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네오콘의 등장 징후인가?/ 우연이라 보기에는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경제학
법제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따라 정비할 필요가 있는 법령의 개수가 법률 27건, 대통령령 25건, 부령 18건 등 총 70건으로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향후 조사가 더 진행됨에 따라 이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가 현재 법률안들을 제대로 심의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국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조차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미 FTA와 직접 관련된 10개 상임위 중 FTA 청문회를 개최했거나 일정을 잡은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와 문화관광위 단 2곳뿐이다. 그나마 지난 18일의 문화관광위 청문회는 무산되었다. 놀랍게도 FTA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 산업자원위는 아예 청문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협정문 서명이 코앞인데 이 형편이다.
만약 국회가 FTA 협정문을 검증할 수 없다면, 협정 비준 이후 후속 법률에 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시민단체들과 적지 않은 학자들이 우려해 온 대로 상황이 이렇게 진행 된다면 향후 관련 법률안은 국민의 눈과 귀를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자연스럽게 정부가 제출하는 안에 따라 만들어 질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FTA 체결과정을 민주적 공론화 과정이 무시된 ‘통상 독재’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이제 곧 ‘법률제정 독재’마저 목격하게 될 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지는 법률안들은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여러 차례 그 방향과 의도를 “경제제도 전반을 영미식 기준으로 전면 개편한다”는 것으로 공공연히 밝혀 왔다. 전면개편이라 함은 한미 FTA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제도를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관료들이 사용하고 있는 영미식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좀 당황스럽다. 지금 도마에 오르내리는 것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수도권 집중 억제장치, 법인세인하, 그리고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고 있는 금융산업구조 개선법(금산법)들이다. 재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내용들을 전면 수용하는 것을 영미식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FTA 체결과정과 절차에 불만을 제기해 온 많은 국민들은 미국의 절차를 부러워하곤 했다. 예를 들어 협정의 검증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민간자문위원회의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의회가 비준 동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아예 법제화하고 있는 미국식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작년에 발의된 ‘조약체결절차법안’(통상절차법)이 정부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으면서도, FTA를 실무적으로 추진하고 그 후속 법률을 만들어 가는 정부는 ‘나대로’ 영미식을 밀어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갖고 있는 문제나 개선방안은 당연히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FTA를 핑계로, 무력화된 국회의 심의절차를 기화로, 전 국민의 눈을 주식시장으로 쏠리게 한 가운데 이런 식으로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법률들이기에 더욱 지켜야할 모든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
6월 중순경 10여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간담회를 가졌는데, 거기서 한국 관료와 재계, 그리고 사회 내에 특정 이념과 계획을 가지고 국민과 국회 나아가 민주주의 절차마저 무시한 채 한국경제의 개조작업을 추진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아직 심증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부쉬 행정부를 파탄으로 몰고 갔고 미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미국 네오콘의 한국판 형성을 우려할 일이고 또 그 폐해가 워낙 클 것이기에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DJ 정부 말기에 재경부 안으로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정부의 초기 정권인수위에서 희석화되었던 ‘금융허브론’의 세부 기획들이 소리 소문없이 다시 부활하고, 외환위기 이후 조성된 사회적 불안감을 배경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과 속도로 FTA가 추진되었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별다른 정치적 공론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관료의 입을 통해 영미식 제도로의 전면개편을 선언하는 모든 과정들을 그냥 따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에는 상황이 절묘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전반기까지의 행적을 보건대, 대통령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구상이라고는 더욱 믿기 어렵다. 지난 달 초던가 급등한 주가를 두고 금융감독당국 관계자가 “우리경제가 새 시대에 들어섰으니 주식을 사도 괜찮다”라고 국민에게 권유하는데 이르러서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가슴이 졸인다. 정책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주식 인플레이션이 군말없이 따르는 국민에게 새 시대의 선물이 될지, FTA의 비준과 법제도의 전면 개편을 앞둔 눈가리개가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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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경제학
법제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따라 정비할 필요가 있는 법령의 개수가 법률 27건, 대통령령 25건, 부령 18건 등 총 70건으로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향후 조사가 더 진행됨에 따라 이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가 현재 법률안들을 제대로 심의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국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조차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미 FTA와 직접 관련된 10개 상임위 중 FTA 청문회를 개최했거나 일정을 잡은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와 문화관광위 단 2곳뿐이다. 그나마 지난 18일의 문화관광위 청문회는 무산되었다. 놀랍게도 FTA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 산업자원위는 아예 청문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협정문 서명이 코앞인데 이 형편이다.
