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어머니, 남대문시장 상인들

지역내일 2007-06-07
6월항쟁 인물 야사.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아름다웠습니다 1 - 시위대의 어머니, 남대문시장 상인들

“학생들이 막 도망 오면 숨겨줬지. 그 땐 다 그랬어.”


87년 6월 서울역 신세계백화점 명동 일대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쫓겨 흩어진 시위대를 숨겨주던 남대문시장 상인들에 대한 취재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우선 20년 전 이곳 남대문시장에서 장사 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남대문시장(주) 관계자는 “1만여 곳의 점포 중 당시부터 영업하고 있는 곳은 20% 정도”라고 말했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것인가. 취재에 나서기 전엔 20년이 짧지 않은 세월임을 깨닫지 못했다.
어렵게 만난 고참 상인들이 반가웠다. 그러나 그들은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87년 6월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취재하는 기자를 귀찮아했다. 액세서리 가게를 하는 엄 모(여·60)씨는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잘 돼야 여유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87년 당시엔 호황이었다. 다들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장사해서 관리비다 뭐다 줘야 하는데, 수입이 줄어드니 마음이 안 좋다”고 한다. 지역에 대형 할인점이 속속 들어선 지난 20년의 유통질서 변화는 이들 삶에 구체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남대문시장에 뚫린 8군데 골목을 드나들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았을 즈음, 큰 길에서 꺾어진 골목에서 30여 미터 들어간 곳에 자리한 오래된 떡집에서 강성애(여·57)씨를 만났다.

“그 해 여름에? 데모 많이 했지. 학생들이 막 도망 오면 많이 숨겨줬어. 그땐 다 그랬어.”
20년 전 서른 일곱 살이던 강씨는 고종사촌 언니가 경영하는 떡집에서 일을 하다 경찰에 쫓겨 온 학생들을 2층 식당으로 3층 가게로 피난시켰다.
“학생들 올려 보내고 셔터를 바로 내렸어. 경찰이 쫓아와 셔터를 올리려고 하면 ‘최루탄 때문에 괴로워 죽겠는데 어디서 셔터를 올리느냐’고 막 야단 쳐서 보냈지.”
경찰이 무섭지도 않았다 한다.
강씨는 지금은 파출소장이 된 친동생을 포함 친척 중 네 명이 경찰이었다. 당시 경찰이던 고종사촌 오빠에게 강씨는 왜 학생들을 왜 괴롭히냐고 물었는데, 오빠는 “나라에서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좁은 골목 안에서 학생들을 숨겨주었지만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옆 가게 누구도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바깥 동태를 서로 알려주며 충실한 정보원 역할을 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잃었고, 학생 시위대는 이들의 마음을 얻었다. 시장 골목 안에서 고립된 것은 정권이었다.
당시 대학 4학년이었던 김정수(44)씨는 “주황색 바가지에 보리차를 그득 담아 얼음을 동동 띄워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냉차 아주머니, 때론 야쿠르트를 비닐봉지에 5개 6개씩 담아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던 아저씨, 팔던 손수건을 학생들의 손에 쥐어 주며 마스크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던 아주머니 등등 좁은 시장판에서 나중에는 도망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군이 많아졌다”며 “6월 18일 이후엔 남대문에서 잡힐 걱정은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억했다.
“왜 숨겨 주었냐고? 학생들이 잡히면 다 죽는다고 하더라.”
강씨는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시위대는 “학살정권 고문정권 전두환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도 외쳤다. 박종철군이 경찰 고문으로 사망했고, 6월에는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던 때였다.

짧았던 여름은 가고, 20년이 흘렀다. 투표할 때마다 ‘당첨자를 맞추지 못하던’ 강씨는 97년과 2002년 연이어 자신이 찍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았다. 그러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김대중씨는 서민을 위해 잘 할 거라고 생각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딸 아이들이 찍으라고 해서 투표했는데, 둘 다 실망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생활이다. 강씨는 고종사촌 언니가 하던 떡가게를 물려받아 경영을 하고 있다. 시위대를 숨겨주던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 아이들을 모두 대학 졸업시켰고, 결혼도 시켰다.
IMF는 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그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강씨는 “97년을 정점으로 장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씨나 남대문시장에서 가게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적다. 문제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임노동자들이다.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는 것 같다”는 게 강씨의 느낌이다. 양극화는 강씨와 이웃 가게에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구체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세를 얻어 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경영하는 가게를 가진 상인이 “갈수록 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20년 전에 비하면 말하는 자유는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살아가는 자유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남대문시장(주) 관계자는 “상가 관리비를 못 내는 가게가 많지는 않지만 장사가 잘 안되니까 쉽게 내지 못 하는 경향은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점포 종업원을 하다 돈을 벌어 다른 곳에 가게를 차리거나, 남대문시장에서 돈을 벌어 다른 곳으로 확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가만히 있어도 손님이 찾아오는 이곳과 다른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어려움도 많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게 앞에 줄을 지어 한국의 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달음에 다가가 흥정을 한다. 상가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게 흥정이나 셈 하는 방법을 적은 일본어 중국어 회화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87년 여름 민주주의를 품었던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그날도 오늘도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고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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