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선생님은 수다 친구”
고추 따고, 김치 담근 것 전화로 자랑 … 말 통하는 상대 필요
사진 1. 즐거운 한글공부 시간.
“ㅈ 다음이 뭐지?” 한글 도우미 이은풍씨가 묻자 이것저것 말하던 이주여성들이 ‘ㅊ’ 발음이 잘 안 돼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당티방씨의 6개월된 아기는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울지도 않고 놀았다.
사진 2. 한국말도 음식도 잘 배우고 있어요.
12일 한글공부가 끝난 후 기념촬영. 이들은 한글 뿐 아니라 음식도 배운다. 아직 손맛은 나지 않지만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쁘다.
파주시 적성읍에 사는 베트남인 당티방(24)씨는 한글 선생님 이은풍(61)씨를 기다린다. 주 세 번 이씨가 와서 자신과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에게 한글과 음식 등을 가르치지만 공부하는 날만 기다리지는 않는다. 고추 700개를 혼자서 딴 날도, 김치를 담근 날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다.
12일 오전 9시30분쯤. 이은풍씨의 차가 당티방씨 집 마당에 들어서서 경적을 울리자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안고 당티방씨가 나타났다. 그는 이씨의 차에 오르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이씨에게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이씨는 당티방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말을 천천히 하라”, “발음을 똑바로 하라”며 ‘교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2003년 10월 결혼한 당티방씨는 지난 3월부터 이씨와 한글공부를 하면서 말과 글이 많이 늘었다. 당티방씨는 “한국말을 모르면 답답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공부해서 좋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엄마가 말을 해야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며 남편이 빨리 한국말을 배우라고 한다”며 “남편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당티방씨와 한글공부를 같이 하는 이주여성은 필리핀인 네니타(27)씨와 일본인 요코(41)씨다. 네티타씨는 2005년 3월에, 요코씨는 2003년 7월에 한국에 시집왔다. 농림부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결혼이민자 조기 정착을 위한 도우미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은풍씨는 이들의 선생님이면서 어머니와 친구 역할도 한다. 얼마전 네니타씨의 시어머니 환갑잔치 때도 참여해 열심히 놀아주고 일도 해주었다. 이씨는 3명의 도우미지만 이들의 가족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경조사비도 적지 않게 나가지만 봉사활동의 보람으로 감내하고 있다.
12일 한글공부는 적성읍에 있는 일본인 요코(41)씨 집에서 진행됐다. 이씨는 밀감 하나를 꺼내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속담을 설명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글쓰기 숙제검사를 하고 받아쓰기 시험을 치렀다. 말을 하면서 발음 교정도 해주고, 이들의 생활 속 답답함도 들어 주었다.
요코씨는 “처음엔 말을 못 하니까 사람을 만나도 조금 두려웠다”며 “지금은 말이 통하니까 생활이 편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요코씨는 자신의 집으로 온 공부 친구들을 위해 밭에서 딴 방울토마토와 정성껏 만든 샌드위치를 내놓았다. 3월부터 시작한 한글공부 공책이 제법 두툼해졌다. 한글로 쓴 일기장, 한글 받아쓰기 공책들에는 정성들여 또박또박 쓴 글들이 가득하다.
네니타씨는 아직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하고 있다. 네니타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모든 게 힘들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농사일을 하는 당티방과 달리 1년 전 아이를 낳은 후엔 일을 하지 않는다. 네니타씨는 가족생활에서 생긴 답답함을 홀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풀거나 한글 도우미들에게 풀어놓으며 해소하고 있다.
네니타씨는 한국 생활이 답답해 자주 필리핀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공부가 끝난 후 네니타씨는 이씨가 일하는 작은손봉사대 사무실에 같이 갔다. 이씨는 “얼마전에 네니타에게 영어 강사로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한글공부와 한국생활에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려는 속셈이다. 이씨는 네니타씨에게 “영어로 말이 통한다고 한글 공부를 소홀히 하면 손해”라며 “한글을 잘 해야 영어 강사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풍씨는 파주시 광탄읍에서 적성읍까지 50km 떨어진 곳을 오가며 이주여성들의 도우미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인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생활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 시부모와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만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주=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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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따고, 김치 담근 것 전화로 자랑 … 말 통하는 상대 필요
사진 1. 즐거운 한글공부 시간.
