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고 권정생 선생을 기리며’(김용락 2007.06.19)

지역내일 2007-06-19
‘고 권정생 선생을 기리며’
김용락 시인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작고한 지 그저께 17일로 꼭 한 달이 지났다. 선생을 가까이서 모셨거나 평소 선생을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그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죽음을 모르거나, 지상에서의 그의 존재 조차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선생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한참 후에도 나는 왜 선생과 전화 통화가 안 되느냐고 묻는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 이 두 사람 모두 출판업에 관련한 사람으로서 원고 문제 때문에 선생께 전화를 하다가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매스컴에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보도했는데도 작가와 출판인이라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사람들조차도 선생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당혹감을 느꼈다.
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일 외에는 다른 일에 아예 관심을 갖고 있지 않구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또 달리는 아예 뉴스를 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구나하는 전혀 다른 시각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괜찮아지기까지 했다.
선생께서 작고하고 4일장을 치르면서 빈소인 안동병원 영안실에 찾아온 조문객은 1500여명이 됐고, 영결식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700여명 그리고 영결식이 끝난 후 지난 한 달 동안 아무도 없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다섯 평짜리 그의 빈 오두막을 찾아온 참배객들만 해도 500여명이 넘었다.
살아계실 때 철저히 혼자서 외롭게 지냈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피했던 생전 선생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신장결핵과 부고환결핵 등의 병고 때문에 40년을 비닐로 된 오줌주머니를 차고 살았고, 나이가 들면서 노쇠한 신체 때문에 비닐주머니 속의 오줌이 밖으로 흘러나와 생기는 고약한 냄새를 염려해, 교회 주일예배에서 사람들 가까이 가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앉을 만큼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런 선생이 작고하자 생전에 이런저런 연유로 만난 적이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 선생의 명성을 알고 있는 이들까지 경상도 북부지역 그 먼 오지까지 참배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선생은 ‘강아지 똥’, ‘몽실 언니’ 와 같은 동화와 소년소설로 유명한 아동문학가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나 추구했던 생명, 평화사상은 이미 동화작가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당대를 대표하는 문명비평가나 생태사상가의 반열에까지 다다랐고, ‘자발적 극빈’을 즐기는 듯하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이웃들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의 태도는 성자(聖者)의 그것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살았던 동네 이웃 할머니들에게 딱한 사정이 생기면 적게는 10만 원씩을 준 것에서부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 청량리 창녀와 앵벌이 같은 불우한 어린이들의 쉼터를 위해 수천만 원씩을 주기도 했고, 마지막으로는 10억원이 넘는 거액의 인세를 굶주리는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부자들의 눈으로 보면 돈의 액수가 그렇게 큰 게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10대 후반 결핵에 걸려 고구마장사, 나무장사와 유랑걸식을 한 끝에 교회 헛간에서 종지기로 연명하면서 혹독한 가난 속에서 한겨울을 나기위해 자신의 후원자이던 이오덕 선생께 5000원을 급히 보내달라는 급신을 띄우기도 하고(74. 2. 16) ‘몽실 언니’ 초판본 인세 75만원을 받게 되자 “인세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쑥스럽다”(84. 5. 11)고 할 정도로 평생을 가난 속에서 보냈다.
선생은 물욕이 없었던 분이었다. 세속적인 명예에도 관심이 없었던 분이었다. 문단에서 주는 모든 상은 거절했고, 매스컴의 갈채와 취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평생을 거의 새 옷을 입어보지 않았고 항상 검정 고무신과 낡은 셔츠차림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말년에 생긴 적지 않은 인세수입을 모아두었다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자신의 몸은 화장하고 살던 집은 허물어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으라고 했던 분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자발적 극빈과 타인에 대한 헌신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선생께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지 한 달이 되었다. 선생은 생전에 나에게 “전쟁과 정치는 악마가 하는 짓이다. 남을 꺼꾸러뜨리지 않으면 자신이 꺼꾸러지는 잔인한 짓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부시정권의 이라크침공과 같은 패권주의에 대해서 비판했다.
오늘 우리 정치판은 상대편을 꺼꾸러뜨리기 위해 온갖 거짓술수와 정치공학 판을 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다. 특히 8000억원 은닉설이나 공공재산의 횡령 운운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권 싸움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부패와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권정생과 같은 삶이 있었던 반면에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물신주의가 판을 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권정생 정신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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