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과 통일을 여는 사람들] ① ‘통일은 됐어’ 늦봄 문익환 목사의 평생반려자 박용길 장로

“미국, 이제 남과 북 자유롭게 놔줘야해”

지역내일 2007-09-27
문익환·김일성 ‘우리말사전 편찬합의’ 지연 … 매주 교회에 나가 통일 기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본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남다르게 헌신했던 인물들의 삶과 근황,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이 무엇 때문에 우리 민족을 이렇게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벌써 몇 십 년짼데 당최 도리에 어긋나는 거지요.” “우리 문 목사님과 김일성 주석이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기로 합의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요.”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88·사진)는 지금까지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남쪽의 민간인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지난 1995년 고 김일성 주석의 1주기에 평양을 방문해 금수산 기념궁전에서 김 전 주석의 시신을 참배하기도 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 장로 일행을 직접 안내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 대해 이처럼 파격적인 행보를 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만큼 김 주석과 문 목사의 특수한 관계를 배려한 것이다.
박 장로는 그만큼 이번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크다.

◆평생 하느님과 함께 한 인생 = 박 장로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요즘도 매주 교회에 나간다. 기자가 지난달 19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한빛교회’를 찾았을 때 박 장로는 100여명의 교인과 함께 예배를 보고 있었다. 한빛교회는 박 장로의 시아버지인 고 문용린 목사가 설립하고 남편인 문 목사가 키워온 곳이다. 박 장로는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평안북도 창성군 대유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0살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요코하마 신학교에 입학해 그곳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의 공덕귀 여사와 만나기도 했다. “일본사람들이 지배할 때라서 성경을 배우고 싶은데도 조선에서는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 여고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거지.”
박 장로는 일본 유학생활을 하던 1938년 유학생 모임에서 평생의 반려자 문익환 목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1944년 결혼했다.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하다 = 박 장로는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면서 동지이기도 했다. 문 목사가 한국 기독교계의 숙원사업인 성서번역 등 목회활동에 주력하다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본격 가담하자 박 장로의 운명도 크게 변했다. 1970년대 한빛교회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의 석방환영식을 단골로 했던 장소다. 당시 민중 신학자들도 이곳에 자주 모여 토론을 벌였으며, 이 교회 대학생부와 청년부는 감옥을 가는 자리로 굳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유원규 한빛교회 담임목사는 “우리 한빛교회인이 민주화운동으로 받은 선고형량만 징역 200년이 넘는다”며 “이 과정에서 문 목사님과 박 장로님의 역할은 모든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말했다.
1989년 문 목사가 방북하던 때도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박 장로였다. 박 장로는 당시 불법방북의 후속조치가 어떤 것임을 알았지만 문 목사의 방북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 지지했다. 이처럼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박 장로의 헌신은 그가 스스로 1995년 김 주석 1주기 행사에 참석했다가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북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 박 장로는 지금까지 평양을 몇 차례 방문하는 등 북에 대한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북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산에 나무가 없어 멀리서 보면 산속에서 움직이는 사람까지 보인다”며 “임진강 하구에 모래가 쌓여서 북에 홍수가 자주난다는데 아무튼 남북이 힘을 합쳐 북쪽 사람들 고생 좀 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북한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작년에 평양에 갔는데 거리에 자동차도 많고 노점(가판)이 많이 생겼어요.” “남쪽 관광객들 위한 싼 액세서리 같은 것도 많고,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예전과 같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 아쉬운 것은 남편과 김 주석이 지난 89년 합의한 것 가운데 ‘우리말 큰 사전’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기로 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박 장로는 “당시 두 분이 합의한 큰 사전 편찬사업이 남쪽에서만 부담하고 있어서 잘 진척이 안된다”며 “10년을 계획하고 한 건데 20년이 다 되도록 결실을 못 맺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이 사업을 당시 두 사람의 합의 사항 1호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목소리 크고 활달” =
박 장로가 김정일 위원장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두 번이다. 95년 처음으로 방북했을 때 금수산 궁전에서 김 주석 시신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함께 묵상하던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지난 2005년 6월 10여년 만에 다시 북을 방문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일행과 함께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이 우리 일행과 함께 오찬을 하는데 내가 바로 옆에 앉았어.” “김 위원장이 말할 때면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아무튼 활달하고, 명랑한 그런 성격 이예요.”
박 장로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그는 “노 대통령이 요새 인기도 없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고 안타깝다”며 “그래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서 민족의 통일을 위한 커다란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도 이제 사상만 가지고 너무 따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박 장로는 “남과 북이 전쟁을 했지만 이제는 잊어버려야 한다”며 “나도 형부랑 동생을 북에서 잃었지만 동족애로 극복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보다 큰 포용력을 발휘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요즘도 매주 일요일 사위와 함께 꼬박꼬박 교회에 나오지만 한결같이 남북통일을 하루빨리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문 목사가 원했던 것이고, 우리 목사님이 감옥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직 통일을 위해서 일했잖아.” “집에 가면 아직도 문 목사의 채취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항상 통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지.”

유원호(77)
문익환 목사 방북 수행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와 친했는데 88년 말 일본에서 만나 서로 조국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하다가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정경모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제의하고, 나는 남한의 문익환 목사에게 제의해서 둘의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다. 나는 문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서 평양을 함께 간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해동(73) 한빛교회 3대 담임목사
문익환 목사는 (통일의) 꿈만 꾼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온몸을 바친 분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문 목사와 김일성 주석의 만남처럼 서로 진솔해야 한다.
통일과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꼬이게 돼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나 동북아의 평화문제를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의제가 우선인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유원규(56) 현 한빛교회 담임 목사
문 목사님과 허 담 대표가 합의한 ‘4·2 성명’의 내용을 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같은 내용이 ‘6·15 공동선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에는 문 목사님의 행보를 영웅주의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분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의심하지 않았다.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목사님이 주장한 대로 진행되고 있지않느냐. 문 목사님은 역사를 꿰뚫어 보는 선지자적 면모가 있었다.

권오성(54) 현 KNCC 총무
1차 남북정상회담이 냉정체제를 허무는데 기여했다면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화체제에 대해 서로 논의하면서 남북 간의 균형적인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존할 수 있는 경제 개발 계획도 같이 세워서 북한이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특별취재팀 = 백만호 윤여운 김현경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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