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런 경찰청장 리더십
경찰청장 인책론이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경찰 내부에서 먼저 제기돼 외부로 번진 이택순 청장 인책론은 대통령과 행정자치부장관의 엄호를 계기로 진정돼 가는 국면이다. 서울경찰청장과 중요 간부들이 물러나거나 문책 당한 초상집 같은 분위기를, 본인이 책임지고 추스르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심을 사고 있는 사람이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놓고 총수 인책론을 떠들던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저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말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 문제로 임기가 보장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두둔과, 더 떠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동원한 박명재 행자부 장관의 감싸기가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 청장이 한화그룹 고문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국회답변이나, 경찰의 감찰보고를 근거로 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는 것이 옳겠다. 왜냐 하면 그것은 그 뒤 거짓말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지난 달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한화사건과 관련해 한화그룹 고문과 통화한 사실이 있느냐”는 의원질의에 대해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답변했다. 경찰청의 자체감찰 보고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4월 29일 이 청장과 통화한 사실이 있었다는 그의 말이 보도되자, 이 청장도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너는 나서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 끊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그 날은 김승연 한화 회장이 경찰에 출두한 날이었다. 그는 그 며칠 전에도 몇 차례 이 청장과의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청장 출신의 또 다른 한화 고문은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3월 15일 당시 서울청장 등 경찰간부들과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서울청 수사 간부들에게도 전화해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담당사건이 왜 그의 고교 후배가 서장인 남대문경찰서로 이첩됐는지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 한화의 다른 고문에게서 온 전화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알만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청장은 김승연 한화회장 사건 늑장수사와 봐주기 수사 연루의혹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의혹을 척결하지 못 하고 검찰에 이 사건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많은 부하들을 물러나게 하거나 피의자로 몰아버린 리더십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경찰 내부에서 전례 없던 총수인책론이 나온 직접 원인이 수사의뢰였다. 5월 25일 자체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자 경찰에는 벌집을 쑤신 듯 소용돌이가 일었다. “청장이 혼자 살려고 꼬리 자르기를 했다”느니,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게 되었다”느니, 하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민란 · 경치(警恥) · 경란(警亂) 같은 험한 말들도 횡행했다. 특히 수사권 독립을 외쳐온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반발이 거셌다.
현역 총경이 기자들 앞에서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로 번지자 청와대가 앞장서 진화에 나섰다. 인사와 징계엄포로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국회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 청장의 위증문제를 단단히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고, 대규모 수사진을 꾸린 검찰도 이 청장 소환조사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15만 경찰총수가 국회에서 거짓말 한 죄를 문초당하고, 대등한 수사주체라던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면 영이 설 수 있을까. 무슨 낯으로 후배와 부하들에게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겠는가. 검찰수사에서 더 험한 얘기가 나오면 어쩔 것인가.
이 사건은 전 · 현직 경찰총수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루된 전대미문의 의혹사건이다. 수사권 독립을 외쳐 온 소리에 국민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을 만큼 경찰의 자질향상이 인정받는 시기에 터진 구태여서 더욱 유감스럽다.
이 청장은 지금 광야에서 혼자 비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누구도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이 없다. 비에 젖은 옷차림으로 법과 질서 유지의 최 일선기관 지휘봉을 잡을 수는 없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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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 인책론이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경찰 내부에서 먼저 제기돼 외부로 번진 이택순 청장 인책론은 대통령과 행정자치부장관의 엄호를 계기로 진정돼 가는 국면이다. 서울경찰청장과 중요 간부들이 물러나거나 문책 당한 초상집 같은 분위기를, 본인이 책임지고 추스르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심을 사고 있는 사람이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놓고 총수 인책론을 떠들던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저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말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 문제로 임기가 보장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두둔과, 더 떠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동원한 박명재 행자부 장관의 감싸기가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 청장이 한화그룹 고문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국회답변이나, 경찰의 감찰보고를 근거로 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는 것이 옳겠다. 왜냐 하면 그것은 그 뒤 거짓말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지난 달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한화사건과 관련해 한화그룹 고문과 통화한 사실이 있느냐”는 의원질의에 대해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답변했다. 경찰청의 자체감찰 보고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4월 29일 이 청장과 통화한 사실이 있었다는 그의 말이 보도되자, 이 청장도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너는 나서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 끊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그 날은 김승연 한화 회장이 경찰에 출두한 날이었다. 그는 그 며칠 전에도 몇 차례 이 청장과의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청장 출신의 또 다른 한화 고문은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3월 15일 당시 서울청장 등 경찰간부들과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서울청 수사 간부들에게도 전화해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담당사건이 왜 그의 고교 후배가 서장인 남대문경찰서로 이첩됐는지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 한화의 다른 고문에게서 온 전화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알만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청장은 김승연 한화회장 사건 늑장수사와 봐주기 수사 연루의혹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의혹을 척결하지 못 하고 검찰에 이 사건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많은 부하들을 물러나게 하거나 피의자로 몰아버린 리더십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경찰 내부에서 전례 없던 총수인책론이 나온 직접 원인이 수사의뢰였다. 5월 25일 자체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자 경찰에는 벌집을 쑤신 듯 소용돌이가 일었다. “청장이 혼자 살려고 꼬리 자르기를 했다”느니,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게 되었다”느니, 하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민란 · 경치(警恥) · 경란(警亂) 같은 험한 말들도 횡행했다. 특히 수사권 독립을 외쳐온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반발이 거셌다.
현역 총경이 기자들 앞에서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로 번지자 청와대가 앞장서 진화에 나섰다. 인사와 징계엄포로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국회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 청장의 위증문제를 단단히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고, 대규모 수사진을 꾸린 검찰도 이 청장 소환조사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15만 경찰총수가 국회에서 거짓말 한 죄를 문초당하고, 대등한 수사주체라던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면 영이 설 수 있을까. 무슨 낯으로 후배와 부하들에게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겠는가. 검찰수사에서 더 험한 얘기가 나오면 어쩔 것인가.
이 사건은 전 · 현직 경찰총수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루된 전대미문의 의혹사건이다. 수사권 독립을 외쳐 온 소리에 국민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을 만큼 경찰의 자질향상이 인정받는 시기에 터진 구태여서 더욱 유감스럽다.
이 청장은 지금 광야에서 혼자 비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누구도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이 없다. 비에 젖은 옷차림으로 법과 질서 유지의 최 일선기관 지휘봉을 잡을 수는 없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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