들과 점심식사를 하였다. 독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국가의 품격’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다. 자기들도 다들 읽었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청준이나 공지영쯤 되는 소설가니까 일본인들이 무라카미의 대표작을 읽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었다. 저자가 수학자 출신이기 때문에 그처럼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었다는 서평까지 덧붙이는 걸로 봐서 ‘국가의 품격’도 이들은 독파한 것 같았다. 나아가서 다른 공무원은 나카무라 후쿠지의 ‘화산도(火山島)’라는 소설도 얘기했다. 제주도의 4·3사태를 다루는 장편소설이라면서 읽어보았느냐고 물어왔다(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일본 성인들의 독서력이 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요새 일본의 화제작이 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공무원이 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鈍感力)’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공무원은 저자의 이름과 책 제목을 한자로 써서 건네줬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의 최근 화제작이 뭐냐고 물을 때 대답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요미우리신문’을 집어 들었다. 책 광고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1면 하단에 책 광고가 실리고 있는 게 이채로웠다(우리나라 일간지 지면 구성과 비교해보시라!).
미국이나 일본인들이 연평균 7권 정도 읽을 때 한국인들은 1권 정도 읽는 것으로 나와 있다. UN 통계는 한국인들의 독서량이 세계 166위라 한다.
‘인구밀도’라는 용어가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게 좋은 건지 낮은 게 좋은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구밀도라는 말이 있다면 ‘지식밀도’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 사회 또는 한 국가의 지식과 문화의 수준을 지식밀도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은 인구밀도의 세계적 강국(?)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지식밀도에서의 위상은? 독서량과 지식량이 완벽한 상관관계는 아니겠지만, 독서수준 166위인 한국을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지식밀도 100위 안쪽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과 정보의 시대다. 좀 쉽게 얘기하면, 산업화시대는 몸으로 때우고 손으로 해결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생각으로 겨루고 머리로 해결하는 시대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이제 정보와 지식의 깊이와 넓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서량으로 일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21세기 국가 경쟁력 역시 일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건 아닐까?
우리 동시대 한국인들은 책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다. 세계 166위의 독서수준이라니 책에 대한 우리들의 적개심과 혐오감이 거의 극적(極的)이라는 느낌이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책을 무척 가까이 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혈통에 의해서 분간되었지만, 사실상의 양반(선비) 신분은 사서삼경을 비롯한 책을 얼마나 가까이 했느냐는 것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정조같은 임금은 “나는 서책을 읽으며 심신의 피로를 씻는다”는 기막히도록 멋진 지식인의 경지를 얘기한 바도 있다. 그런 조상들이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책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의 하나가 회식문화가 아닐런지. 회식문화는 조직적이고 타율적이어서 개인과 자발성이 불허되는 문화행태다. 일본에도 가벼운 수준과 짧은 시간의 회식문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처럼 장시간적이고 폭음적인 회식문화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퇴근해서 더 힘들게 마셔대는 회식자리를 거치고 나서 무슨 기력과 무슨 문화 마인드가 남아있다고 집에서 독서까지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회식은 화합을 위한 것일 텐데 한국만큼 화합이 안 되는 나라 또한 별로 없는 것 같다. 화합이 안 되니까 회식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허구한 날의 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화합이 여태 이처럼 미미한 수준이라면 폭탄주와 회식문화의 임상적 효능은 거의 없다고 단정지어도 할 말들 없을 것 같다.
회식문화가 화합과 단결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건 이 글의 본론이 아니다. 내 본론은 거의 매일같은 회식문화가 한국의 지식밀도를 치명적으로 저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회식문화와 국가 경쟁력간의 상관관계, 없다고 생각하시는 독자 여러분 손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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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홍 강진군수, 정치학 박사
몇 주 전 일본에서 나가사키시(市) 공무원들과 점심식사를 하였다. 독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국가의 품격’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다. 자기들도 다들 읽었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청준이나 공지영쯤 되는 소설가니까 일본인들이 무라카미의 대표작을 읽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었다. 저자가 수학자 출신이기 때문에 그처럼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었다는 서평까지 덧붙이는 걸로 봐서 ‘국가의 품격’도 이들은 독파한 것 같았다. 나아가서 다른 공무원은 나카무라 후쿠지의 ‘화산도(火山島)’라는 소설도 얘기했다. 제주도의 4·3사태를 다루는 장편소설이라면서 읽어보았느냐고 물어왔다(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일본 성인들의 독서력이 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요새 일본의 화제작이 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공무원이 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鈍感力)’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공무원은 저자의 이름과 책 제목을 한자로 써서 건네줬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의 최근 화제작이 뭐냐고 물을 때 대답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요미우리신문’을 집어 들었다. 책 광고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1면 하단에 책 광고가 실리고 있는 게 이채로웠다(우리나라 일간지 지면 구성과 비교해보시라!).
미국이나 일본인들이 연평균 7권 정도 읽을 때 한국인들은 1권 정도 읽는 것으로 나와 있다. UN 통계는 한국인들의 독서량이 세계 166위라 한다.
‘인구밀도’라는 용어가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게 좋은 건지 낮은 게 좋은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구밀도라는 말이 있다면 ‘지식밀도’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 사회 또는 한 국가의 지식과 문화의 수준을 지식밀도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은 인구밀도의 세계적 강국(?)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지식밀도에서의 위상은? 독서량과 지식량이 완벽한 상관관계는 아니겠지만, 독서수준 166위인 한국을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지식밀도 100위 안쪽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과 정보의 시대다. 좀 쉽게 얘기하면, 산업화시대는 몸으로 때우고 손으로 해결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생각으로 겨루고 머리로 해결하는 시대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이제 정보와 지식의 깊이와 넓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서량으로 일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21세기 국가 경쟁력 역시 일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건 아닐까?
우리 동시대 한국인들은 책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다. 세계 166위의 독서수준이라니 책에 대한 우리들의 적개심과 혐오감이 거의 극적(極的)이라는 느낌이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책을 무척 가까이 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혈통에 의해서 분간되었지만, 사실상의 양반(선비) 신분은 사서삼경을 비롯한 책을 얼마나 가까이 했느냐는 것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정조같은 임금은 “나는 서책을 읽으며 심신의 피로를 씻는다”는 기막히도록 멋진 지식인의 경지를 얘기한 바도 있다. 그런 조상들이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책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의 하나가 회식문화가 아닐런지. 회식문화는 조직적이고 타율적이어서 개인과 자발성이 불허되는 문화행태다. 일본에도 가벼운 수준과 짧은 시간의 회식문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처럼 장시간적이고 폭음적인 회식문화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퇴근해서 더 힘들게 마셔대는 회식자리를 거치고 나서 무슨 기력과 무슨 문화 마인드가 남아있다고 집에서 독서까지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회식은 화합을 위한 것일 텐데 한국만큼 화합이 안 되는 나라 또한 별로 없는 것 같다. 화합이 안 되니까 회식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허구한 날의 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화합이 여태 이처럼 미미한 수준이라면 폭탄주와 회식문화의 임상적 효능은 거의 없다고 단정지어도 할 말들 없을 것 같다.
회식문화가 화합과 단결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건 이 글의 본론이 아니다. 내 본론은 거의 매일같은 회식문화가 한국의 지식밀도를 치명적으로 저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회식문화와 국가 경쟁력간의 상관관계, 없다고 생각하시는 독자 여러분 손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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