만약 국회가 FTA 협정문을 검증할 수 없다면, 협정 비준 이후 후속 법률에 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시민단체들과 적지 않은 학자들이 우려해 온 대로 상황이 이렇게 진행 된다면 향후 관련 법률안은 국민의 눈과 귀를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자연스럽게 정부가 제출하는 안에 따라 만들어 질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FTA 체결과정을 민주적 공론화 과정이 무시된 ‘통상 독재’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이제 곧 ‘법률제정 독재’마저 목격하게 될 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지는 법률안들은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여러 차례 그 방향과 의도를 “경제제도 전반을 영미식 기준으로 전면 개편한다”는 것으로 공공연히 밝혀 왔다. 전면개편이라 함은 한미 FTA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제도를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관료들이 사용하고 있는 영미식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좀 당황스럽다. 지금 도마에 오르내리는 것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수도권 집중 억제장치, 법인세인하, 그리고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고 있는 금융산업구조 개선법(금산법)들이다. 재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내용들을 전면 수용하는 것을 영미식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FTA 체결과정과 절차에 불만을 제기해 온 많은 국민들은 미국의 절차를 부러워하곤 했다. 예를 들어 협정의 검증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민간자문위원회의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의회가 비준 동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아예 법제화하고 있는 미국식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작년에 발의된 ‘조약체결절차법안’(통상절차법)이 정부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으면서도, FTA를 실무적으로 추진하고 그 후속 법률을 만들어 가는 정부는 ‘나대로’ 영미식을 밀어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갖고 있는 문제나 개선방안은 당연히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FTA를 핑계로, 무력화된 국회의 심의절차를 기화로, 전 국민의 눈을 주식시장으로 쏠리게 한 가운데 이런 식으로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법률들이기에 더욱 지켜야할 모든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
6월 중순경 10여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간담회를 가졌는데, 거기서 한국 관료와 재계, 그리고 사회 내에 특정 이념과 계획을 가지고 국민과 국회 나아가 민주주의 절차마저 무시한 채 한국경제의 개조작업을 추진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아직 심증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부쉬 행정부를 파탄으로 몰고 갔고 미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미국 네오콘의 한국판 형성을 우려할 일이고 또 그 폐해가 워낙 클 것이기에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DJ 정부 말기에 재경부 안으로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정부의 초기 정권인수위에서 희석화되었던 ‘금융허브론’의 세부 기획들이 소리 소문없이 다시 부활하고, 외환위기 이후 조성된 사회적 불안감을 배경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과 속도로 FTA가 추진되었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별다른 정치적 공론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관료의 입을 통해 영미식 제도로의 전면개편을 선언하는 모든 과정들을 그냥 따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에는 상황이 절묘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전반기까지의 행적을 보건대, 대통령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구상이라고는 더욱 믿기 어렵다. 지난 달 초던가 급등한 주가를 두고 금융감독당국 관계자가 “우리경제가 새 시대에 들어섰으니 주식을 사도 괜찮다”라고 국민에게 권유하는데 이르러서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가슴이 졸인다. 정책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주식 인플레이션이 군말없이 따르는 국민에게 새 시대의 선물이 될지, FTA의 비준과 법제도의 전면 개편을 앞둔 눈가리개가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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