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와 평화공존에 대한 갈망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반세기 분단의 역사 속에서 ‘민족화해’만큼 우리가 빈번히 써온 말도 많지 않다. 물
론 우리는 대결과 반목으로 일관한 긴 세월 동안 ‘소망’으로써 이 말을 사용해왔을 뿐, 기실
실천적 용어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6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로소 이 말은 사치품
목록에서 어엿한 생활용품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만나고, 경의선 철도 연결공사가 시작되고,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
지고, 쌍방의 국방장관이 악수를 하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보면서 남과 북이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상생(相生)의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민족화해라는 말을 꺼낸다고 해서 그것을 공허하다고 느낄 사람은 별로 없다.
정말 민족화해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 필자는 거꾸로 민족화해라는 말을 꺼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화해, 반(反)공존의 거센 역류에 부닥치면서 “우리는 민족
화해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마저 던지게 된다. 이미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에 식량 60만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해서 “우리도 어려운데
왜 퍼주나”라는 드센 비난이 일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민족화해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반문도 하게 된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심정으로 000
필자는 민족화해가 남북관계의 외형적인 진전만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민족화해는 남북이 상대방과 나눌 수 있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와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고 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이제 공존의 역사를 열어나가자고
약속한 마당에, 상대방이 배고픔을 호소해온다면 아무리 우리가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함께 나
누는 정(情)과 성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북한 주민들은 장기간의 식량난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굶주림의 일상화 속에 청소년
들의 체격과 지능은 남쪽의 청소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져 있다. 아마 20∼30년
후 통일이 되어 지금 남북의 청소년들이 장년이 되어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서로의 현격한 외양
차이를 보고 같은 민족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그때 우리 기성세대는 “왜 우리의
배고픔에 인색했느냐”고 묻는 북한의 그들에게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너희들 지도자를
믿지 못해서 도울 수 없었다”고 말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 민족문제를 푸는 데는 어느 일이
본질적이며, 어떤 것이 큰 일인지 가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
다. 어려울 때 콩 한 조각을 나누어 먹는 심정으로 북한동포를 끌어안자고 주장한다면 너무 국민
정서를 도외시한 생각일까?
민족화해를 위해 우리는 ‘나와 다른 북한’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통일시대는
적대적이기조차 한 서로 다른 제도와 사상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온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공동
체가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사는 시대를 의미한다. 나와 다른 것, 즉 ‘다름’과 공존하는 것이
통일시대이며, 자신과 다른 삶과 문화를 관용하고 수용하는 시대가 통일시대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화해의 시대 000
남북 간의 평화공존이란 바로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이 말도 공허하게만 들릴 것이다. 우리 사회조차도 서로 다른 사회세력, 혹
은 지역 간에 공존보다는 배제의 문화가 활개치는 판에 어떻게 남북 간에 공존의 문화 형성이
가능하겠는가?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공존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남북
관계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배제와 제압의 논리를 혁파하고 공존의 논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과 공존하며 ‘다름’과의 협력적 경쟁이 하나의 사회를 완성
시키며, ‘다름’의 존재가 항상 자신을 부패하지 않게 하며, 오히려 발전시키는 상대적 동력이
라는 점을 인식하는 의식의 형성과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발전이 가능하고 이성
적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도 생긴다고 본다. 우리가 ‘다름’을 인정할
때, 그 차이를 생각하게 되고, 또 그것을 줄이려는 노력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 나눔의 정과 공존의 문화가 확립되어 우리가 진정 민족화해의 시대를 개척해
나갈 내부역량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시대가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반세기 분단의 역사 속에서 ‘민족화해’만큼 우리가 빈번히 써온 말도 많지 않다. 물
론 우리는 대결과 반목으로 일관한 긴 세월 동안 ‘소망’으로써 이 말을 사용해왔을 뿐, 기실
실천적 용어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6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로소 이 말은 사치품
목록에서 어엿한 생활용품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만나고, 경의선 철도 연결공사가 시작되고,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
지고, 쌍방의 국방장관이 악수를 하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보면서 남과 북이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상생(相生)의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민족화해라는 말을 꺼낸다고 해서 그것을 공허하다고 느낄 사람은 별로 없다.
정말 민족화해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 필자는 거꾸로 민족화해라는 말을 꺼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화해, 반(反)공존의 거센 역류에 부닥치면서 “우리는 민족
화해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마저 던지게 된다. 이미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에 식량 60만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해서 “우리도 어려운데
왜 퍼주나”라는 드센 비난이 일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민족화해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반문도 하게 된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심정으로 000
필자는 민족화해가 남북관계의 외형적인 진전만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민족화해는 남북이 상대방과 나눌 수 있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와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고 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이제 공존의 역사를 열어나가자고
약속한 마당에, 상대방이 배고픔을 호소해온다면 아무리 우리가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함께 나
누는 정(情)과 성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북한 주민들은 장기간의 식량난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굶주림의 일상화 속에 청소년
들의 체격과 지능은 남쪽의 청소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져 있다. 아마 20∼30년
후 통일이 되어 지금 남북의 청소년들이 장년이 되어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서로의 현격한 외양
차이를 보고 같은 민족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그때 우리 기성세대는 “왜 우리의
배고픔에 인색했느냐”고 묻는 북한의 그들에게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너희들 지도자를
믿지 못해서 도울 수 없었다”고 말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 민족문제를 푸는 데는 어느 일이
본질적이며, 어떤 것이 큰 일인지 가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
다. 어려울 때 콩 한 조각을 나누어 먹는 심정으로 북한동포를 끌어안자고 주장한다면 너무 국민
정서를 도외시한 생각일까?
민족화해를 위해 우리는 ‘나와 다른 북한’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통일시대는
적대적이기조차 한 서로 다른 제도와 사상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온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공동
체가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사는 시대를 의미한다. 나와 다른 것, 즉 ‘다름’과 공존하는 것이
통일시대이며, 자신과 다른 삶과 문화를 관용하고 수용하는 시대가 통일시대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화해의 시대 000
남북 간의 평화공존이란 바로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이 말도 공허하게만 들릴 것이다. 우리 사회조차도 서로 다른 사회세력, 혹
은 지역 간에 공존보다는 배제의 문화가 활개치는 판에 어떻게 남북 간에 공존의 문화 형성이
가능하겠는가?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공존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남북
관계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배제와 제압의 논리를 혁파하고 공존의 논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과 공존하며 ‘다름’과의 협력적 경쟁이 하나의 사회를 완성
시키며, ‘다름’의 존재가 항상 자신을 부패하지 않게 하며, 오히려 발전시키는 상대적 동력이
라는 점을 인식하는 의식의 형성과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발전이 가능하고 이성
적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도 생긴다고 본다. 우리가 ‘다름’을 인정할
때, 그 차이를 생각하게 되고, 또 그것을 줄이려는 노력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 나눔의 정과 공존의 문화가 확립되어 우리가 진정 민족화해의 시대를 개척해
나갈 내부역량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시대가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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