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초등학생이 되면서 ‘일기’와 만난다.
요즘엔 종류도 다양해 그림일기, 영어일기, 논술일기, 과학일기…. 새로운 일기 형식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돌아보면 일기와 헤어진 자녀를 발견한다.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학교의 일기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자연스럽게 작별하는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기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세상과 내면의 나를 이어주는 통로’ ‘나의 작은 일대기’ ‘글쓰기의 기본’ 등 일기의 순기능이 많지만, 정작 아이들은 귀찮고 괴로운 존재로 ‘일기’를 대할 뿐이다.
이에 <미즈엔>은 내 아이의 소중한 삶의 기록, 나아가 글쓰기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일기’를 다시 보려 한다.
그 시작으로 일기와 작별하지 않는 법을 살펴보았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이미란 씨(34)는 저녁 9시만 되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1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오던 일기를 언제부턴가 하루 이틀 건너뛰더니 최근 석 달 사이에는 일주일에 두 번 쓰는 것도 보기 힘들다.
“어찌어찌 달래서 쓰게 해도 길어야 다섯 줄이 고작입니다. 내용도 단순해요. 학교에서 밥 먹은 이야기, 수업 시간 내용이 전부죠. 생각이 없어요.”
이씨는 1~2학년 때는 단순한 내용이라도 나름 자신의 생각도 표현하고 글씨도 반듯하게 썼다면서 ‘일기 쓰기를 지도하는 논술학원에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란다.
박은선 씨(39·서울 송파구 방이동)도 딸아이 일기 지도로 머리가 아프다.
“우리 딸은 일기를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일일이 저한테 물어요. 처음에는 흥미도 심어주고 일기 쓰기를 포기할까 봐 그날그날 글감을 정해주었는데, 1년이 지나도 스스로 주제를 정하지 못해 정말 답답해요.”
이춘애 씨(41·서울 도봉구 방학동)는 반대로 중3인 딸 은빈이가 꾸준히 일기를 써서 기특해하는 사례다.
“은빈이는 오히려 저학년 때 일기 쓰기를 게을리 했어요. 그러더니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은빈이는 교내외 글짓기대회 수상을 휩쓸 정도로 작문 실력이 뛰어나요. 일기 쓰기도 다른 공부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하는 거죠. 다른 점이 있다면 일기 쓰기가 수단이 아니라 ‘나의 작은 삶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씨는 강압적이거나 관행처럼 일기를 검사하지 않고 편안히 쓸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스스로 일기 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깨닫는다고 말했다.
당위성과 강요는 다르다, 일기의 본질에 충실하라
“일기 쓰기는 삶과 꿈, 나를 만나는 건데 ‘논술’과 결부되면서 지나치게 수단화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일기 비책="">의 저자 김수홍 씨는 일기 쓰기만큼 좋은 글쓰기 교육이 없지만 본연의 가치가 아니라 교육에만 치중된 일기 쓰기는 오히려 역기능만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기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에게도 필요한데 아이들만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는 어른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부모가 일기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도 일기 지도의 한 방법이라는 것. 김씨는 지속적이며 창의적인 일기 쓰기는 ‘글쓰기 능력 향상’이라는 결과를 분명 가져온다고 강조하면서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을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한다.
“주변에 일기 쓰기를 잘 활용한 예가 많아요. 어떤 과학자는 일기를 통해 연구 성과를 기록했고, 어떤 학생은 다양한 유형의 일기를 써 논술 실력을 키웠고요. 박지성 선수가 축구일기를 쓴 것도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일기는 쓰는 주체의 일상과 그들이 선호하는 주제를 담은 것이고, 그 일상을 꾸준히 담으면서 자연스레 삶에 대한 지혜와 소소한 노하우 등을 습득할 수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의무감을 줄 필요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일기 쓰기가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줄 수 있느냐에 대한 교육이 전제돼야 해요. 하는 것이 옳다는 당위성과 해야만 한다는 강요는 분명 다르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일기’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심아무개 씨(33)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일기 문제 때문에 제대로 마음고생을 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일기장을 바닥에 내던지며 우는 거예요. 엄마 말이 틀렸대요. 엄마는 일기를 솔직하게 쓰라고 했는데 그 솔직함 때문에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는 거예요.”
사연인 즉 평소 다툼이 잦던 같은 반 남학생과 자신의 문제로 담임선생님께 야단을 맞았고, 다소 억울한 마음을 일기에 썼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선생님께서 일기 검사를 하시다가 우리 딸을 부른 거예요. 뭐가 억울하냐며 그 억울한 마음을 한번 얘기해보라고 하면서요.”