“ㅈ 다음이 뭐지?” 한글 도우미 이은풍씨가 묻자 이것저것 말하던 이주여성들이 ‘ㅊ’ 발음이 잘 안 돼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당티방씨의 6개월된 아기는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울지도 않고 놀았다.
사진 2. 한국말도 음식도 잘 배우고 있어요.
12일 한글공부가 끝난 후 기념촬영. 이들은 한글 뿐 아니라 음식도 배운다. 아직 손맛은 나지 않지만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쁘다.
파주시 적성읍에 사는 베트남인 당티방(24)씨는 한글 선생님 이은풍(61)씨를 기다린다. 주 세 번 이씨가 와서 자신과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에게 한글과 음식 등을 가르치지만 공부하는 날만 기다리지는 않는다. 고추 700개를 혼자서 딴 날도, 김치를 담근 날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다.
12일 오전 9시30분쯤. 이은풍씨의 차가 당티방씨 집 마당에 들어서서 경적을 울리자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안고 당티방씨가 나타났다. 그는 이씨의 차에 오르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이씨에게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이씨는 당티방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말을 천천히 하라”, “발음을 똑바로 하라”며 ‘교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2003년 10월 결혼한 당티방씨는 지난 3월부터 이씨와 한글공부를 하면서 말과 글이 많이 늘었다. 당티방씨는 “한국말을 모르면 답답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공부해서 좋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엄마가 말을 해야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며 남편이 빨리 한국말을 배우라고 한다”며 “남편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당티방씨와 한글공부를 같이 하는 이주여성은 필리핀인 네니타(27)씨와 일본인 요코(41)씨다. 네티타씨는 2005년 3월에, 요코씨는 2003년 7월에 한국에 시집왔다. 농림부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결혼이민자 조기 정착을 위한 도우미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은풍씨는 이들의 선생님이면서 어머니와 친구 역할도 한다. 얼마전 네니타씨의 시어머니 환갑잔치 때도 참여해 열심히 놀아주고 일도 해주었다. 이씨는 3명의 도우미지만 이들의 가족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경조사비도 적지 않게 나가지만 봉사활동의 보람으로 감내하고 있다.
12일 한글공부는 적성읍에 있는 일본인 요코(41)씨 집에서 진행됐다. 이씨는 밀감 하나를 꺼내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속담을 설명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글쓰기 숙제검사를 하고 받아쓰기 시험을 치렀다. 말을 하면서 발음 교정도 해주고, 이들의 생활 속 답답함도 들어 주었다.
요코씨는 “처음엔 말을 못 하니까 사람을 만나도 조금 두려웠다”며 “지금은 말이 통하니까 생활이 편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요코씨는 자신의 집으로 온 공부 친구들을 위해 밭에서 딴 방울토마토와 정성껏 만든 샌드위치를 내놓았다. 3월부터 시작한 한글공부 공책이 제법 두툼해졌다. 한글로 쓴 일기장, 한글 받아쓰기 공책들에는 정성들여 또박또박 쓴 글들이 가득하다.
네니타씨는 아직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하고 있다. 네니타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모든 게 힘들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농사일을 하는 당티방과 달리 1년 전 아이를 낳은 후엔 일을 하지 않는다. 네니타씨는 가족생활에서 생긴 답답함을 홀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풀거나 한글 도우미들에게 풀어놓으며 해소하고 있다.
네니타씨는 한국 생활이 답답해 자주 필리핀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공부가 끝난 후 네니타씨는 이씨가 일하는 작은손봉사대 사무실에 같이 갔다. 이씨는 “얼마전에 네니타에게 영어 강사로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한글공부와 한국생활에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려는 속셈이다. 이씨는 네니타씨에게 “영어로 말이 통한다고 한글 공부를 소홀히 하면 손해”라며 “한글을 잘 해야 영어 강사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풍씨는 파주시 광탄읍에서 적성읍까지 50km 떨어진 곳을 오가며 이주여성들의 도우미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인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생활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 시부모와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만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주=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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