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날’과 한국인 피해자
일본의 8월은 세계의 이목을 끈다. 근세 일본사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들이 이 달에 집중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 패전 기념일과 두 차례 원자폭탄 피폭 기념일이다. 인류사상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이면, 일본은 세계를 향하여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쏘아 올린다.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끔찍한 참상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으로 희생자들 영혼 앞에 손 모아 절을 하고 꽃을 바친다. 정치가들은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에 발린 약속을 쏟아낸다.
그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9일은 나가사키 차례다. 히로시마의 그늘에 가려 자신들의 피폭 사실이 잊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양, 히로시마에 못지않은 이벤트를 마련한다. 두 지역 행사가 너무 두드러진 탓일까, 정작 패전 기념일인 15일에는 조용해진다. 이 날만은 잊고 싶은 심정을 헤아릴 만하다.
올해도 예년과 똑같은 이벤트가 반복되었다. 9일 나가사키 식전에서는 지난 1년 동안 피폭 후유증으로 숨진 3,069명의 명단이 평화기념 조형물 앞에 봉안되었다. 이 날 행사에서 나온 수많은 말 가운데 눈에 띤 것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불안과, 일부 정치인들의 핵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의혹으로 핵 비확산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 끝에 “북조선의 핵 폐기를 위한 6개국 협의에서 끈질기게 노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피폭자들의 실정에 눈을 돌려 원호시책을 충실히 하라”는 주문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기사와 자료를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패전 후 국적이 다르다고 보상과 치료의 의무를 외면해 온 일본 당국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피해자 단체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조선인) 원폭피해자 수는 무려 10만 명. 군수산업 기지였던 히로시마에는 10만 가까운 한국인 근로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폭 공격으로 3만 5,000명이 폭사 또는 후유증으로 죽었다. 군항이었던 나가사키에서도 1만 5000명이 그렇게 죽었다. 두 도시에서 살아남은 5만여 명은 알거지가 되어 귀국해 모진 고생을 겪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세월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식욕이 없어지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귀와 코에서 출혈이 시작되어 드러누우면 죽음이었다. 2세들이 이유 없이 불구자 또는 기형으로 태어났다. 이들의 치료와 보상 요구에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보상의무가 소멸되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는 1979년 ‘도일치료’ 와 연간 4200만 엔의 치료 보조비 지급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이어서 도일수속이 까다롭고, 알량한 치료 보조비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 문제는 계속 양국 간의 외교현안이 되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 일본 정부는 40억 엔을 내는 것으로 치료와 보상에 관한 책임을 털어버렸다. 정부는 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치료비 조로 월 10만원씩 지원하고, 합천에 피폭자회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양 책임을 망각하고 말았다.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 밖에 서 있는 한국인 피폭자 위령탑은 죽어서도 차별당하는 한국인 피해자의 원혼이 깃든 돌이다. 재일 한국인거류민단은 1970년대 평화의 공원 안에 위령탑을 건립하려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가하지 않아 공원 밖 강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민단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위령비의 공원 내 이전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좌절당하였다.
평화란 무엇인가. 남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고 같은 편끼리만 원하는 바를 얻는 것으로 족한가. 피해자의 10분의 1은 일본인은 아니었지만 그 때 일본 국적이 주어졌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거기에 갔던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 징용으로 끌려갔거나, 살 길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원하지 않는 곳에 있게 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한 것이 미안하지도 않은지, 소리쳐 묻고 싶은 8월이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일본의 8월은 세계의 이목을 끈다. 근세 일본사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들이 이 달에 집중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 패전 기념일과 두 차례 원자폭탄 피폭 기념일이다. 인류사상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이면, 일본은 세계를 향하여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쏘아 올린다.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끔찍한 참상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으로 희생자들 영혼 앞에 손 모아 절을 하고 꽃을 바친다. 정치가들은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에 발린 약속을 쏟아낸다.
그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9일은 나가사키 차례다. 히로시마의 그늘에 가려 자신들의 피폭 사실이 잊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양, 히로시마에 못지않은 이벤트를 마련한다. 두 지역 행사가 너무 두드러진 탓일까, 정작 패전 기념일인 15일에는 조용해진다. 이 날만은 잊고 싶은 심정을 헤아릴 만하다.
올해도 예년과 똑같은 이벤트가 반복되었다. 9일 나가사키 식전에서는 지난 1년 동안 피폭 후유증으로 숨진 3,069명의 명단이 평화기념 조형물 앞에 봉안되었다. 이 날 행사에서 나온 수많은 말 가운데 눈에 띤 것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불안과, 일부 정치인들의 핵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의혹으로 핵 비확산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 끝에 “북조선의 핵 폐기를 위한 6개국 협의에서 끈질기게 노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피폭자들의 실정에 눈을 돌려 원호시책을 충실히 하라”는 주문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기사와 자료를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패전 후 국적이 다르다고 보상과 치료의 의무를 외면해 온 일본 당국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피해자 단체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조선인) 원폭피해자 수는 무려 10만 명. 군수산업 기지였던 히로시마에는 10만 가까운 한국인 근로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폭 공격으로 3만 5,000명이 폭사 또는 후유증으로 죽었다. 군항이었던 나가사키에서도 1만 5000명이 그렇게 죽었다. 두 도시에서 살아남은 5만여 명은 알거지가 되어 귀국해 모진 고생을 겪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세월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식욕이 없어지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귀와 코에서 출혈이 시작되어 드러누우면 죽음이었다. 2세들이 이유 없이 불구자 또는 기형으로 태어났다. 이들의 치료와 보상 요구에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보상의무가 소멸되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는 1979년 ‘도일치료’ 와 연간 4200만 엔의 치료 보조비 지급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이어서 도일수속이 까다롭고, 알량한 치료 보조비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 문제는 계속 양국 간의 외교현안이 되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 일본 정부는 40억 엔을 내는 것으로 치료와 보상에 관한 책임을 털어버렸다. 정부는 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치료비 조로 월 10만원씩 지원하고, 합천에 피폭자회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양 책임을 망각하고 말았다.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 밖에 서 있는 한국인 피폭자 위령탑은 죽어서도 차별당하는 한국인 피해자의 원혼이 깃든 돌이다. 재일 한국인거류민단은 1970년대 평화의 공원 안에 위령탑을 건립하려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가하지 않아 공원 밖 강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민단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위령비의 공원 내 이전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좌절당하였다.
평화란 무엇인가. 남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고 같은 편끼리만 원하는 바를 얻는 것으로 족한가. 피해자의 10분의 1은 일본인은 아니었지만 그 때 일본 국적이 주어졌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거기에 갔던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 징용으로 끌려갔거나, 살 길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원하지 않는 곳에 있게 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한 것이 미안하지도 않은지, 소리쳐 묻고 싶은 8월이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