친구들 앞에서 속내를 들킨 것도 속상할 일인데, 딸아이는 무엇보다 선생님을 믿고 솔직하게 일기를 썼다가 야단까지 맞은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단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기에 속내를 털어놓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일기 검사를 해온 관행이 그 이유고요. 솔직하게 일기를 썼는데 잘못됐다고 몰아붙이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차차 마음의 문을 닫는 겁니다.”
‘풀잎논술’의 이영란 원장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일기의 유일한 역기능이 일기 검사로 인한 창작의 방해라고 진단했다.
“아이들이 쓰는 일기는 목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일기 속에 부단히 의미를 부여하려 하죠. 아이들은 일기를 통해 속에 있는 말을 내뱉으면 그만이에요. 그래야 내면을 성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기 쓰기 지도의 첫걸음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게 하는 거예요. 솔직한 일기가 목적을 가지고 잘 꾸며진 일기보다 훌륭할 뿐 아니라 ‘롱런’할 수 있고요.”
인권 침해 vs 자연스럽고 필요한 교육 과정
물론 일기 쓰기에도 ‘뜨거운 감자’가 있다. 일기 검사에 따른 ‘인권 침해’ 논란이다.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일기 검사에 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 인정되므로 그에 따른 적절한 대안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일단 일기 검사가 부당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 E초등학교의 박아무개 교사(46)는 “인권 문제만 놓고 일기 검사가 부당하다면 수업 시간의 제한이나 복장 규제, 교칙도 인권에 저해되는 일이 아닌가”라면서 “일기 쓰기의 순기능을 무시한 결정이다. 요즘같이 학생들과 교류가 부족한 시대에서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일기 검사”라고 주장했다.
이영란 원장도 “인권위 결정은 지극히 단순하다”면서 “인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교사가 알아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다. 문제는 일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라고 말했다. 즉 교사나 부모가 개입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보고도 못 본 척, 한 발 물러나는 관망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이 될 수 있는 일기는 ‘젯밥’에 관심을 갖는 거예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일기를 통해 착한 아이를 만들고 꼭 반성을 하게 하고, 글쓰기를 위해 일기를 쓰고…. 이런 것들이 올바른 일기 쓰기를 망치는 걸림돌이죠.”
이 원장은 일기 쓰기가 중요한 만큼 아이들에게 일기장에는 솔직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하고, 교사와 학부모는 객관적 시각에서 제대로 일기를 쓸 수 있는 다양한 글쓰기 기술을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녀나 학생의 일기내용을 보다 짜임새 있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을 객관화시키고 공론화해 개인적인 부분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 쓰기를 글쓰기에 공부에 직접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거죠.”
일기 쓰기 지도 이렇게!
꼭 필요하지만 강요할 수 없고, 당위성을 주장하자니 쉽게 작별을 고할 것 같아 조심스러운 일기 쓰기,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일단 일기 쓰기를 글쓰기 학습과 연관짓는 것부터 탈피하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첫째 과정이 맞춤법 교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일기를 국어 공부 수단으로 삼는 부모가 많지만 생활이 되도록 하려면 철자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바로잡는 일은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칫 아이들에게 ‘글자가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거리를 만들어줘 일기 쓰기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일기의 싹’을 뿌리째 뽑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써야 할 때는 그 글자에 동그라미를 해두고 넘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좋다.
다음은 특별한 날은 쉬는 날로 하는 것. 하루 중 특별한 일을 골라 쓰도록 하는 것도 일기를 애물단지로 만든 걸림돌이다. 아이들은 잔치, 여행 등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에는 일기를 잘 쓰지 못한다. 분위기에 들떠 쓸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 이때는 일기 대신 즐거운 분위기에 젖어 신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오히려 교육적이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관행’에서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하루 일을 마감하는 밤에 일기를 쓰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지만 달콤하게 유혹하는 졸음을 참고 일기장을 펼쳐도 침착하게 앉아서 일기를 쓰지 못한다. 일기는 잠과 싸우면 백전백패. 하루 어느 때라도 사건을 겪은 즉시 쓰고 싶을 때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거짓말쟁이를 만드는 반성일기는 절대 금지. 하루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깨달은 점을 쓰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많다. 단순히 겪은 일만 써서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만든 나쁜 관행이다. 일기의 생명은 정직. 끝에 반성을 쓰게 하면 마음에 없는 거짓 글을 쓰게 마련이다.
