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이 본 세상이야기]

지역내일 2007-06-21
한국의 외교는 강대국 상대로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 190여개 나라에서 펼쳐진 숱한 외교성과가 쌓여 우리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지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은 우리 외교관들이 누비고 다닌 발품의 결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어려운 근무환경을 이기면서 뛰는 외교관들이 있다. 외교관의 눈으로 보는 세계의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전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정치불안보다는 천연자원에 주목
DR콩고

콩고라는 나라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이고, 다른 하나는 콩고공화국이이다.
후자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전자는 벨기에 식민지로 전에 자이르로 불리던 나라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국가는 DR콩고이다.
85년 이상의 외세 지배를 받은 DR콩고는 1960년 독립했으나 그 후 지금까지 내전, 인접국가의 전쟁개입, 폭정과 경제정책의 실패 등으로 빈곤과 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직도 동부지역에는 무장단체들의 준동으로 피와 갈등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DR콩고는 2006년을 기점으로 역사의 전환점에 서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유엔과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DR콩고는 2006년 역사상 처음으로 직선에 의한 대통령 선출과 의회를 구성해 국민주권에 기반한 통치체제를 갖추고 신생 민주국가로서 풍부한 자원과 종족의 다양성을 국가발전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6000만의 인구, 풍부한 자원 및 거대한 국토(한반도의 11배)를 가진 이 나라가 내외의 도전을 극복하고 국민들을 빈곤에서 탈피시킬 수는 없을까.
이와 관련, 이 나라의 정책결정자들은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를 함께 이룩한 한국의 개발모델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카빌라(Kabila) 대통령은 2005년 3월 방한 이후 국가재건을 위해 한국의 개발경험을 모델로 삼고싶다고 했다. 콩고정부도 올초 ‘국가재건 사업에 한국이 참여하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① DR콩고는 석유, 광산, 원목 개발권을 양도하고 한국 측은 이에 상응하는 주요 인프라 건설(도로, 철도, 항구, 상하수도, 전기 공급 사업 등).
② 한국이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이용하여 한국기업이 DR콩고의 주요 인프라 건설.
이런 제안은 우리의 원자재 및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필요성과 DR콩고의 풍부한 자원을 연계하는 단순한 제안이지만 양국 간에 파생될 호혜적인 경제효과는 클 것으로 판단된다.DR콩고의 인프라 건설수요로 보자면, 한반도 11배 크기의 국토에 동서 고속도로 하나만 건설한다고 해도 매우 큰 규모의 공사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도 인프라시설이 미비했던 나라의 전후 ‘국가재건’ 사업을 연상해보면 그 규모가 다소 짐작되지 않을까싶다.
한국을 찾았던 한 인사는 “자원은 유한하나 창의성은 무한하다(Resources Limited, Creativity Unlimited)”는 포항제철의 입간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DR콩고의 경우는 반대라면서.
무한한 자원과 국토재건사업을 연계해 한국인의 무한한 창의력으로 이 나라를 아프리카 정치·경제 중심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아직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 필요하지만 지난해 4억6000만 달러를 부담, 신생민주정권을 출범시킨 국제사회의 지지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주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김종석 대사대리

콩고민주공화국은
다이아몬드, 원유, 코발트, 금을 주요수출품으로 할 만큼 자원부국이다. 주요자원으로 구리, 코발트, 콜탄, 금, 망간, 우라늄 등 광물자원과 1억2000만헥타르에 이르는 산림자원, 석유, 콩고강의 수력발전자원을 예로 들 수 있다. 광물자원은 주로 동부 국경지대와 한반도 면적의 2배 이상인 카탕가(Katanga)주에 많이 매장돼 있으며 특히 카탕가주는 ‘구리벨트’의 일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력발전은 콩고강에 이미 건설된 INGA Ⅰ~Ⅱ댐 발전소와 계획중인 INGA Ⅲ, Grang Inga댐 건설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될 경우 생산될 전기량은 5200MW이상으로 전체 아프리카 전기수요를 담당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다.
한국과는 1963년 4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교민은 약 80명이 체류하고 있다. 북한과는 1972년 수교했다.

