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후보가 20일 한나라당 경선에서 얻은 득표수는 2398표. 전체 유효투표수의 1.4%에 불과한 수치다. 뒤에 홍준표 후보(0.9%)가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원 후보의 경선완주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따뜻하다. 득표 수 이상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원 후보는 지난 2000년 한나라당 공천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재선의원이지만, 사실 당내에서 그를 한나라당 사람으로 인정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80년대 대학과 노동현장을 넘나든 운동권 경력과 입당 뒤 줄기차게 당 개혁을 외친 그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색깔이 다르다는 비아냥이 쏟아졌고 조만간 나갈 사람으로 분류됐다. 심지어 한나라당 집권을 방해하는 첩자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원 후보는 이번에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경선에 뛰어들어 완주하고 깨끗이 승복하는, 한나라당을 앞장서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나라당의 닫힌 마음을 여는데 성과를 거뒀다는 관전평이다. 연설회마다 이명박-박근혜 지지자로부터 악수세례가 쏟아졌고 “다음엔 꼭 찍어주겠다”는 격려가 잇따랐다. 한나라당이 더 이상 원 후보를 이방인이 아닌 ‘내 식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또 이-박 두 유력주자가 보여주지 못한 신선한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한나라당에선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 청년지지층인 ‘감귤300’을 이끌어내면서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에 필요한 존재”라는 평가도 얻어냈다.
원 후보는 한발 더나가 이 후보의 선거운동을 적극 돕는다는 입장이다. 선대위에서 실무를 맡아 직접 뛸 각오가 되어있다는 전언이다. 이동환 대변인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승자가 부여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할 각오”라고 말했다.
원 후보측은 이같은 행보가 5년 뒤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이 대변인은 “이번엔 (지지자가) 2300여명 밖에 안됐지만 먼 훗날 2300만명이 되는 밀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입문 8년만에 경선 승부수를 통해 희망의 빛을 본 원 후보가 앞으로 자신과 한나라당의 주파수를 어떻게 맞춰나갈지 주목된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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