부모가 몰래 보고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일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 누군가 본다고 생각되면 정직하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을 알아야 할 부모의 처지에서 일기를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법. 따라서 일기를 봐도 안 본 것처럼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원칙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솔선수범이 최고인 만큼 같이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일기를 쓰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정작 자신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어른들도 일기 쓰기 지도를 잘못 받은 피해자. 자기는 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잘못된 방법으로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악순환이다. 교육은 말로 되지 않는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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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미즈엔>
요즘엔 종류도 다양해 그림일기, 영어일기, 논술일기, 과학일기…. 새로운 일기 형식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돌아보면 일기와 헤어진 자녀를 발견한다.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학교의 일기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자연스럽게 작별하는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기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세상과 내면의 나를 이어주는 통로’ ‘나의 작은 일대기’ ‘글쓰기의 기본’ 등 일기의 순기능이 많지만, 정작 아이들은 귀찮고 괴로운 존재로 ‘일기’를 대할 뿐이다.
이에 <미즈엔>은 내 아이의 소중한 삶의 기록, 나아가 글쓰기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일기’를 다시 보려 한다.
그 시작으로 일기와 작별하지 않는 법을 살펴보았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이미란 씨(34)는 저녁 9시만 되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1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오던 일기를 언제부턴가 하루 이틀 건너뛰더니 최근 석 달 사이에는 일주일에 두 번 쓰는 것도 보기 힘들다.
“어찌어찌 달래서 쓰게 해도 길어야 다섯 줄이 고작입니다. 내용도 단순해요. 학교에서 밥 먹은 이야기, 수업 시간 내용이 전부죠. 생각이 없어요.”
이씨는 1~2학년 때는 단순한 내용이라도 나름 자신의 생각도 표현하고 글씨도 반듯하게 썼다면서 ‘일기 쓰기를 지도하는 논술학원에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란다.
박은선 씨(39·서울 송파구 방이동)도 딸아이 일기 지도로 머리가 아프다.
“우리 딸은 일기를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일일이 저한테 물어요. 처음에는 흥미도 심어주고 일기 쓰기를 포기할까 봐 그날그날 글감을 정해주었는데, 1년이 지나도 스스로 주제를 정하지 못해 정말 답답해요.”
이춘애 씨(41·서울 도봉구 방학동)는 반대로 중3인 딸 은빈이가 꾸준히 일기를 써서 기특해하는 사례다.
“은빈이는 오히려 저학년 때 일기 쓰기를 게을리 했어요. 그러더니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은빈이는 교내외 글짓기대회 수상을 휩쓸 정도로 작문 실력이 뛰어나요. 일기 쓰기도 다른 공부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하는 거죠. 다른 점이 있다면 일기 쓰기가 수단이 아니라 ‘나의 작은 삶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씨는 강압적이거나 관행처럼 일기를 검사하지 않고 편안히 쓸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스스로 일기 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깨닫는다고 말했다.
당위성과 강요는 다르다, 일기의 본질에 충실하라
“일기 쓰기는 삶과 꿈, 나를 만나는 건데 ‘논술’과 결부되면서 지나치게 수단화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일기 비책="">의 저자 김수홍 씨는 일기 쓰기만큼 좋은 글쓰기 교육이 없지만 본연의 가치가 아니라 교육에만 치중된 일기 쓰기는 오히려 역기능만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기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에게도 필요한데 아이들만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는 어른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부모가 일기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도 일기 지도의 한 방법이라는 것. 김씨는 지속적이며 창의적인 일기 쓰기는 ‘글쓰기 능력 향상’이라는 결과를 분명 가져온다고 강조하면서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을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한다.
“주변에 일기 쓰기를 잘 활용한 예가 많아요. 어떤 과학자는 일기를 통해 연구 성과를 기록했고, 어떤 학생은 다양한 유형의 일기를 써 논술 실력을 키웠고요. 박지성 선수가 축구일기를 쓴 것도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일기는 쓰는 주체의 일상과 그들이 선호하는 주제를 담은 것이고, 그 일상을 꾸준히 담으면서 자연스레 삶에 대한 지혜와 소소한 노하우 등을 습득할 수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의무감을 줄 필요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일기 쓰기가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줄 수 있느냐에 대한 교육이 전제돼야 해요. 하는 것이 옳다는 당위성과 해야만 한다는 강요는 분명 다르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일기’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심아무개 씨(33)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일기 문제 때문에 제대로 마음고생을 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일기장을 바닥에 내던지며 우는 거예요. 엄마 말이 틀렸대요. 엄마는 일기를 솔직하게 쓰라고 했는데 그 솔직함 때문에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는 거예요.”
사연인 즉 평소 다툼이 잦던 같은 반 남학생과 자신의 문제로 담임선생님께 야단을 맞았고, 다소 억울한 마음을 일기에 썼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선생님께서 일기 검사를 하시다가 우리 딸을 부른 거예요. 뭐가 억울하냐며 그 억울한 마음을 한번 얘기해보라고 하면서요.”
