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보호, 큰 과제다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2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인데, 바로 옆집에 피부는 까무잡잡하면서 영화 ‘빠삐용’의 더스틴 호프만같이 생긴 남자와 백인여자 부부가 살았다. 남자는 아침마다 자동차정비공장에 출근했고, 여자는 주부였는데 가끔 수영복차림으로 마당 잔디밭에 드러누워 선탠을 했다. 중동이나 인도에서 유학 온 친구가 미국여자 한 사람 꼬여 결혼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셉’이라는 이집 아들이 우리 아이를 찾아 자주 놀러왔다. 하루는 물어보았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냐?”
초등학교 1학년인 조셉은 당당한 어투로 “프롬 잉글랜드”라고 말했다.
“그럼 네 아빠의 고향은 어디인데?”라고 물었다.
이 꼬마는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이 부부와 통성명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으로 유학 간 젊은이가 영국처녀를 만나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경우였다.
영국처녀와 결혼한 아프간 청년
그 당시는 내 이웃에 아프가니스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심 놀랐다. 80년대 국내에서 신문기자를 하면서도 ‘소련의 아프간침공’이 외신면 끄트머리에 실린 것과, 험준한 산악 오아시스를 메운 현란한 ‘아편 꽃’을 배경으로 총을 멘 무장민병대의 사진이 실린 외국잡지를 본 것이 아프간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였다. 그 나라가 무엇을 해먹고 살며 어떤 국가적 내력을 가졌는지 아프리카 주요국에 대한 관심만큼도 흥미가 없었다.
조셉의 아버지는 내 평생에 처음이자 아마 유일하게 대면했던 아프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제3국에서 이렇게 만난다면 모를까 한국과 아프간 사람이 교류하면서 사는 세상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20세기를 살았던 한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는 평균 인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인식되던 나라에서 한국인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인질로 잡히고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이번에 납치된 사람들이 기독교 봉사단체의 조직원들이어서 테러전쟁과 종교충돌의 십자로에 위치한 위험지역에 들어간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다는 은연의 비난 속에 포위되어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듯이 그들이 광신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가졌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는 30전후의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순교의 각오로 봉사활동을 간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험을 막연한 위험으로 의식하면서 봉사정신에서 따라 갔다가 탈레반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들 봉사자들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아프간은 이제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금지된 땅이 아닌 셈이다.
더러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나는 이런 일이 근래 10년 사이에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과 그들의 여행 행동양식이 급격히 달라지는 데서 오는 추세 변화로 읽고 싶다. 90년대 중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의 배낭여행이 미국이나 유럽같이 안전한 지역에서 중동 아프리카 같은 거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국내외의 환경이 변했고,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쉽게 또는 자연스럽게 그 환경에 적응해가기 때문이다. 즉 밖으로는 냉전종식과 세계화로 지도에 보이는 곳은 다 찾아가 구경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나 호기심의 변화가 생겼다. 또 안으로는 경제성장으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소득이 축적되고 있다.
이 추세를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관점이다. 문제는 1000만 명이 지구 구석구석에 흩어지면서 발생하는 위험에의 노출이다. 그래서 자국민 보호문제는 우리 정부의 새로운 도전이다.
21세기 들어 위험과 안전의 경계가 모호한 비대칭적 성격의 테러와 납치 위험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김선일씨가 참수당한 이라크가 위험한 곳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러나 국제테러의 위험지역은 이보다 광범위하다. 이슬람과격주의자의 반미 및 반서방 전선이 형성된 곳은 바로 테러 지진대와 같다. 우리는 인질사태에 매우 취약하다. 그 급소가 이번 인질사건 대응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지도에 보이는 곳 모두 찾아가
테러와 인질은 피해자에게는 가장 비인간적인 범죄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는 값싸면서 효과적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꿔버린 9·11테러를 감행하는 데는 겨우 25만 달러면 가능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맞지 않은 세상이 됐다. 많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 국민교육, 정보, 외교력이 종합되어 국가자원이 재배치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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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2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인데, 바로 옆집에 피부는 까무잡잡하면서 영화 ‘빠삐용’의 더스틴 호프만같이 생긴 남자와 백인여자 부부가 살았다. 남자는 아침마다 자동차정비공장에 출근했고, 여자는 주부였는데 가끔 수영복차림으로 마당 잔디밭에 드러누워 선탠을 했다. 중동이나 인도에서 유학 온 친구가 미국여자 한 사람 꼬여 결혼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셉’이라는 이집 아들이 우리 아이를 찾아 자주 놀러왔다. 하루는 물어보았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냐?”