‘도이머이정책’ 20년과 호치민시
베트남

1975년 4월 30일, 30년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지도부는 남북간의 정치통합과 경제통합을 동시에 추진했다.
북베트남에서 1950년대부터 시행해 오던 중앙통제정책을 남베트남 지역에 그대로 이식한 것. 그러나 남부 베트남의 사회 ·경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급하게 추진한 경제통합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성장률 16~18%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한 제2차 5개년계획(1976~1980)은 연평균 0.6% 성장이라는 참담한 실적을 기록했다.
1981년에 시작한 제3차 5개년계획(1981~ 1985)은 제2차 계획보다는 나았으나 비능률과 관료부패, 부진한 소비재의 생산과 유통, 암시장과 불법거래, 만성적인 식량부족, 서방세계의 대베트남 금수조치 등으로 베트남 경제는 여전히 숨통을 트지 못했다. 1980년 25%였던 인플레는 1985년 92%로 뛰었고 가격통제로 인플레를 잡으려던 정책이 실패한 1986년에는 인플레가 487%까지 치솟았다.
이에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경제발전의 전략에 있어서 지난 30년 동안 신봉해 오던 스탈린-모택동주의적 이정표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한다는 중대결정을 내렸다.
베트남 공산당의 제6차 전당대회에서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전략이 완전히 실패하였음을 인정하고 다부문 경제체제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시장경제요소를 과감히 도입하는 생존전략으로서 ‘도이머이(개혁·개방, Doi Moi)’라는 개혁정책을 채택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지난 20년간 ‘도이머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도이머이’를 도입한지 20년만인 2006년 베트남은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확정하고 미국으로부터 항구적정상무역관계(PNTR)의 지위를 획득햇다.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난 뒤 국부(國父)인 호치민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76년 7월 2일자로 사이공에서 이름이 바뀐 호치민시. 호치민은 베트남 최대도시이자 경제수도로 고도성장을 견인하고 있으며 20년전 ‘도이머이’ 정책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의 제6차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도이머이’ 정책을 뒷받침한 것도 응우옌 반 린 공산당서기장 등 호치민시 출신인사들이었다.
각종 제도 역시 호치민시에서 먼저 실험적으로 시행된 후 베트남 전체로 확대됐다. 호치민에 있던 ‘REE Corp’가 1993년 12월 주식회사로 전환해 국영기업 민영화의 효시가 됐고 2000년 7월 증권거래소가 처음 호치민에서 문을 열었다. 1991년 9월에는 ‘떤 투언’ 수출공단이 베트남 최초로 설치됐고 1993년 5월에는 호치민시 남부지역에 ‘푸 미 흥’이란 신도시 건설이 시작되었다.
호치민은 지난 20년간 연평균 10.2%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도이머이’ 정책의 성공을 이끌어왔다. 오늘날 호치민시는 베트남 경제에서 GDP의 21%, 국가예산의 30%, 공업생산의 29%, 무역의 25%를 각각 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베트남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도이머이’ 정책을 선도하는 블루칩이 될 것이다.
주 호치민 총영사관 민영우 총영사

베트남은
인구 8200만명에 국토면적 333만341㎢(한반도 1.5배) 규모의 국가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전국민의 80%가 불교를 믿고 결혼·장례 등 전통풍속에서 유교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남아국가지만 동북아, 특히 한국과 믿기 어려울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와는 1992년 국교를 수립했으며 1993년 호치민시에 총영사관이 설치됐다. 호치민에 약 3만명과 하노이에 4000명의 교민이 살고 있으며 연간 46만명이 양국을 오가고 있다.
공산당 1당제로 운영되지만 2006년 4월 제10차 공산당 당대회를 계기로 최고위층을 개편하고 당 쇄신에 나서는 등 2006~2010년 국가경제사회발전계획을 세웠다. 농득만 당서기장을 제외한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을 교체했으며 개혁파가 정치국원으로 권력 전면에 나섬으로써 개방·개혁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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