친구들 앞에서 속내를 들킨 것도 속상할 일인데, 딸아이는 무엇보다 선생님을 믿고 솔직하게 일기를 썼다가 야단까지 맞은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단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기에 속내를 털어놓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일기 검사를 해온 관행이 그 이유고요. 솔직하게 일기를 썼는데 잘못됐다고 몰아붙이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차차 마음의 문을 닫는 겁니다.”
‘풀잎논술’의 이영란 원장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일기의 유일한 역기능이 일기 검사로 인한 창작의 방해라고 진단했다.
“아이들이 쓰는 일기는 목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일기 속에 부단히 의미를 부여하려 하죠. 아이들은 일기를 통해 속에 있는 말을 내뱉으면 그만이에요. 그래야 내면을 성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기 쓰기 지도의 첫걸음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게 하는 거예요. 솔직한 일기가 목적을 가지고 잘 꾸며진 일기보다 훌륭할 뿐 아니라 ‘롱런’할 수 있고요.”
인권 침해 vs 자연스럽고 필요한 교육 과정
물론 일기 쓰기에도 ‘뜨거운 감자’가 있다. 일기 검사에 따른 ‘인권 침해’ 논란이다.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일기 검사에 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 인정되므로 그에 따른 적절한 대안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일단 일기 검사가 부당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 E초등학교의 박아무개 교사(46)는 “인권 문제만 놓고 일기 검사가 부당하다면 수업 시간의 제한이나 복장 규제, 교칙도 인권에 저해되는 일이 아닌가”라면서 “일기 쓰기의 순기능을 무시한 결정이다. 요즘같이 학생들과 교류가 부족한 시대에서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일기 검사”라고 주장했다.
이영란 원장도 “인권위 결정은 지극히 단순하다”면서 “인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교사가 알아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다. 문제는 일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라고 말했다. 즉 교사나 부모가 개입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보고도 못 본 척, 한 발 물러나는 관망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이 될 수 있는 일기는 ‘젯밥’에 관심을 갖는 거예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일기를 통해 착한 아이를 만들고 꼭 반성을 하게 하고, 글쓰기를 위해 일기를 쓰고…. 이런 것들이 올바른 일기 쓰기를 망치는 걸림돌이죠.”
이 원장은 일기 쓰기가 중요한 만큼 아이들에게 일기장에는 솔직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하고, 교사와 학부모는 객관적 시각에서 제대로 일기를 쓸 수 있는 다양한 글쓰기 기술을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녀나 학생의 일기내용을 보다 짜임새 있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을 객관화시키고 공론화해 개인적인 부분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 쓰기를 글쓰기에 공부에 직접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거죠.”
일기 쓰기 지도 이렇게!
꼭 필요하지만 강요할 수 없고, 당위성을 주장하자니 쉽게 작별을 고할 것 같아 조심스러운 일기 쓰기,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일단 일기 쓰기를 글쓰기 학습과 연관짓는 것부터 탈피하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첫째 과정이 맞춤법 교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일기를 국어 공부 수단으로 삼는 부모가 많지만 생활이 되도록 하려면 철자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바로잡는 일은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칫 아이들에게 ‘글자가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거리를 만들어줘 일기 쓰기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일기의 싹’을 뿌리째 뽑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써야 할 때는 그 글자에 동그라미를 해두고 넘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좋다.
다음은 특별한 날은 쉬는 날로 하는 것. 하루 중 특별한 일을 골라 쓰도록 하는 것도 일기를 애물단지로 만든 걸림돌이다. 아이들은 잔치, 여행 등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에는 일기를 잘 쓰지 못한다. 분위기에 들떠 쓸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 이때는 일기 대신 즐거운 분위기에 젖어 신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오히려 교육적이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관행’에서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하루 일을 마감하는 밤에 일기를 쓰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지만 달콤하게 유혹하는 졸음을 참고 일기장을 펼쳐도 침착하게 앉아서 일기를 쓰지 못한다. 일기는 잠과 싸우면 백전백패. 하루 어느 때라도 사건을 겪은 즉시 쓰고 싶을 때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거짓말쟁이를 만드는 반성일기는 절대 금지. 하루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깨달은 점을 쓰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많다. 단순히 겪은 일만 써서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만든 나쁜 관행이다. 일기의 생명은 정직. 끝에 반성을 쓰게 하면 마음에 없는 거짓 글을 쓰게 마련이다.
부모가 몰래 보고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일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 누군가 본다고 생각되면 정직하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을 알아야 할 부모의 처지에서 일기를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법. 따라서 일기를 봐도 안 본 것처럼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원칙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솔선수범이 최고인 만큼 같이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일기를 쓰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정작 자신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어른들도 일기 쓰기 지도를 잘못 받은 피해자. 자기는 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잘못된 방법으로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악순환이다. 교육은 말로 되지 않는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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