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경 칼럼>6월 항쟁 그 후 20년

지역내일 2007-06-13
6월 항쟁 그 후 20년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그저께(6월 11일)부터 내일신문은 ‘6월 항쟁 그 후 20년’이란 제목의 연속 기획물을 싣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취재 대상을 ‘시위대의 어머니, 남대문 시장’으로 잡은 것은 흥미 있는 착상인데, 편집진의 관심이 국민 저변을 향하고 있음을 대뜸 읽을 수 있다. 6월 항쟁을 조직적으로 이끈 운동가들의 미공개 회고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실제 항쟁의 힘을 이루었던 보통 시민들의 기억이다. 하지만 역사 기록물들은 시대의 큰 변화를 서술하는데 대부분 이름을 드날린 사람들의 말과 글을 중심으로 하는 까닭에 후세의 평가가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이 따른다. 우리의 6월 항쟁은 고금 만방을 통하여 드물게 보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서 제도의 민주화 진척이라는 구체적 성과를 끌어낸 특기할 만한 역사적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군사 독재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일어섰던 무명 시민들의 그 때와 지금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매우 값진 노력이다. 현재 20세를 전후한 청소년의 60% 이상이 6월 항쟁의 의미는커녕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해직 언론인의 6월항쟁 참여
1987년 1월부터 6·29 선언을 도출하기까지 반년동안은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던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재야 각계 민주화 운동세력이 군사독재의 폭압에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한 시기다. 박정희의 3선 개헌-유신쿠데타-긴급조치, 그리고 1980년 5월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경험하면서 군사정권들의 인권탄압, 사회 정의를 외면한 경제정책, 나라 안 구석구석에 만연된 부패, 그리고 냉전에 편승한 극단적 남북 대결주의가 주권 재민의 기본원리에서 어긋난다는 사실이 국민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유린당하는 정도는 당시의 우리나라 공업생산수준을 감안하여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이른바 ‘자유진영’에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줄 안다. 매스미디어는 정보기관이 내리는 지침에 따라 보도와 논평을 일삼았는데 전국 네트워크의 국영방송은 저녁 9시 뉴스 시간에 거의 예외 없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판에 박은 뉴스를 공급했던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언론자유를 짓밟는 군사정권의 폭압이 군사정권이 강제로 추방한 해직 언론인들의 6월항쟁에 대한 적극적 참여로 귀결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를테면 박종철을 실제 고문 치사한 경관의 존재를 옥중에서 밖으로 알린 이부영(75년 해직, 동아투위 멤버), ‘보도지침’의 내용을 민언협 지하 기관지 말을 통해 폭로한 죄 아닌 죄로 투옥되었던 김태홍(80년 해직 기자)과 신홍범(75년 해직, 조선투위 맴버), 그리고 민언협 초대 사무국장과 6월 항쟁기간 동안 민통련 사무처장을 맡아 고군분투했던 성유보(75년 해직, 동아투위 멤버)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20년 전 6월 그 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두 글자씩 떼어 구호로 주고받아 외쳤던 길거리의 수많은 학생, 노동자와 그 뒤를 따르던 시민들은 우리 겨레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적 일체감을 체현했던 것이다. 내일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남대문 시장의 어머니들이 전투 경찰에 좇기는 시위청년들에게 피신할 장소를 만들어 주고 시원한 음료수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글자 그대로 자발성의 극치다. 자발성이란 원래 구체적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대문시장 어머니들의 오늘날 현실이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하는 일이다.
최초로 대통령이 임석하여 기념사를 낭독한 6월 항쟁 20주년은 공교롭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6월 항쟁의 가치를 음양으로 깎아내리는 풍조가 일고 있다. 이것은 거대 인쇄매체들이 20년 전 그 시절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려는 자의식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어찌되었건 간에 밑도 끝도 없이 선보인 ‘잃어버린 10년’이란 캐치프레이즈가 그중의 하나인데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이 낮아져 결과적으로 국민 저변이 더 고생을 한다는 뜻이다.

세계경제 지구화, 선진화로 착각
잃어버린 10년으로 지목된 1998~ 2007년의 성장률이 그전 10년보다 낮은 것은 통계적으로 물론 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정책 실패라기보다는 1997년 IMF 사태의 후유증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던 결과다. 물론 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저변의 생계안정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던데 대해서는 항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세계경제의 지구화가 본격화할 때 그것을 한국경제의 선진화로 잘못 인식한 이전 정권들의 착오를 잊어서는 아니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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