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00만명 시대, 이주노동자 34만 5000여명, 2006년 국제결혼 3만9690건, 농어촌 지역 국제결혼률41%. 한국사회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각종 지표들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 핵가족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부부가정의 형성에서부터 불과 10여년 전까지 상상조차 못했을 급속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동족간의 결혼을 이상화 하고 단일혈통을 중요시하는 오랜 가치관은 이미 사회 한 곳에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붕괴하고 있다.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담론 지형도 달라지고 있다. ‘다문화 가족,’ ‘다문화 교육,’ ‘단일민족 신화와 순혈주의에 대한 성찰’ 등이 달라진 사회의 새로운 시민적 상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 반대가 시민사회의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거론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역사상 처음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담론적 차원의 다문화 열풍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사회가 제대로 다문화적 삶의 토대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 시민단체 등 사회 각 분야의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증폭되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백화점식의 지원정책과 담론의 열기 속에서도 ‘풍요 속의 빈곤’일 수 있다는 의구심은 다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여러 다문화 가정에서 법적 지위의 불안한 흔들림과 신분 및 인권 보장의 부재, 사회적 차별 등 핵심적 문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백화점식 지원정책 ‘풍요속 빈곤’
대표적으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보자. 이들은 전체 이주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문화적 권리는커녕,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마저 사치로 느껴질지 모른다.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과 산재의 위험, 추방의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의 거대한 공포 앞에서 인종, 민족, 국적,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다문화사회의 기본원칙은 맥없이 흔들린다.
이들의 처지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된다. 이들의 많은 아이들 역시 불법체류자의 낙인을 지닌다. 현행법은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나 가족의 동반입국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자녀는 부모가 먼저 입국한 후 브로커를 통해 비합법적으로 입국하게 된다. 부모가 모두 이주노동자인 아이들은 날 때부터 모두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의 굴레를 쓰게 된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교육이나 의료 등 기본적 권리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하게 된다.
유엔 어린이인권협약은 부모의 체류자격이나 국적,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에 조인했다. 이에 근거한 민간단체들의 활동과 국제적인 압력으로, 미등록 노동자 자녀들에게도 일부 법적 권리가 부여되기도 했다. 2003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 이후, 이 아이들도 거주만 확인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따라서는 아예 이들을 배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중고등학교의 경우 전적으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입학 및 졸업 자격이 주어진다. 이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각급 학교에 ‘로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까스로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도, 고단한 현실은 다 끝나지 않는다. 차별적 시선과 문화·언어의 차이, 체계적 지원의 부족 때문에 이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등 체계적인 지원 부족
이런 아이들의 현실은 한국사회 다문화 담론이 그 높은 열기와는 달리 아직 그 토대는 튼실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의 부재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이들을 영구적인 사회구성원이라고 보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실례다. 한국의 다문화 담론은 ‘핏줄’에 대한 반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아직 실제 삶의 현장에서 관철되는 정책적 실체로까지 나아가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다른 나라의 이민사를 볼 때, 이 아이들이 핏줄을 찾아 ‘자신’의 나라로 귀환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큰,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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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담론 지형도 달라지고 있다. ‘다문화 가족,’ ‘다문화 교육,’ ‘단일민족 신화와 순혈주의에 대한 성찰’ 등이 달라진 사회의 새로운 시민적 상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 반대가 시민사회의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거론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역사상 처음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담론적 차원의 다문화 열풍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사회가 제대로 다문화적 삶의 토대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 시민단체 등 사회 각 분야의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증폭되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백화점식의 지원정책과 담론의 열기 속에서도 ‘풍요 속의 빈곤’일 수 있다는 의구심은 다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여러 다문화 가정에서 법적 지위의 불안한 흔들림과 신분 및 인권 보장의 부재, 사회적 차별 등 핵심적 문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백화점식 지원정책 ‘풍요속 빈곤’
대표적으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보자. 이들은 전체 이주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문화적 권리는커녕,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마저 사치로 느껴질지 모른다.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과 산재의 위험, 추방의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의 거대한 공포 앞에서 인종, 민족, 국적,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다문화사회의 기본원칙은 맥없이 흔들린다.
이들의 처지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된다. 이들의 많은 아이들 역시 불법체류자의 낙인을 지닌다. 현행법은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나 가족의 동반입국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자녀는 부모가 먼저 입국한 후 브로커를 통해 비합법적으로 입국하게 된다. 부모가 모두 이주노동자인 아이들은 날 때부터 모두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의 굴레를 쓰게 된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교육이나 의료 등 기본적 권리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하게 된다.
유엔 어린이인권협약은 부모의 체류자격이나 국적,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에 조인했다. 이에 근거한 민간단체들의 활동과 국제적인 압력으로, 미등록 노동자 자녀들에게도 일부 법적 권리가 부여되기도 했다. 2003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 이후, 이 아이들도 거주만 확인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따라서는 아예 이들을 배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중고등학교의 경우 전적으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입학 및 졸업 자격이 주어진다. 이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각급 학교에 ‘로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까스로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도, 고단한 현실은 다 끝나지 않는다. 차별적 시선과 문화·언어의 차이, 체계적 지원의 부족 때문에 이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등 체계적인 지원 부족
이런 아이들의 현실은 한국사회 다문화 담론이 그 높은 열기와는 달리 아직 그 토대는 튼실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의 부재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이들을 영구적인 사회구성원이라고 보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실례다. 한국의 다문화 담론은 ‘핏줄’에 대한 반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아직 실제 삶의 현장에서 관철되는 정책적 실체로까지 나아가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다른 나라의 이민사를 볼 때, 이 아이들이 핏줄을 찾아 ‘자신’의 나라로 귀환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큰,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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