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문제 해결이 가시권에 들면서 미국내에 ‘친북여론’ 만들기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북한과 민간교류를 활성화시키고, 북한외교관의 여행지역을 확대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임기내 북미관계정상화 정책을 명료히 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의 여론지지를 얻는 것은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반북정책을 펼치는 동안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 ‘피그미’ 등으로 묘사하면서 여론의 반감을 빚어왔다. 이를 상쇄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부시행정부의 성과로 만들려면 ‘친북여론’ 조성이 필요하다.
먼저 북한의 문화·학술인 등의 방미러시가 이루어지면서 북한문화와 학술에 대한 미국내 북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이 예고되고 있다.
10월에 북한 태권도 선수단이 미국 시범공연을 펼칠 예정이며,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권투선수권대회에도 북한선수 3명이 출전한다. 권투선수단의 방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0여년만이다.
학술교류는 미국 시라큐스 대학과 북한 김책공대간 정보기술 인력 교환 프로그램도 재개된 데 이어,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가 2월 북한과 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고, 5월에는 민간연구개발재단(CRDF)과 과학진흥협회가 워싱턴에서 시라큐스대, 스탠퍼드대, 코넬대, 비정부기구,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 미 국무부 관계자 등 5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북미 대학간 과학협력을 주제로 비공개 토론회를 연 바 있다.
미 국무부는 또 그동안 허가없이 뉴욕 반경 30마일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돼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의 외부 나들이를 허용했다. 북한 김명길 유엔차석대사가 8일 10명이 넘는 대규모 여행단을 이끌고 뉴욕을 벗어나 워싱턴을 방문한 것이다. 외교관의 여행자유화조치는 북미관계가 정상화수순에 돌입할 때 가장 초보적인 행정조치로 예고돼 왔다.
이같은 교류확대는 북미관계정상화의 선결요건으로 신뢰구축노력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신뢰구축을 위한 북미간의 비공식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런 차원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미 국무부는 실제 초청이 이뤄지자 뉴욕 필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며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 태권도 선수단의 미국 시범공연 역시 작년에는 미 국무부측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빨리 비자를 신청하라’고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김책공대와 시라큐스대간의 교류도 그동안엔 열흘 남짓짜리 단기 비자로 북한관계자들이 방미하는데 그쳤으나 9월부터는 3개월짜리 장기 비자를 주는 등 훨씬 더 진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 미국에게 ‘신뢰보이기’ 노력
불능화팀 ‘판문점’ 통해 입북 … 북, 대미 금융 불법행위자 다수 체포
북한도 미국에게 신뢰의 증표가 될 수 있는 각종 증표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핵불능화팀을 먼저 초청한 북한은 그 단장을 미국인사로 하고 판문점을 통해 입북하도록 허용했다.
미국 정부인사가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북이 미국을 향해 개방적 자세를 취한다는 증표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 오찬에서 “50년대 산물인 판문점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데서 드러나듯이 북한은 판문점을 ‘유엔의 모자를 쓰고 있는 미군 관할지역’으로 보고 거부감을 보이는 지역이다. 따라서 미국측 인사의 판문점 통과는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과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북핵위기 해결사로서 김일성 당시 주석과 면담했고, 허바드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같은 해 12월 미군 헬리콥터가 비무장지대 북측에 추락했을 때와 2000년 10월 역시 부차관보로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각각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국면에서만 판문점 통과를 허용한 것이다.
한편 북핵불능화 기술팀의 방북이 북한측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 자체가 북의 대미신뢰쌓기 증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불능화 기술팀의 방북은 선양에서 열린 6자회담 비핵화실무그룹회의 때 북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언론도 북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8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북, 협력 신호를 보내다’라는 기사에서 ‘북한이 국제금융계의 신뢰를 얻기 위해 불법 활동 혐의자들을 많이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은 힐 차관보에게 북측 관계자들이 전한 내용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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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민간교류를 활성화시키고, 북한외교관의 여행지역을 확대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임기내 북미관계정상화 정책을 명료히 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의 여론지지를 얻는 것은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반북정책을 펼치는 동안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 ‘피그미’ 등으로 묘사하면서 여론의 반감을 빚어왔다. 이를 상쇄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부시행정부의 성과로 만들려면 ‘친북여론’ 조성이 필요하다.
먼저 북한의 문화·학술인 등의 방미러시가 이루어지면서 북한문화와 학술에 대한 미국내 북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이 예고되고 있다.
10월에 북한 태권도 선수단이 미국 시범공연을 펼칠 예정이며,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권투선수권대회에도 북한선수 3명이 출전한다. 권투선수단의 방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0여년만이다.
학술교류는 미국 시라큐스 대학과 북한 김책공대간 정보기술 인력 교환 프로그램도 재개된 데 이어,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가 2월 북한과 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고, 5월에는 민간연구개발재단(CRDF)과 과학진흥협회가 워싱턴에서 시라큐스대, 스탠퍼드대, 코넬대, 비정부기구,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 미 국무부 관계자 등 5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북미 대학간 과학협력을 주제로 비공개 토론회를 연 바 있다.
미 국무부는 또 그동안 허가없이 뉴욕 반경 30마일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돼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의 외부 나들이를 허용했다. 북한 김명길 유엔차석대사가 8일 10명이 넘는 대규모 여행단을 이끌고 뉴욕을 벗어나 워싱턴을 방문한 것이다. 외교관의 여행자유화조치는 북미관계가 정상화수순에 돌입할 때 가장 초보적인 행정조치로 예고돼 왔다.
이같은 교류확대는 북미관계정상화의 선결요건으로 신뢰구축노력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신뢰구축을 위한 북미간의 비공식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런 차원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미 국무부는 실제 초청이 이뤄지자 뉴욕 필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며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 태권도 선수단의 미국 시범공연 역시 작년에는 미 국무부측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빨리 비자를 신청하라’고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김책공대와 시라큐스대간의 교류도 그동안엔 열흘 남짓짜리 단기 비자로 북한관계자들이 방미하는데 그쳤으나 9월부터는 3개월짜리 장기 비자를 주는 등 훨씬 더 진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 미국에게 ‘신뢰보이기’ 노력
불능화팀 ‘판문점’ 통해 입북 … 북, 대미 금융 불법행위자 다수 체포
북한도 미국에게 신뢰의 증표가 될 수 있는 각종 증표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핵불능화팀을 먼저 초청한 북한은 그 단장을 미국인사로 하고 판문점을 통해 입북하도록 허용했다.
미국 정부인사가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북이 미국을 향해 개방적 자세를 취한다는 증표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 오찬에서 “50년대 산물인 판문점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데서 드러나듯이 북한은 판문점을 ‘유엔의 모자를 쓰고 있는 미군 관할지역’으로 보고 거부감을 보이는 지역이다. 따라서 미국측 인사의 판문점 통과는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과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북핵위기 해결사로서 김일성 당시 주석과 면담했고, 허바드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같은 해 12월 미군 헬리콥터가 비무장지대 북측에 추락했을 때와 2000년 10월 역시 부차관보로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각각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국면에서만 판문점 통과를 허용한 것이다.
한편 북핵불능화 기술팀의 방북이 북한측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 자체가 북의 대미신뢰쌓기 증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불능화 기술팀의 방북은 선양에서 열린 6자회담 비핵화실무그룹회의 때 북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언론도 북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8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북, 협력 신호를 보내다’라는 기사에서 ‘북한이 국제금융계의 신뢰를 얻기 위해 불법 활동 혐의자들을 많이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은 힐 차관보에게 북측 관계자들이 전한 내용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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