초등학교 1학년인 조셉은 당당한 어투로 “프롬 잉글랜드”라고 말했다.
“그럼 네 아빠의 고향은 어디인데?”라고 물었다.
이 꼬마는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이 부부와 통성명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으로 유학 간 젊은이가 영국처녀를 만나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경우였다.
영국처녀와 결혼한 아프간 청년
그 당시는 내 이웃에 아프가니스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심 놀랐다. 80년대 국내에서 신문기자를 하면서도 ‘소련의 아프간침공’이 외신면 끄트머리에 실린 것과, 험준한 산악 오아시스를 메운 현란한 ‘아편 꽃’을 배경으로 총을 멘 무장민병대의 사진이 실린 외국잡지를 본 것이 아프간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였다. 그 나라가 무엇을 해먹고 살며 어떤 국가적 내력을 가졌는지 아프리카 주요국에 대한 관심만큼도 흥미가 없었다.
조셉의 아버지는 내 평생에 처음이자 아마 유일하게 대면했던 아프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제3국에서 이렇게 만난다면 모를까 한국과 아프간 사람이 교류하면서 사는 세상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20세기를 살았던 한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는 평균 인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인식되던 나라에서 한국인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인질로 잡히고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이번에 납치된 사람들이 기독교 봉사단체의 조직원들이어서 테러전쟁과 종교충돌의 십자로에 위치한 위험지역에 들어간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다는 은연의 비난 속에 포위되어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듯이 그들이 광신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가졌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는 30전후의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순교의 각오로 봉사활동을 간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험을 막연한 위험으로 의식하면서 봉사정신에서 따라 갔다가 탈레반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들 봉사자들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아프간은 이제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금지된 땅이 아닌 셈이다.
더러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나는 이런 일이 근래 10년 사이에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과 그들의 여행 행동양식이 급격히 달라지는 데서 오는 추세 변화로 읽고 싶다. 90년대 중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의 배낭여행이 미국이나 유럽같이 안전한 지역에서 중동 아프리카 같은 거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국내외의 환경이 변했고,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쉽게 또는 자연스럽게 그 환경에 적응해가기 때문이다. 즉 밖으로는 냉전종식과 세계화로 지도에 보이는 곳은 다 찾아가 구경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나 호기심의 변화가 생겼다. 또 안으로는 경제성장으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소득이 축적되고 있다.
이 추세를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관점이다. 문제는 1000만 명이 지구 구석구석에 흩어지면서 발생하는 위험에의 노출이다. 그래서 자국민 보호문제는 우리 정부의 새로운 도전이다.
21세기 들어 위험과 안전의 경계가 모호한 비대칭적 성격의 테러와 납치 위험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김선일씨가 참수당한 이라크가 위험한 곳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러나 국제테러의 위험지역은 이보다 광범위하다. 이슬람과격주의자의 반미 및 반서방 전선이 형성된 곳은 바로 테러 지진대와 같다. 우리는 인질사태에 매우 취약하다. 그 급소가 이번 인질사건 대응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지도에 보이는 곳 모두 찾아가
테러와 인질은 피해자에게는 가장 비인간적인 범죄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는 값싸면서 효과적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꿔버린 9·11테러를 감행하는 데는 겨우 25만 달러면 가능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맞지 않은 세상이 됐다. 많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 국민교육, 정보, 외교력이 종합되어 국가자원이 재배치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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