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에게 대전충청은 ‘패배의 땅’ ‘부활의 땅’
1997년 DJP연합,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민심 돌아서
2005년부터 ‘창사랑’ 지역향우회 꿈틀 ·여론조사 지지율 껑충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지역일정을 12일 대전·충청에서 시작해 눈길을 끈다. 대전·충청은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의 땅’이자 ‘부활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다.
대전·충청은 충남 예산출신인 이 후보의 고향이다. 하지만 두 번이나 그에게 대선 패배를 안겨줬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강력한 대선주자로 부각됐지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충청권 맹주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DJP연합’의 영향으로 패배했다. 당시 득표차는 39만여표에 불과했고 대전 충청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지역별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비해 △대전 15.8% △충남24.8% △충북6.6%를 앞섰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에게 다시 승자의 자리를 내줬다. 당시 전국 득표차는 57만여표. 이중 지역별 분포에서 노 후보는 △대전 10만2000여표 △충남 9만9000여표 △충북 5만4000여표 등 25만6000여표를 대전 충남에서 앞섰다. ‘충청도 대통령’을 내세웠던 이 후보의 승세를 대전충남에서 오히려 꺾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전 충남은 한동안 칩거했던 이회창 후보에게 정치적 부활의 땅이 됐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 ‘창사랑’은 지난 2004년부터 대전·충남과 대구·경북 중심으로 물밑 활동을 벌였고 지난 2005년 8월 ‘이회창 명예회복촉구 대전대회’까지 열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를 대선 후보로 모시겠다”는 입장이 나왔다. “국민이 이회창의 재출마를 원한다”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이후 이 후보는 지난 2006년 5월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출마 후보자들을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충남 예산과 대전 정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해이해진 나라기강이 안타깝다”는 발언은 정계 재입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올해 1월 대전지역 특강 등 활발한 물밑 행보를 계속했다. 이런 가운데 그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됐고 일부 지역향우회가 이 후보를 도왔다. 또 출마 선언 후 대전 충청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12일자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대전·충청 지지율이 이회창 28.0%, 이명박 (30.9%)로 비슷하게 나왔다. 지역별 호감도에서는 대전 충청에서 이회창 후보가 60.3%로 1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돌아선 층의 이회창 지지성향도 눈여겨볼만하다. 11일자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부산·울산·경남권에서 지지 변경층의 95.7%를 흡수했고 이어 대구 경북권과 충청권에서 50%대 이상의 높은 흡수율을 기록했다.
한편 지난 2002년 이회창 후보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과학수도 건설’을 내세움과 동시에 ‘충청도 대통령’을 다시 내세웠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다시 지역주의를 부추긴다” “지역발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공약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올해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가 어떤 카드로 대전 민심을 공략할지 주목된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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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DJP연합,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민심 돌아서
2005년부터 ‘창사랑’ 지역향우회 꿈틀 ·여론조사 지지율 껑충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지역일정을 12일 대전·충청에서 시작해 눈길을 끈다. 대전·충청은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의 땅’이자 ‘부활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다.
대전·충청은 충남 예산출신인 이 후보의 고향이다. 하지만 두 번이나 그에게 대선 패배를 안겨줬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강력한 대선주자로 부각됐지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충청권 맹주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DJP연합’의 영향으로 패배했다. 당시 득표차는 39만여표에 불과했고 대전 충청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지역별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비해 △대전 15.8% △충남24.8% △충북6.6%를 앞섰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에게 다시 승자의 자리를 내줬다. 당시 전국 득표차는 57만여표. 이중 지역별 분포에서 노 후보는 △대전 10만2000여표 △충남 9만9000여표 △충북 5만4000여표 등 25만6000여표를 대전 충남에서 앞섰다. ‘충청도 대통령’을 내세웠던 이 후보의 승세를 대전충남에서 오히려 꺾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전 충남은 한동안 칩거했던 이회창 후보에게 정치적 부활의 땅이 됐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 ‘창사랑’은 지난 2004년부터 대전·충남과 대구·경북 중심으로 물밑 활동을 벌였고 지난 2005년 8월 ‘이회창 명예회복촉구 대전대회’까지 열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를 대선 후보로 모시겠다”는 입장이 나왔다. “국민이 이회창의 재출마를 원한다”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이후 이 후보는 지난 2006년 5월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출마 후보자들을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충남 예산과 대전 정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해이해진 나라기강이 안타깝다”는 발언은 정계 재입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올해 1월 대전지역 특강 등 활발한 물밑 행보를 계속했다. 이런 가운데 그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됐고 일부 지역향우회가 이 후보를 도왔다. 또 출마 선언 후 대전 충청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12일자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대전·충청 지지율이 이회창 28.0%, 이명박 (30.9%)로 비슷하게 나왔다. 지역별 호감도에서는 대전 충청에서 이회창 후보가 60.3%로 1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돌아선 층의 이회창 지지성향도 눈여겨볼만하다. 11일자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부산·울산·경남권에서 지지 변경층의 95.7%를 흡수했고 이어 대구 경북권과 충청권에서 50%대 이상의 높은 흡수율을 기록했다.
한편 지난 2002년 이회창 후보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과학수도 건설’을 내세움과 동시에 ‘충청도 대통령’을 다시 내세웠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다시 지역주의를 부추긴다” “지역발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공약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올해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가 어떤 카드로 대전 민심을 공략할지 주목된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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