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원고

지역내일 2007-10-01
밥과 일, 그리고 꿈
밥과 일과 꿈. 따뜻하고 치열하고 아련하다. 내일신문 이 칼럼란의 이름이 내겐 좀 각별한 느낌이다. 저 세 단어와 함께 겹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숙자들이다.
10여 년 전, 서울역 노숙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대학 한 학기를 남겨두고 서울에 올라와 남산자락 고시원 쪽방에 틀어박힌 언론 지망생이었다. 외로웠고, 고달팠다. 가끔 고향집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귀성길 서울역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서울역 노숙자만 1천명에 육박하는 IMF 혹한기. 그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나흘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이야기해 봤다. 그들의 경계심을 허무는 데는 허술한 외모 덕도 컸지만 그보다는 취직 못하면 환향(還鄕)하지 않겠다던 나의 절박함이 그들의 절망감과 닮아있던 탓이리라. 후에 어느 글에서 나는 그 때 경험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집, 밥, 잠, 돈, 일, 꿈. 우리가 살면서 갖고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것들은 한 음절 단어면 족하다. 이들이 가진 것은 잠뿐, 길 위의 한뎃잠을 자며 오늘도 속절없는 꿈을 꾼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광화문 신문로 근처 언론사에 취직했다. 가끔 지나치면서 내일신문 사옥에 쓰인 ‘밥·일·꿈’이라는 글씨를 볼 때면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여전히 길 위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들이 있었고, 용케도 고시원 쪽방을 떠나 ‘밥과 일과 꿈’을 얻은 내가 있었다.
2003년 11월, 나는 서울역을 다시 찾았다.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노숙자들이 정치에 바라는 ‘꿈’을 취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우리는 유권자가 아니잖아.”
경험이 기억과 연륜으로 축적되지 않는 나의 아둔함이라니. 10만원을 받고 자신의 주민증을 누군가에게 팔았다는 그 노숙자는 이미 유권자가 아니었다. 물론 ‘증’이 있는 노숙자들은 부재자투표를 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노숙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국가에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선거철 숱한 서울역 광장의 유세를 한 토막이나마 자기의 것으로 여길 마음이 없었다. 차가운 서울역 광장 바닥에서 그들의 ‘꿈’도 함께 곱아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선거가 다가온다.
성장 경제, 서민 경제, 진짜 경제 가짜 경제. 1987년 직선 이후 20년 동안 정치 일색이었던 대선 담론에 비로소 경제가 등장했다. 그렇더라도, 빈곤 해결은 밥과 일 뿐 아니라 인간성 회복을 위한 ‘꿈’을 어루만지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경제 공약이면 좋겠다. 무료 급식도 중요하지만 ‘클레멘트 코스’ 인문학 강의가 노숙자들에게 희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가족 품을 떠난 그들, ‘사회 보장’ ‘1인 1표’ 헌법의 울타리에는 들어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명절을 앞두고 가을 태풍이 사납다. 비에 젖는 서울역, 사람들이 처연하다.
김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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