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 인물구도 속 진보정당 설 자리 잃어”
상부 무기력·하부 열정 식어 … 삼성특검·종교단체 과세 등 선명성으로 돌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19일 대선 D-30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 금기시된 부분에 대해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문제는 그 대표적인 과녘이다. 권 후보는 “청와대와 이명박, 정동영 후보가 한 통속이 돼 있다”며 공세를 폈다.
권 후보는 후보 등록을 전후해 △종교단체 과세 △대마초 형사처벌 여부 △안락사 △교통범칙금 형평성 문제 등 정치권에서 다루기 꺼려하는 ‘뜨거운 감자’를 건드릴 예정이다.
권 후보가 이처럼 ‘치고 나가는’ 이면에는 진보정당 후보로서의 위기감이 깔려 있다.
권 후보 지지율은 후보 선출이후 3% 안팎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순위로 보면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문국현 후보에 이어 다섯 번째다. 당 지지율 10%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회창 무소속 출마,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공방, 범여권 단일화 협상 등 주요 쟁점에 묻혀 권 후보의 모습은 대선무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당의 하부는 무관심하고 상부는 무기력해 보인다. 그나마 작은 힘은 정파간 해묵은 노선논쟁으로 소진되고 있다. 무엇보다 당원과 열성 지지자들의 열정이 식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간부인 박유호씨는 “분위기가 안뜬다”고 말했다.
◆다자 인물구도에 갇혀 =
과거 대선에서 민노당을 괴롭힌 것은 ‘사표심리’ 였다. 양자대결 구도 속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비한나라 후보로 막판에 표가 쏠렸다. 올해는 양상이 달랐다. 이명박 대세론 속에서 여권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권 후보측은 한나라-여권-민노당의 삼각구도 속에서 정책차별화를 통해 10% 내외의 득표는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대선이 인물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여기다 이회창 문국현 등 다자구도가 형성됐고 정치공방이 계속되면서 정책은 유권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권 후보가 ‘대선 3수’라는 점에서 흡인력을 제약한다는 지적도 있다.
◆차별화된 대안제시 못해 =
구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노당이 지난 5년간 과연 진보정당으로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느냐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기존 정당과 차별성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이는 대선정국에서도 연장되고 있다.
‘세상을 바꾸자’ ‘서민의 빈 지갑을 채우겠다’는 권 후보의 대선구호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일간지 여론조사에 우리 국민의 41%가 자신을 진보라고 답했지만 현실은 보수 후보가 1,2위를 다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민노당이 가장 고민되는 대목이다. 김창현 선대위 조직본부장은 “외부적으론 다자구도에 갇혔고 내부적으론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여권이나 수구세력과 차별화된 대안 제시를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파갈등 여전 =
민노당 내부 최대 숙제인 정파 갈등이 대선국면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최근 권 후보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 공약으로 제시하자 조승수 전 의원이 인터넷신문에 ‘코리아연방, 난 선거운동 못한다’며 정면으로 반발, 논란이 일었다.
17일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개정하면서도 갈등이 재연됐다. 일각에서 1인6표제 방식과 선출시기를 내년 1월로 하기로 한 것을 ‘특정정파에 유리한 결정’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
이에 대해 당 핵심관계자는 “대다수 당원들은 양대 정파의 중심 이슈인 자주와 평등이란 기조 아래 선거를 치러는 데 동의해왔다”면서 “소모적 논쟁 보다 헌신적으로 일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원 무관심 =
민노당은 최근에야 광역단위 선대위 체계를 모두 갖추었다. 하지만 정작 발로 뛸 지역·직능별 조직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근에야 대선과 관련된 조합원 교육을 시작했다. 경남지역 당 핵심관계자는 “당에서 무엇을 해달라는 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당원들의 관심이 낮다보니 특별당비 모금도 지지부진하다. 선대위는 국고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당원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선거자금을 충당하던 ‘열기’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집토끼부터 잡아라 =
권 후보측이 결국 내놓은 해결책은 ‘찍어줄 사람부터 잡아라’는 것이다. 권 후보가 삼성특검을 지렛대로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례대표 2번에 할당하겠다는 것도 백화점식 정책나열 보다 확실한 선명성을 통해 정통 지지층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다.
노회찬 의원은 “최종 후보구도가 확정되면 조정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며 “한 표 한 표 세는 선거를 하겠다”고 말했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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