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일군 사람들 ① 시위대의 어머니, 남대문시장 상인

시장 골목에서 고립된 것은 ‘정권’

경찰로부터 시위대 보호 … 냉차·요구르트·손수건 내주며 격려

지역내일 2007-06-11
“그 해 여름에? 데모 많이 했지. 학생들이 막 도망 오면 많이 숨겨줬어. 그땐 다 그랬어.”
20년 전 서른일곱 살이던 강성애씨는 고종사촌 언니가 경영하는 떡집에서 일을 하다 경찰에 쫓겨 온 시위대들을 2층 식당으로 3층 가게로 피난시켰다.
강씨가 일하는 떡가게는 남대문시장에 나 있는 8개 골목 중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급하게 골목으로 숨어든 시위대들이 우선 찾아들만한 곳이다.
“학생들 올려 보내고 셔터를 바로 내렸어. 경찰이 쫓아와 셔터를 올리려고 하면 ‘최루탄 때문에 괴로워 죽겠는데 어디서 셔터를 올리느냐’고 막 야단 쳐서 보냈지.”
경찰이 무섭지도 않았다 한다.
강씨는 지금은 파출소장이 된 친동생을 포함 친척 중 네 명이 경찰이었다. 당시 경찰이던 고종사촌 오빠는 “나라에서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도 한마음이었던 셈이다.

그해 시장 어머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강씨처럼 시위대들을 숨겨줬다. 그들은 서로서로 바깥 동태를 알려주며 충실한 정보원 역할을 했다. 전두환 정권은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잃었고, 시위대는 이들의 마음을 얻었다. 시장 골목 안에서 고립된 것은 정권이었다.
당시 대학 4학년이었던 김정수(44)씨는 “주황색 바가지에 보리차를 그득 담아 얼음을 동동 띄워 시위대에게 나눠주는 냉차 아주머니, 때론 야쿠르트를 비닐봉지에 5개 6개씩 담아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던 아저씨, 팔던 손수건을 학생들의 손에 쥐어 주며 마스크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던 아주머니 등등 나중에는 좁은 시장판에서 도망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군이 많아졌다”며 “6월 18일 이후엔 남대문에서 잡힐 걱정은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억했다.
“왜 숨겨 주었냐고? 잡히면 다 죽는다고 하더라.”
강씨는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시위대는 “학살정권 고문정권 전두환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도 외쳤다. 박종철군이 경찰 고문으로 사망했고, 6월 시위 도중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던 때였다.

짧았던 여름은 가고, 20년이 흘렀다. 투표할 때마다 ‘당첨자를 맞추지 못하던’ 강씨는 97년과 2002년 연이어 자신이 찍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았다. 그러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김대중씨는 서민을 위해 잘 할 거라고 생각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딸 아이들이 찍으라고 해서 투표했는데, 둘 다 실망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생활이다. 강씨는 고종사촌 언니가 하던 떡가게를 물려받아 경영을 하고 있다. 시위대를 숨겨주던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 아이들을 모두 대학 졸업시켰고, 결혼도 시켰다.
IMF는 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그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강씨는 “97년을 정점으로 장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씨나 남대문시장에서 가게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문제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임노동자들이다.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는 것 같다”는 게 강씨의 느낌이다. 양극화는 강씨와 이웃 가게에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구체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물론 자신의 가게를 경영하는 상인들도 “갈수록 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20년 전에 비하면 말하는 자유는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살아가는 자유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남대문시장(주) 관계자는 “장사가 잘 안되니까 상가관리비를 쉽게 내지 못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강씨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게 앞으로 다가오자 한 달음에 다가가 흥정을 한다. 상가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게 흥정이나 셈 하는 방법을 적은 일본어 중국어 회화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87년 여름 민주주의를 품었던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그날도 오늘도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고 있다.

▶ 관련기사 3, 13면
▶ 특별취재팀 = 정연근 백만호 윤여운 김은광 원종태 방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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